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계절별로 지역별로 참 여러 가지 행사가 많다. 벚꽃 축제, 머드축제, 단풍 축제, 산천어 축제 등 짧으면 2~3일, 길면 두세 달에 걸쳐 열리는 다양한 축제와 행사만 따라다녀도 1년이 짧게 느껴진다. 그래서 땅도 넓고 사람도 많은 미국 축제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어 오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다. 지역 축제 홍보글을 보면 달력에 써 놨다가 놓치지 않고 찾아가려 애썼다. 여러 번 가보다 보니 이제는 미국 축제의 패턴이 살짝 보이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축제는 ‘행진’이다.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 행사를 본 건, 비자를 받기 전 잠시 방문해 있었을 때였다.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이라는 대형 명절이 있는 달이었다. 명절 당일 오전에는 가족끼리 모여 식사를 하지만, 명절 앞 뒤 날에는 도시마다 저녁이 되면 명절맞이 작은 행사를 열었다. 뭘 할까 기대에 차서 추운 날씨에 온몸을 꽁꽁 감싸고 나갔는데, 어디서도 그 어떤 이벤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위치를 잘 못 알고 있던 걸까 싶었을 때, 사람들이 큰 도로 양 옆 길로 자리를 잡고 서기 시작했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자, 도로 끝에서 경찰차와 소방차가 느릿느릿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갔다. 그리고 관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며 지역 고등학교 밴드부들이 나타났다. 무표정한 얼굴로 드럼, 트럼펫 등 전통적인 서양 악기를 연주하며 걸어가고, 그 뒤로 오징어 배에 다는 전구를 주렁주렁 휘감은 차들이 등장했다. 주로 트럭이 많았고, 짐칸에 사람들이 타서 손을 흔들거나 사탕, 초콜릿 같은 작은 간식거리를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던져 주었다. 차에는 전구 말고도 판자나 색종이, 솜 등을 사용해 얼기설기 붙여 나름 이벤트 차량으로 꾸며놨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명절에 맞게 변장을 하거나 의상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혹은 트럭에 거대 스피커와 악기를 올려놓고 그 위에서 록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런 차량들의 행진은 약 20여 분간 계속되었다. 마지막 차량까지 지나가자 그대로 이벤트는 종료였다.
처음에는 이게 끝이라는 것에 놀랐다. 푸드 트럭도 없고 게임도 없고 공연도 없고 그냥 행진하면서 손 흔드는 게 전부라니. 가게에서 잠깐 하는 이벤트도 아니고, 명절 축제인데 뭔가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가 작은 마을이라 행사도 작은 건가 싶어, 이보다 더 큰 도시 행사들도 가봤다. 전부는 아니지만 꽤나 많은 축제에서 행진이 빠지질 않았다. 그 행진의 규모가 크고 작음의 차이일 뿐, 행진을 하는 것은 똑같았다. 심지어 회사에서 하는 콘퍼런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회사에서는 1년에 한 번 큰 콘퍼런스를 주최하는데, 주요 발표와 회의가 끝나자 작은 재즈 밴드와 댄스팀을 불렀다. 이들이 맡은 역할은 회식장소까지의 행진이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회식장소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직원들을 이끌었다. 명절이나 축제가 아닌데도 이렇게 하는 걸 보면, 미국인들에게 행진은 그냥 일상화되어 있는 문화의 하나인 듯했다.
왜 이렇게 행진 문화가 발달한 건지 자세히 보니 워낙에 다민종이 모여 사는 국가라,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보여주기 위한 행사 및 퍼레이드를 많이 개최한다고 한다. 일종의 다양성 표현의 수단인 것이다. 거기에 더해져 사회 운동, 인권 운동 등과 관련된 메시지를 전달, 표현하기 위해 퍼레이드를 많이 활용해 왔다. 샌프란시스코의 게이 프라이드 축제, 기독교의 ‘파슈’ 기간을 마무리하는 행사인 뉴올리언스의 ‘마디그라’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남편의 회사에서도 10분 남짓한 그 짧은 거리를 행진하며 걷게 한 것 또한, 회사를 보여주는 홍보 수단이자, 행진의 주체자가 되어 걷는 직원들이 스스로 자긍심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였을 거라 생각한다. 나를 드러내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것이다.
꼭 이런 대외적인 축제 행진이 아니더라도 때때로 일상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보여주는 행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화려하지 않아서, 일상에 지쳐 그럴 힘이 없다는 핑계로 남들이 멋지게 행진하는 것만 바라보며 부러워할 때가 많은데, 보여줄 게 없어도 그냥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로 당당히 걷는 이들은 보면 나도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언젠가는 남들의 행진을 보기만 하는 게 아닌 그 행진 주체자가 될 수 있는 나를 상상하며 나만의 작은 축제를 머릿속에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