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
은서야. 오늘부터는 4대 보험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한다. 보통 사회보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4가지 종류의 중요한 사회보험이 있어서, 4대 보험이라고 하기도 해.
앞으로는 좀 더 대중적인 용어인 4대 보험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할게.
돈이 많은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해.
내가 아프면 내 돈으로 치료받으면 되지, 왜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냐고.
내가 일자리를 잃으면 내 돈으로 먹고살면 되지, 왜 고용보험료를 내야 하냐고.
내가 나이 들어 경제활동을 할 수 없으면, 지금까지 저축해둔 돈으로 여생을 보내면 되지, 왜 국민연금료를 내야 하냐고.
그리고 회사는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해.
근로자가 일하다가 다치면, 근로자가 가입한 사적인 상해보험 등을 활용하면 되지, 왜 회사가 산재보험료를 내야 하냐고, 그리고 왜 다른 보험료도 절반이나 회사가 부담하냐고 말이지.
은서야, 사회보험의 반대말이 뭐라고 생각하니? 맞아. 사회보험의 반대말은 개인보험, 혹은 사보험이라고 할 수 있어.
보험이라고 하는 건 개인에게 닥칠지도 모를 위험을 미리 준비하는 성격을 띤, 금융상품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아마 은서 너도 한 두 개 정도의 보험에는 가입돼 있겠지? 종신보험, 사망보험, 손해보험, 화재보험 등 수많은 보험들이 존재한단다.
당장의 위험은 아니지만,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위험, 혹은 앞으로 직면하게 될 것이 확실한 위험들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가입하는 거지.
과거에는 질병이나 노령, 실업, 재해 등의 문제는 개인의 위험일 뿐, 사회적인 위험은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개인이 해결해야 할 위험에 대해 굳이 국가가 개입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지.
그냥 개인이 건강관리를 안 해서 아픈 거라고 생각한 거야. 개인이 일을 못해서 해고당한 거라고 생각한 거야. 개인이 제대로 주의를 안 해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고 생각한 거야. 개인이 노령을 대비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한 거야. 개인에게 닥치는 위험을 단순하게 개인의 무능력, 혹은 불운의 결과라고 이해한 거지. 개인에게 주어진 불행한 운명 같은 거랄까.
하지만,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과거에는 도저히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속출한 거야. 대량실업의 문제, 대량빈곤의 문제, 대량질병의 문제, 대량 산재의 문제를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자각이 일어난 거지. 이른바 새로운 사회문제가 등장하게 된 거야.
그런데, 개인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는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노동법을 개정해서 회사에게 좀 더 많은 책임을 지울 수도 있고, 가족법을 개정해서 부양의 범위나 정도를 넓힐 수도 있겠지. 혹은 세법을 개정해서 세금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 거야. 다 중요한 해결의 방법이야.
하지만, 한계가 많단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법들이 원래 사회적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들이 아니라는 점이겠지.
노동법은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야. 민법, 그중에서도 가족법은 가족의 사적인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 그리고 세법도 기본적인 목적은 국가나 지자체의 재정확보에 있는 거고. 즉 이러한 법들은 질병, 노령, 장애, 실업, 산업재해와 같은 사회적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사회보험법이 만들어진 거야.
사적인 보험, 즉 민간보험은 개인이 스스로의 위험을 스스로 준비하는 거야.
하지만, 사회보험은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보험가입자가 되어서, 함께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야.
그래서, 사회보험을 강제보험이라고도 해.
가입하고 싶으면 가입하고, 가입하기 싫으면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민간보험과는 달라. 만약 그런 식으로 가입하면, 사회보험이 아니라 사보험이 되겠지.
그래서 사회보험은 도입과정에서 꽤 많은 사회적 저항이 등장한단다. 부자나 빈자 모두가 저항하는 보험이야.
돈이 많은 부자는 '민간보험으로 내 위험을 다 커버할 수 있는데, 왜 이런 보험료를 지출해야 하는가'에 대해 저항하는 거지.
돈이 없는 빈자는 '사회보험료를 지출할 경우 사용 가능한 실제 소득이 줄어든다'는 부담 때문에 저항하는 거야.
그래서 강제할 수밖에 없어. 이런저런 사정을 다 인정하다가는 사회보험의 성격은 사라지게 되는 거지.
다소간의 불만이 있더라도 사회보험이 우리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해.
IMF사태를 겪으면서 고용보험은 대량실업시대의, 꽤 의미 있는 보호막이 되어 줬어. (물론 실업급여를 부정 수급하는 문제는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겠지.)
그리고 2020년의 코로나 사태에도 건강보험은 우리 사회의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 주고 있어. 우리의 의료시스템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아. 선진국가라고 하는 미국은 적어도 건강에 대한 사회보험 체계에 대해서만큼은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의료혜택에 대한 지나친 자유가 의료의 양극화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거지.
물론, 4대 보험료의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에 대한 저항은 커지게 될 거야.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혜택보다는 눈에 보이는 캐시가 더 중요한 법이니까. 그게 사람이니까. 또 그런 감정은 당연한 거고.
회사도 간접적인 인건비가 늘어나는 거니까, 부담스러울 거야. 그런 비용들이 눈에 보이는 회사의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서 사회적인 설득이 필요해.
4대 보험은 철학의 문제라고 생각해. 우리 사회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갈 것이냐는 방향성과 그에 대한 믿음.
그 철학이 헌법에 규정돼 있어.
헌법 제34조
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앞으로는 이런 사회적인 철학이 우리의 사회보험법에서 어떤 식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까 한다.
그래. 알아. 아깝지? 나도 그래. 올해 건강보험료가 너무 올랐어. 작년에 병원 간 적도 별로 없는데 말이야. 수익의 상당 부분이 4대 보험료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까울 때도 많아. 65세가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국민연금료도 꼬박꼬박 매월 떼 가고 말이야.
그래, 맞아. 보험료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은 필요해.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그리고 적정하게 보험료를 분배할 것인가는 끊임없이 논의하며, 조정해 나가야 할 거야.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4대 보험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자해적인 말은 조심했으면 좋겠다. 이런 사회적인 위험은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재벌 갑부가 아닌 다음에는 말이야. 그건 인정해야 해.
앞으로도 4대 보험료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저항은 더욱 크게 일어날 거야. 우리 사회의 역량이 그런 갈등과 저항 속에서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
오늘은 이만 줄일게. 안녕.
브런치 매거진에 올린 글을 엮어서 "누더기가 된 임금(부크크)"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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