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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Nov 07. 2023

너, 약에 취한 것 같아

간단히 챙겨 먹은 점심이 충분하지 않았던 건지, 입이 심심하고 달달한 게 계속 당겼다. 평소 간식거리를 많이 사다 두는 편이 아닌지라 주방에 딱히 먹을만한 게 보이지 않았는데, 냉장고 문에 나란히 놓여 있는 달걀들 옆으로 먹다 남은 초콜릿이 눈에 띄었다. 평범한 사각형의 납작한 초콜릿으로, 원하는 크기만큼 부러뜨려 먹을 수 있었다. 지난 주말에 남편이 누나와 일리노이 주까지 쇼핑을 갔다 왔는데 그때 사온 간식거리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처음에 한 두 조각만 먹으려던 게, 맛있어서 계속 먹다 보니 내 손바닥 크기만큼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할 일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이상하게 몸이 너무 나른했다.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어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가 식탁 의자에 앉았다가 하며 흐느적흐느적 집 안을 걸어 다녔다. 그리고 시아빠가 잔디 깎기 일로 집에 잠깐 찾아왔지만, 이상하게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반쯤 감긴 눈과 꼬부라진 혀로 시아빠가 묻는 말에 대충 대답하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바로 침대로 가 뻗어버렸다. 


보통은 아무리 낮잠을 자도 남편이 돌아오는 5시 전에는 일어나서 같이 먹을 저녁을 준비하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침대에 누운 채로 그를 맞이했다. 이상하게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는 내 잠긴 목소리를 듣고, 그는 알아서 밥을 챙겨 먹겠다며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 이거 네가 다 먹었냐며 꼬다리만 남은 초콜릿 껍데기를 갖고 왔다. 그리고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가 왜 피곤해하는지 알겠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것은 보통의 초콜릿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리노이 주는 의료용 마리화나는 물론 오락 목적의 기호용 마리화나까지 합법화한 주로, 남편은 일리노이주에 들렀다가 마리화나 초콜릿을 사 온 것이었다. 수면 장애가 있는 남편은 잠을 잘 못 자거나 퇴근하고도 긴장 상태가 지속될 때, 초콜릿을 한 조각씩 먹고 자려고 산 것인데, 나는 그게 그런 초콜릿인 줄도 모르고 한꺼번에 반이나 먹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낮에도 종일 나른하고 졸릴 수밖에. 잠을 잘 오게 하는 마리화나의 효과는 확실하게 느꼈지만 그 뒤로 냉장고에 모르는 초콜릿이 있으면 손대지 않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보다 더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한 밤 중, 생리통이 너무 심해 잠을 잘 수 없어 남편에게 뭔가 없냐고 요청했다. 그는 잠을 돕는 젤리가 있다며 건넸고, 어둠 속에서 그 젤리를 반 정도 깨물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을 감은 상태에서 머리가 핑핑 도는 게 느껴졌다. 눈을 뜨고 어둠 속에서 벽을 응시하다가, 불을 켜고 거실로 나가 걸어봤다. 내가 어지러움증을 느끼고 있는 건지, 똑바로 걷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평소 이명 소리가 자주 들리던 나는, 이런 사람이 ‘이석증’이나 ‘메니에르’ 같은 병이 잘 올 수도 있다고 들어서, 갑작스럽게 내게도 이석증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핑핑 도는 것 같아 급히 잠을 자던 남편을 깨웠다. 


“ 나 머리가 이상한 것 같아.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는 내 증상에 대해 물었고 나는 소파에 앉아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데, 느닷없이 내 자아가 다섯 개로 분리되어 각각 다른 얘기를 지껄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이상 현상이었다. 남편에게 내 증상을 설명하면서도, 내가 방금 이 말을 실제로 내뱉은 것인지, 아니면 내 머릿속에서만 말은 한 것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평소 내가 두려워하던 모든 걱정과 문제,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르며, 그것들은 하염없이 나를 우울감에 몰아넣었다. 

내 옆에 가만히 앉아 내 얘기를 듣던 남편은 나지막이, “너, 약에 취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무슨 약에 취해?” 

“아까 네가 잠 못 자겠다고 해서 내가 건넨 젤리. 그거 마리화나 성분이 있는 젤리야.”


남편은 수면장애로 여전히 대마 성분이 들어간 간식류를 갖고 있었고, 내게 건넨 젤리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전에 먹었던 초콜릿과 다르게 이 젤리는 너무나 강력했으며, 이런 성분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겨우 젤리 반쪽만 먹었는데도 온몸이 자극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다시 자고 나면 괜찮을 거라고 되뇌며 잠을 청했지만, 나는 그 다른 세계관에 건너간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을 완전히 떨쳐버리는 데 하루가 넘게 걸렸다. 


마리화나가 통증 완화나 항염 성분이 있다고 해서 미국에서는 합법인 곳이 많다. 그래도 한국에서 마약류로 분리되는 통에, 가까이하고 싶은 종류는 아니었다. 남편 또한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것들만 사서 잠자기 전에 한 입 깨물고 자는 정도라 못 먹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응급실로 달려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앞이 핑핑 돌고 자아가 분열되는 경험을 하니, 왜 종종 사람들이 마리화나 간식을 잔뜩 먹고 쓰러지는 일이 생긴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나야 다행히 젤리 반조각에 벌어진 해프닝에 그쳤지만, 어디서든 쉽게, 또 나도 모르게 더한 것들도 구할 수 있는 미국에 있으니 뭐가 되든 제대로 알고 입에 넣어야 된다는 경각심이 확 든다. 물론 그 젤리는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나는 아무리 잠이 안 와도 빈 속에 자는 쪽을 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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