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도 짤린 거 아닌가요?

인사노무 노트 #8

by noxious

어느날 갑자기 인사담당자로부터 면담을 요청받고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불가피하게 A사업부에서 2명을 줄여야 하는데 우선 OO님이 대상자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후 퇴직 절차를 밟았다면 이건 속된 말로 짤린걸까요? 또는, 작은 기업에서 사장이 직원과 다투다가 엉겹결에 "자꾸 이럴거면 그냥 때려쳐!"라는 말을 했고 그 직원이 곧바로 그만뒀다면(출근을 하지 않았다면) 이것 역시 짤렸다고 봐야 하는걸까요?


아마도 실무상 가장 흔하게 문제되는 인사노무 쟁점은 해고와 임금일텐데요. 특히 해고와 관련하여 근로관계 종료의 원인이 근로자의 자발적인 사직인지, 사용자의 일방적인 해고인지, 혹은 양 당사자의 합의해지인지 여부는 제반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각양각색이어서 분명하게 구분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우리 법은 해고에 대하여는 그 사유, 시기, 절차 등등에 관해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는 반면 사직이나 합의해지에 대하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의 어느 행위가 해고인지 아닌지 여부는 사안의 결론을 180도 뒤집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법적 판단이 됩니다.


해고와 권고사직을 가장 쉽고 간명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해고: 실제로 불리는 명칭이나 절차에 관계 없이 근로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라면 모두 '해고'에 해당합니다.

[2] 권고사직: '권고사직'은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해 근로계약 합의해지를 청약하거나 청약의 유인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권고사직에 대해 근로자가 사직의 의사표시(위 청약에 대한 승낙이거나 청약의 유인에 따른 사직의 청약이 될 것입니다)를 하면 비로소 사용자와 근로자의 의사가 합치하여 근로계약이 합의해지되는 구조입니다.


즉 '해고'는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에 따른 것인 반면 '권고사직'은 어찌되었든 사용자와 근로자 양 당사자의 의사의 합치(합의)가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법률적, 개념적으로는 명확하게 구별됩니다.


그렇다면 다시 위 사례로 돌아가 볼까요.

작은 기업에서 사장이 직원과 다투다가 엉겹결에 "자꾸 이럴거면 그냥 때려쳐!"라는 말을 했고 그 직원이 곧바로 그만뒀다면(출근을 하지 않았다면) 이것 역시 짤렸다고 봐야 하는걸까요?


"자꾸 이럴거며 그냥 때려쳐!"라는 말이 그 자체로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로써 당사자 사이의 근로계약 관계를 확정적으로 종료시키려는 것이라면 이는 해고에 해당합니다. 반면 사용자가 단지 근로자로 하여금 일을 그만두어주길 요청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면 해고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동일한 발언과 사실관계에 대해 사용자와 근로자의 생각은 영 딴판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 말이 맞는 걸까요?


이에 관해 비교적 최근 대법원은 "해고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가 있는지 여부는 사용자의 노무수령 거부 경위와 방법, 노무수령 거부에 대하여 근로자가 보인 태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용자가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확정적 의사르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3. 2. 2. 선고 2022두57695).




결국 법원은 제반 사실관계를 면밀히 따져 구체적인 사례별로 해고인지 또는 권고사직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고, 실제로 비슷해 보이는 사안이더라도 다수의 하급심 판결례에서 어느 것은 해고, 어느 것은 권고사직 내지 합의해지로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다소 애매하고 속이 시원하지는 않은 결론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회사를 다니다가 갑작스레 위와 같은 사례를 맞닥뜨리게 된다면 근로자가 결코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인사담당자로부터 면담을 요청받고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불가피하게 A팀에서 2명을 줄여야 하는데 우선 OO님이 대상자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후 퇴직 절차를 밟았다면 이건 속된 말로 짤린걸까요?


인사담당자는 당신에게 자연스레 어느 서류를 내밀테고 그 서류는 동의서, 합의서 내지 사직서와 같은 제목일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신을 해고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를 피하고 싶은 회사로서는 당신에게도 사직의 의사가 있었다는 점 내지 근로계약 해지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징구하고 싶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문서를 법률적으로 '처분문서'라 하는데 그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이상 법원은 그 기재내용을 부인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는 한 그 기재내용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 및 내용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꼭 기억해야 할 단 하나의 조언이 있다면, ‘진정 그만둘 의사가 없다면 그 서류에 함부로 서명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섣부른 서명은 해고를 다툴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설혹 퇴직 의사가 있었더라도 적정한 합의금 내지 위로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까지 상실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당신으로 하여금 어떠한 형태로든 권고사직 '당하게' 한다면, 이는 그 형식을 불문하고 해고에 해당합니다! 당신은 회사의 권고사직이 실제로는 해고에 해당한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각종 자료(녹취, 증인, 이메일, 공고 등등)를 충분히 확보하고 이를 다투기 위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나 해고무효확인소송 등의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가장 흔하게 문제되는 내용을 짧고 쉽게 적어보려고 했는데,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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