컨텐츠에서 고증이 족쇄가 되면 안되는 이유.
제출했던 뮤직 비디오.
최근 AI 뮤비 공모전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제출했던 한국 전통 요소를 주제로 한 작품이 "고증이 부정확하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왜 아직도 한국판 '페이트' 시리즈나 'K-POP 데몬헌터스' 같은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는지 말입니다.
경복궁에 가면 한복 체험을 하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조선시대 고증을 100% 지켜야 한다면 어떨까요?
당시 평민들은 화려한 색동 한복을 입을 수 없었습니다.
관광객들은 모두 누런 베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경복궁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겠죠.
더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저승사자의 검은 한복도 사실 조선시대 고증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입니다.
저승사자가 검은 한복을 입은 건 TV에서 비용절감용으로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원래는 근엄한 장군복이 옳은 고증이죠.
그런데 지금 누가 저승사자를 검은 한복이 아닌 다른 옷으로 그린다면 "고증이 틀렸다"고 할 것입니다.
담양에서 개발한 전통 문양 디자인을 보면 답이 보입니다.
전통적인 한국 문양에 서양의 심플한 라인을 접목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 국제적으로도 통용될 수 있는 아름다운 디자인이 탄생했습니다.
이는 고증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확장한 것입니다. 출처
일본의 '페이트' 시리즈는 어떨까요?
아서 왕을 여성으로 바꾸고, 길가메시를 금발의 거만한 왕으로 그렸습니다.
역사 고증으로 따지면 엉망진창이지만, 전 세계가 열광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순신을 여성 캐릭터로 만든다면? 아마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입니다.
뉴진스가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이유를 생각해보세요.
조선시대 고증을 철저히 지켜서가 아닙니다.
한복의 아름다운 실루엣과 색감의 조화라는 문화적 DNA를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SF이야기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는 용(Dragon)이 동서양 모든 문화에 등장하는 이유를 뱀, 맹수, 대형 조류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이라는 보편적 감정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마찬가지로 국제적으로 통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확한 고증의 유무가 아니라 사랑, 희망, 용기 같은 인류 전체의 보편적 가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컨텐츠를 손쉽게 생산할 수 있게 된 AI 시대에는 캐릭터와 이야기의 힘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고증에 매몰되어 창의성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소비자로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담양 문양처럼, 민속촌의 LED 퍼포먼스처럼, 전통을 확장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K-POP이 전 세계를 사로잡은 것도 한국 전통 음악의 고증을 지켜서가 아니라, 한국적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도 고증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보편적인 감성을 전달하는 K-POP 데몬헌터스를 만들 때가 왔습니다.
(민속촌 LED 퍼포먼스. 한복을 입고 이날치의 음악과 함께 춤을 춘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