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프화가 Jul 20. 2022

사라져 가는 존재들 완독기

오랜만에 산 종이책



사실 나는 eBook을 좋아한다.


읽는 맛 때문에 종이 책 만을 고집하는 와이프님과 달리, 나는 이북을 선호하는 편이다.

몇십 권이든 들고 다니면서 원하는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다.

태블릿, 휴대폰 등 기기에 따라 다양한 사이즈로 즐길 수 있다

밑줄 긋기도 편하고, 인용문을 복사하기도 편하다.

출퇴근 30여분. 휴대폰으로 책을 읽으며 인용문과 생각을 메모로 정리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렇게 이북을 고집하는 내가 종이책을 살 때가 있다.

물론 이북으로 발매되지 않아  책들이 대부분.


하지만, 이북으로 나오더라도 그저 내가 소장하고 싶기에 사는 책들도 있다.

내가 정말 물질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책.

이런 책들은 책장 전면에 배치하면 뭔가 뿌듯해진다.


부부의 책장. 첫 번째 칸은 차를 위한 공간, 두 번째는 눈을 위한 공간, 세 번째는 와이프님의 칸, 네 번째는 나의 칸. 가끔 서로 침범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구매한 종이책


이번에 구매한 '사라져 가는 존재들'은 오랜만에 구매한 종이 책이다.

이름 그대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에 대한 사진들이 담겨있다.

이미 유명한 북극곰부터, 천산갑, 쟁기거북 등.

그들은 자신들이 담긴 사진 만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사진과 함께 실제 처한 상황을 글로 함께 설명하고 있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생명을 위해 가치를 훼손하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챕터는 쟁기거북의 이야기였다.

쟁기거북은 아름다운 등껍질 때문에 남획되어 멸종위기에 처한 종이다.

보호단체에서는 멸종을 막기 위해, 남아있는 쟁기거북의 등껍질에 고유 넘버를 크게 새겨 넣었다.

작게 넣었을 수도 있는 일련번호를 일부러 크게 넣었다. 

등껍질을 일부러 훼손시켜, 가치를 떨어트리기 위해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가치가 낮아짐으로써 목숨을 구한 셈이다.

어떤 동물이 애완용으로 인기를 끌자, 그 동물이 남획되어 개체수가 줄어드는 등 비슷한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인터넷 서점 책 설명에 포함되어있던 카드 이미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 찰리 채플린


우리는 멀리 있는 상대보다 가까이 있는 상대에게 더욱 공감한다. 

이 책은 꽤 많은 사진들에서 극도로 가까이에서 촬영하는 기법 - 익스트림 클로즈업 - 을 사용한다.

지문 하나, 털 한올까지 선명하게 드러나며 표현되는 강렬한 현실감.

동물원에서는 볼 수 없는, 극도의 디테일을 통해 이 책은 우리에게 

동물을 매우 현실적인 존재로 이해시킨다.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특히 얼굴, 손, 눈 등을 클로즈업하며, 그들의 슬픔을 우리에게 전달하려 노력한다.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냉정한 선택. 연출 면에서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인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다.


동물의 사진과 상황을 끝까지 읽고 나면, 저자의 코멘터리가 나온다.


"자신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유인원으로서 당신이 세계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저 동물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읽었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저자는 우리를 유인원. 즉, '동물의 일원'이라고 못 박았다.

그렇다. 우리 역시 동물이며, 사실 저들과 같은 존재들이다.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읽어보자. 

사라져 가는 '동물들' 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존재들'이다.

마치 우리는 동물이 아닌 것처럼 한 발짝 물러선 우리들에게 너희 역시 동일한 '존재'임을.

너희들 역시 언제든 사라져 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수많은 화학물질들. 올라가는 기온과 무너져가는 북극의 얼음. 

점점 커져가는 오존층의 구멍. 밀렵. 그리고 점점 사라져 가는 동물들.

과연 그 결과는 어떨까? 동물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인간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들 역시 이미 사라져 가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완독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