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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프화가 Oct 20. 2021

제텔카스텐 리뷰

제텔카스텐을 공부하다가 주저리

장점


이 책의 장점은 

첫째, 국내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제텔카스텐 도서라는 점이다.

현대 환경에 맞추어 니클라스 루만의 제텔카스텐 개념을 보완하였다.

덕분에 좀더 글쓰기에 최적화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상향식 글쓰기라는, 기존의 글쓰기 방식을 보완하는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글쓰기는 큰 논리적 틀을 먼저 만들고, 거기에 맞는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상향식 글쓰기는 먼저 논리적으로 완성된 짧은 글(메모)을 여러 조각 만들고,

그중 논리적으로 엮이는 것들을 모아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번에 큰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꽤 도움이 되는 방식이다.


단점


개인적으로는 장점에 비해 꽤 단점이 많은 책이다. 


첫째, 읽기 어려운 문장이 가득하다.

내용이 어려운게 아니라 문장이 어렵다.

문장 하나가 무려 3~4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길어도 깔끔한 문체라면 괜찮았겠지만... 

수많은 수식어 뒤에 주어가 등장한다거나, 

그걸 무려 대명사로 처리한다거나 해서 읽다보면 '멍'해진다.


둘째, 실질적으로 제텔카스텐 기법에 관련된 분량이 적다.

제텔카스텐에 대한 설명은 다 합쳐도 10~15페이지 정도.

나머지는 지리하고 반복된 설명이나, 글쓰기에 대한 내용들이다.

그것도 체계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듯

툭툭 다른 내용이 튀어나온다.

주제와 맞지 않는 결론으로 마무리되거나, 내용이 끝나지 않는 챕터도 수두룩하다.


이러한 단점들은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숀케 아렌스의 책 자체의 문제기도 하다는 의심이 든다.

실제, 아마존 원서의 평가들 중 1~2점쪽을 보면 유사한 비판이 많은 편.


셋째, 가장 큰 문제는 사실 제목과 달리, 

이 책이 니클라스 루만의 제텔카스텐 기법을 다룬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니클라스 루만의 방법과는 목적도, 결도 사실상 다르다.


숀케 아렌스는 자신의 글쓰기 방식에 맞춰 제텔카스텐 기법을 상당히 변형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니클라스 루만의 글을 토대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니클라스 루만 아카이브나 다른 분석가의 분석내용을 토대로 한번 더 재해석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이를 알 수 있는 항목이 바로 덧없는 노트, 문헌노트, 영구노트라는 개념들.

니클라스 루만의 제텔이나 문서에는 이러한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니클라스 루만 아카이브에 일부 유사한 분석이 있다는 것이 전부다.

이러한 자의적 분리는 첫 접근에 도움을 주긴 하지만, 제텔카스텐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즉, 숀케 아렌스의 제텔카스텐이지 니클라스 루만의 제텔카스텐이 아니다라는 것을 염두해 두고 읽는 것이 좋다.


결론 


위 단점들을 통해 추측해보자면, 책의 저자 숀케 아렌스는 사실,

제텔카스텐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글을 쓴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거칠게 표현하면 이 책은 니클라스 루만 아카이브의 분석내용을 부분 부분 잘라서 중요하지 않은 내용으로 분량을 늘인다음, 뒤섞은 버전에 가깝다.

다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제텔카스텐에 대해 국내에 소개된 유일한 책이라는 점에서 의의는 충분한 편.

제텔카스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선 이 책으로 기초를 습득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

다만, 나와 같이 제텔카스텐에 대해 좀더 깊게 파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다 읽고, 바로

 니클라스 루만의 아카이브 나 zettelkasten.de 에서 책 이상의 것들을 얻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니클라스 루만이 직접 제텔카스텐에 대해 다룬 Communicating with Slip Boxes 는 이 책의 불만을 왠만큼 해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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