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텔카스텐과 지혜의 관련성에 대해
제텔카스텐에는 영수증, 회의록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그 이유가 뭘까?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니클라스 루만'의 '제텔카스텐'을 본받기를 바라며, '니클라스 루만'의 '제텔카스텐'에는 영수증이나, 회의록, 기사 등등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답변 끝!!!!!!!!!!!!
음..... 너무 단순한 대답인가?
조금 복잡하게(?) 대답해보자면..
PKM이 데이터에서 지식을 만드는 기법인데 비해, 제텔카스텐은 지식을 통해 지혜를 쌓는 기법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지혜 운운하니, 약 파는 소리 같다.
다행히 약 파는 소리를 먼저 해 주신(...) 맥도너라는 분이 계신다.
그는 지식 경제학(원제는 Information economics and management systems라는데 번역자 누구냐...)이라는 책에서 자료/정보/지식/지혜를 나누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데이터(Data) : 가공되지 않은 1차 정보 및 기록. 단순한 사실들.
정보(information): 가공된 데이터가 맥락을 통해 이해되는 것. 의미 있는 2차 데이터
지식(Knowledge): 정보 간의 패턴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도출된 가치 있는 정보. 주장.
정보가 뒷받침됨. '어떻게'에 답함. 상관관계. 추상화 모델.
지혜(wisdom) : 지식들의 관계를 통해 도출된 고차원적인 지식. 새로운 아이디어. 통찰.
지식을 기반으로 인과관계를 추출. '왜'에 답함.
자아/두뇌와 관련됨
엘런 켄트로라는 사람이 이걸 지식 삼각형이라는 개념으로 이쁘게 정리했는데, 그걸 내가 다시 이쁘게 그렸다(?)
약자를 따서 DIKW라고 이야기하며, 삼각형은 DIKW 피라미드라고 불린다.
꽤 유연해서 대충 여기저기 써먹기 좋은 개념이다. 많은 사람이 써먹기도 하고..
약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개념?
이것만 보면, 여전히 헷갈릴 테니, 예시를 보자.
내가 오늘 먹은 돈까스 메뉴는 자료(데이터)다.
내가 먹었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오늘 몸무게도 데이터다.
한 달 동안 먹은 점심메뉴를 모아서, 한 달 동안 제일 많이 먹은 점심메뉴가 돈까스!! 라고 뽑았다면, 그게 정보다.
한 달+ 점심메뉴이라는 의도(맥락)를 가지고, 필터링된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한 달간의 몸무게 증가량! 역시 정보다.
가장 많이 먹은 점심 메뉴라는 정보와 한 달간의 몸무게 증가량이라는 정보를 비교해서
'아, 돈까스를 많이 먹으면 몸무게가 늘어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이 곧 지식이다.
몸무게와 돈까스의 상관관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식이 있으면, 정보를 예측할 수 있다.
다음 달에 이번 달보다 돈까스를 많이 먹는다면, 내 몸무게는 더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혜는 설명하려면 뭔가 오글거리는 용어다.
왠지 지혜가 있는 사람이 지혜를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왠지 나랑 먼 개념 같기도 하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지혜는 데이터나, 정보, 지식과 다르다.
정보끼리만 오롯한 다른 개념과 달리 지혜는 사람, 혹은 자아의 일부분이다.
인간이란 종을 나타내는 '호모 사피엔스'부터 라틴어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할 말 다한 거다.
사람, 자아와 관련되고 지식과는 다르기에, 선인들의 지혜, 거북이의 지혜라는 표현은 가능하지만,
곤충학의 지혜, 수학의 지혜라는 표현은 쓸 수 없다.
지혜에는 그것을 다루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앞서 지식들을 다시 살펴보자. '돈까스를 먹으면 몸무게가 늘어난다.' 나 '몸무게가 늘면 건강이 안 좋아진다'는 지식이다.
이 지식은 '나'의 지혜에 통합된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 생각, 방향성, 습관, 취향들과 결합한다.
결합함으로써 나의 지혜, 지성이 성장하게 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주장,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밑받침이 된다.
'나'는 '나'이지 분류할 수 없다.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지식끼리의 상관관계가 합쳐져야 비로소 '나'이기 때문이다.
음, 그건 그렇고, 이게 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데이터는 정보가, 정보는 지식이, 지식은 지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와 정보, 지식과 지혜는 처리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데이터는 바뀌지 않는다. 오늘 먹은 돈까스가 뱃속에서 카레로 바뀔 일은 없으니까.
데이터를 가공한 정보 역시 바뀌지 않는다.
내가 어제 먹은 식단(데이터)이나, 한 달 동안 먹은 돈까스 개수(정보)가 내 관점에 따라 바뀌진 않는다.
내 한 달 동안 몸무게 증가도 내가 외면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즉, 데이터와 정보는 내 의도나 관점 등으로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우리들은 변하지 않는 데이터를 자르고, 분류하고, 더하고, 평균을 낸다.
이런 명확한 데이터와 정보에서 필요한 상관관계를 뽑아내며, 이것을 지식이라 부른다.
PKM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식을 만들어 내기 위한 기법이다.
데이터와 정보를 모으고, 그것들의 관계를 유추해 상관관계 - 지식을 추출해내는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 가능한 것은 지식까지다. 지혜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PKM은 Persnal Wisdom Management 가 아닌, Persnal Knowedge Management이다.
(이 부분은 Harold Jarche의 PKM과 지혜라는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언급되고 있다.)
왜 데이터를 다루는 방법으로 지혜를 이끌어 낼 수 없을까?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식은 명확하지 않다. 지식은 정보를 기반으로 일반화한 주장, 혹은 가설이다.
즉, 어떤 정보를 근거로 하느냐에 따라 다른 주장을 할 수도, 주장이 바뀔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앞서 '돈까스를 많이 먹으면 몸무게가 늘어난다.'라는 지식을 얻었다.
하지만, 이는 정보를 근거로 추측한 상관관계 - 주장일 뿐이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돈까스가 아니라 한 달 동안 운동을 빼먹었다거나, 돈까스와 세트로 들어가 있는 콜라를 매번 원샷한 게 몸무게 증가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
또, 저녁에 먹은 샐러드에 소스를 드으으음뿍 뿌려먹고선 '샐러드를 먹으면 몸무게가 늘어난다'라는 잘못된 지식을 얻어낼 수도 있다.
몸무게가 늘어나더라도, 근육이 늘어나고, 지방이 줄었다면 건강이 좋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지식과 지식을 통합해 더 나은 통찰을 얻는 과정은 데이터나 정보를 통합하는 과정과 다르다.
지식을 지혜로 만드는 과정은 무얼까?
지식을 다른 지식을 통해 보완해가며, 단단하게 만드는 것으로 가능하다.
지식을 비슷한 지식을 통해 보완하고, 대립된 지식으로 반박하고, 전혀 다른 지식에서 새로운 상관관계를 찾아 상위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합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이아몬드 원석은 그 자체로는 빛을 낼 수 없다.
깎아내고 잘라내야만, 찬란한 빛을 내게 된다.
다이아몬드를 깎는 것은 또 다른 다이아몬드로만 가능하다.
지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이와 같다. 뭉툭한 지식으로는 빛을 내지 못한다.
다른 지식으로 깎아내고, 보완하여 지혜로 통합해야만 누구도 부술 수 없는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낼 수 있다.
데이터나 정보가 아닌 지식들의 관계를 통찰해야, 지혜를 좀 더 고도화할 수 있다.
즉, 지식은 데이터처럼 계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사실 계산 자체는 가능하다. AI로 하는 것이 그것이다. 뭐, 이 이야기는 천천히...)
제텔카스텐은 지식을 모아 관련성을 찾고 지혜로 통합하는 과정을 좀 더 쉽고, 즐겁게 할 수 있게 하는 기법이다.
기존의 지식과 다른 사람의 지식(문헌)을 연결하고, 관련 있을지도 모르는 관련성을 탐색하고, 그것들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반박하고, 보완해서, 지혜에 가깝게 정리하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래서, 제텔카스텐안에는 영수증이나, 회의록 같은 데이터, 정보가 포함되지 않는다.
데이터나 정보는 제텔카스텐의 관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텔카스텐의 최소 단위는 '지식'이다.
앞서 삼각형에 대응해보면 아래와 같다.
가능은 할 것이다. 지식은 어쨌든 잘 정제되고, 일반화된 '데이터'이기도 하니까.
다만, 데이터를 정제하는 과정과, 지식을 정제해 지혜로 통합하는 과정은 앞서 말했듯이 목적도, 과정도, 방식도 다르다.
동시에 다루기 힘겨울 가능성이 높다.
똑같은 음식이니, 포크로 수프를 떠먹을 수도, 숟가락으로 빵을 잘라먹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일단 가능은 하겠지만, 안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론상 둘을 함께 가져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힘들 가능성이 높다.
앱이나, 저장소를 분리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훨씬 좋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해서 맘이 편해졌고.
그래도 도전하겠다고?
그럼 다시 한번, 처음 드린 답을 드리겠다.
우리는 '니클라스 루만'의 '제텔카스텐'을 본받기를 바라며,
'니클라스 루만'의 '제텔카스텐'에는 영수증이나, 회의록이 들어가지 않았다.
니클라스 루만이 직접 40년간 해보고, 안 넣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진짜 답변 끝!!!!!
p.s. 물론 본 내용은 나의 실패를 토대로,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나온 내용이다. 이것은 지식이므로, 언제든 더 나은 지혜에 의해 부수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더 좋은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p.s.2. 다음에는 진짜 제텔카스텐 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이야기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