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텔카스텐이 혼란스러운 이들을 위한 이야기
제텔카스텐은 혼란스러운 기법이다.
제텔카스텐에 대한 설명도, 기법도, 사용방법도 사용자마다 모두 다르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모든 주장들에서 같은 건 단 하나다.
'니클라스 루만'이 시작했다는 것과 그가 다작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공로를 '제텔카스텐'이라고 이야기했다는 것.
그리고 니클라스 루만의 사진과 멋지게 생긴 메모 상자 이미지.
그 외는? 모든 사람이 다른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너무나도 다르게 이야기하는 나머지, 제텔카스텐은 모두가 다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방법은 신경 끄고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라!!! 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 결과?
덕분에 많은 이들이 여러 기법들을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들이받은 다음 장렬히 산화해나갔다.
거기에는 당연히 나도 포함되었고.
나도 남들처럼 숀케 아렌스로 시작했고, 아쉬움을 느껴서 샤샤의 기법을 함께 공부했다.
주된 내용은 대충 이런 거다. 자신의 말로 이야기하고, 원자 메모 만들고, 연결해라. 거기서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걸 연결하면 쉬운 글쓰기가 된다. 등등...
어쨌든 나름 충분히 익혔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체계를 정리한 뒤
Logseq라는 걸출한 앱을 사용해 지식을 정리하고 연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꽤 잘 진행되었다. logseq라는 툴 자체도 괜찮았고, 첫 시작이라 데이터량도 적었으니까.
용기를 얻어, 내가 가진 모든 데이터와 일지, 회의록, 여행기록들을 때려 넣고, 프로젝트 관리도 함께 진행하기 시작했다.
백링크 덕분에 서로 관련된 내용들을 쉽게 연결하고, 태깅할 수 있었다. (Logseq는 링크와 태그가 동일한 개념이다.)
그래. 이게 제텔카스텐이지라고 자만할 즈음...
대략 1년 되는 시점. 문서량이 1200개, 메모로 치면 대략 1만 개 정도의 분량부터였을 것이다.
점점 연결해야 할 것도 많아지고, 매번 태그를 달고, 바뀐 태그를 관리하고, 점점 속성이 늘어나고 등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 점점 관리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연결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는 커녕, 내가 쓰는 데이터만 겨우 채워 넣기도 힘겨운 지경이 되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난 잘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버거운 것일까?
난 왜 데이터의 숲에서 길을 잃은 것일까? 내가 제텔카스텐을 잘 못 쓰고 있는 것일까?
이런 혼란 속에 빠진 나를 구한 것은 루만의 'Communcating with Slipbox'였다.
이 글은 사실, A4 1~2장 정도의 짧은 에세이에 가깝다.
하지만 반복해서, 읽을수록, 제텔카스텐에 대한 많은 것이 함축되어 담겨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첫 챕터에서는 '내가 26년간 실제로 써보니 생각하는 데는 이 방법이 낫다고 보증한다'라고 이야기한다.
26년 이상의 성공적인 협력과 때때로 어려운 협력 끝에 이제 우리는 이 접근 방식의 성공 또는 최소한 실행 가능성을 보증할 수 있습니다.
After more than twenty-six years of successful and only occasionally difficult co-operation, we can now vouch for the success or at least the viability of this approach.
즉, 니클라스 루만 본인이 제텔카스텐을 26년간이나 사용해본 다음, 그제야 효과가 있다고 보증까지 한다. 멋지지 않은가?
나는 그의 글을 몇 번씩 읽고, 요약하고, 번역을 꼼꼼히 점검하면서, 제텔카스텐의 목적과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나는 루만의 방식으로 제텔카스텐 3기를 시작했고, 현재 훨씬 더 잘 적응하고 있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가 '니클라스 루만'처럼 성장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루만이 26년간 직접 검증한 방식을 따라야 한다.
제텔카스텐을 1~2년 사용한, 혹은 책 한 권 보고 이야기하는 유튜버들의 주장이 아니라.
제텔카스텐 3기를 나름 성공적으로 시작한 뒤 생각해보았다.
뭐가 그리 달랐길래, 나는 힘들었고, 어떻게 다시금 적응한 것일까?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PKM 개념과 니클라스 루만의 오리지널 제텔카스텐 기법을 목적부터, 사용방법까지 천천히 비교해보면서 검토해보았다.
달랐다. 꽤 많이. 제텔카스텐 자체가 너무나도 달랐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실패 원인은 기존 디지털 제텔카스텐이 PKM 비슷한 것으로 착각했던 것.
하지만, 루만의 방식은 실제 PKM과 목적도, 방향성도, 구조도 달랐다. 그리고 우리가 익숙한 방식도 아니었다.
나는 망치로 옷을 꿰매고, 바늘로 못을 두들긴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힘들고, 진행도 안될 수밖에.
나는 PKM과 제텔카스텐을 분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찰 없이 사용하는 느낌이다.
(여전히 Logseq는 PKM용도로 잘 쓴다. 좋은 툴이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것들을 다르게 다루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차이점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롬리서치 사용방법 등을 보면, 대부분 제텔카스텐과 PKM을 함께 진행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다.
만약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시작한다면, 나처럼 처음에는 즐겁게 사용하다가 1~2년 안에 망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PKM과 Zettelkasten의 개념을 비교한 표를 만들어보았다.
이 분류는 사실 나의 경험에서 나온 내용으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특히, 지금 제텔카스텐을 PKM과 잘 엮어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하지만, 제텔카스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나처럼 데이터의 홍수로 힘들었다면?
제텔카스텐을 나름 시도하다 한계에 부딪친다면, 제텔카스텐이 여전히 모호하다면, 아래 표를 참고해보기 바란다.
고민에 조금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Communicating with slip box'는 꼭 읽을 것. 사실, 이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