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 가자마자 차를 샀을 때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도 다들 어떤 차를 샀냐고 물어봤었다. 내 생애 첫 차였기 때문에 다들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의 첫 차는 12년된 중형차로 약 500만원 정도 주고 구매한 중고차였다. 내가 도착하기 전 남편이 미리 중고시장을 돌다가 사 둔 것인데,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그 연식이 만만치 않아 눈이 동그래졌다. 운전도 잘 못 하는 내가 처음부터 새 차를 사기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10년이 넘은 중고 차량이 흔한 매물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차를 보고 나는 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차는 20년도 넘은, 할아버지때부터 3대가 탄 지프차였다. 수동변속기가 핸들 옆에 달려 있고, 카세트 테이프를 넣는 공간이 있는 그런 차 말이다. 살면서 본 차량 중 가장 오래되고 낡은 차였다. 2종 오토 면허밖에 없는 내 눈에는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차량 구조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남편은 언제 멈춰도 이상할 리 없는 그 차를 타고 매일 왕복 2시간이 넘는 통근길을 오갔다. 이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너 밖에 없을 거라고 하니, 남편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미국에서는 20년된 차가 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에서 주변 사람들을 보면 보통 5년주기로 차를 바꾸는 이들이 많았고, 오래 타면 10년이었다. 그런 걸 보다가, 이 나라에서는 차가 한 번 세상에 나오면 20년은 기본값으로 굴러다닌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차 주인들이 그만큼 애정을 갖고 관리해 주었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목숨 맡기고 타는 물건을 이리 오래 타도 괜찮나 하는 것이 내 머리 한 쪽에 남아 있는 의문이었다. 이런 의문은 지역 자동차쇼와 미국 TV 프로그램을 보며 어느정도 해소되었다.
Car Show라는건 자동차 회사가 신차를 출시할 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지역에서 하는 Car show는 오히려 반대였다. 과거로 시간 여행이라도 한 것인지 흑백 영화나 무성 영화에서 보던 차량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나와 있어 연예인이라도 본 듯한 기분이 들었고, 가히 연식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차량들이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거리를 행진하는 걸 보니, 오래된 카레이싱 영화인 ‘분노의 질주’ 파티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모든 부품이 그 옛날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그런 차량도 있지만 대부분 엔진을 바꾸고 도색을 새로 하고 내부 시트 등도 교체해 업그레이드한 차량이 많았다. 포인트는 그 옛날 클래식한 차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기에, 차를 잘 모르는 나도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한정판 상품에 침을 흘리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미국인들의 골동품 사랑은 알고 있었지만, 새 차 사는 것만큼 비용을 들여 옛날 차를 수선할 정도라니, 나는 상상하기 힘든 열정이다. 그래서인지 남미까지 넘나들며 오래된 차를 가져와 온갖 화려한 기술로 새 차를 만들어 판매하는 TV쇼도 인기가 많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차가 폐차되고 나서도 죽지 못 한다.
차에 관심이 많은 남편을 따라 중고 자동차 부품 판매점에 간 적이 있다. 말이 부품 판매점이지, 그냥 폐차장이라고 보면 된다. 엄청난 부지의 공터에 폐차되어 찌끄러진 차들이 지들끼리 엉겨있다. 이곳에 들어설 때는 개인 공구 상자 구비는 필수이며, 심지어 입장료도 낸다. 내 눈에는 그냥 쓰레기장이지만 누군가에게 여기는 보물창고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명은 다 해 멈춰 있어도 아직 멀쩡한 부품, 예를 들어 타이어, 차량 오디오, 차 문짝, 심지어 차량 컵 홀더까지 원하는 건 직접 폐차된 차량에서 떼어다가 갖고 갈 수 있다. 일종의 자동차버전 장기 기증소다. 물론 무료는 아니지만 폐차된 차량에서 직접 떼어가는 만큼 값은 저렴하다. 이곳에 가보니 주로 남미계 이민자들이 많이 보였는데, 오래된 차를 싼 값에 사서 이곳에서 부품을 따로 사다가 복원해 판매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남편도 한 동안 차량 수리에 빠져, 폐차 직전의 차를 매입해다가 이곳에서 산 부품을 넣어 고쳐 타기도 했다.
이 폐차장에는 ‘차가 안 굴러가면, 당신의 인생도 안 굴러간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미국이 차 없이 아무데도 못 가는 나라인 만큼 매우 납득이 되는 문장이다. 차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곳이기에, 차들이 이 나라에서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다. 나무만 아낌없이 주는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죽고 나서도 아낌없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