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생각지도 못한 낯선 지역으로.
우리는 내가 비자를 받아 미국에 들어올 때부터 이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이 미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던 곳은 테네시주의 윈체스터라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로, 정말 뭐가 없는 곳이다. 남편조차 이곳이 죽은 도시 같다며 싫어했지만, 한 동안 외국에 살다 미국으로 돌아와 취직을 하려면 당장 있을 곳이 필요했기에, 시부모님이 관리하는 저렴한 임대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여기서 혼자 살며 내가 비자를 받아 정식으로 미국으로 올 때까지 기다렸고, 내가 들어오고 나서 한 달 뒤부터 바로 이사 갈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본래 염두에 두었던 지역은 앨라바마주의 ‘헌츠빌’이라는 도시였다. 남편의 직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부모님 댁과는 1시간 정도 떨어져 있고, 대형 한인마트와 한식당들도 자리 잡고 있었으며, 점점 사이즈를 키우고 있는 괜찮은 도시다. 그래서 ‘헌츠빌’내에서 집을 알아보던 중, 돌연 남편이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퇴사 이유를 한 마디로 하자면, 그가 납득할 수 없는 부당대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이사 준비보다는 새로 재취업할 회사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감사하게도 재취업에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그의 새 회사가 살던 곳에서 6시간이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온라인상의 사진만 보고 집을 계약할 순 없으니 직접 집을 보러 다녀야 하는데, 집 보러 6시간이나 떨어진 거리를 계속해서 오갈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퇴직 전 남은 휴가를 쓰고, 호텔에 3일 정도 묵으며 몰아서 집을 보러 다니기로 했다. 한정된 시간 내에 부동산, 집주인들과 약속을 잡아야 하는 게 핵심이었는데, 연락 안 받는 집주인에 일 안 하는 부동산 중개인들 덕에 계획은 계속해서 틀어졌다. 다행히 주로 특정 기업에서 관리하는 아파트 쪽은 애초에 모델 하우스가 마련되어 있어서, 관리 사무소에 찾아가 얘기만 잘하면 볼 수 있었다. 물론 걔 중엔 가격은 저렴해도, 이웃집이 마약상이거나 살인사건이 있어서, 혹은 아파트 내 호수에 야생 악어가 산다는 기상천외한 이유로 제외시켜야 하는 곳도 있었다.
어느 나라건 집을 볼 때, 그 위치와 집세, 주변 환경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내가 미국에서 집을 볼 때 포함하는 또 다른 체크 사항은 바로 ‘카펫 없는 바닥’이다. 실내에서도 주로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나라여서 그런지, 집에 있는 바닥이란 바닥은 모두, 심지어 화장실 바닥까지 카펫화 되어 있는 집들이 많은데, 나와 남편은 카펫 깔린 바닥을 너무 싫어한다. 뭐가 떨어져도 잘 눈에 띄지 않고, 그래서 카펫의 위생 상태도 체크하기 어려우며, 액체를 쏟아도 그냥 닦으면 되는 나무바닥이나 장판과 달리 카펫 바닥은 청소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도 우리 예산에서 카펫바닥이 완전히 없는 집은 찾기 힘들었고, 결국은 부엌과 화장실에만 카펫이 없는 원 베드룸의 아파트 월세방을 1년 계약했다.
가계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도큐사인을 통해 온라인으로 계약서를 주고받고, 이사 날짜를 잡았다. 이삿짐센터를 주로 이용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짐을 싸고 옮기고 내려놓고 하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해야 했다. 이삿짐 트럭을 빌려와서 그 안에 짐을 전부 실었다. 트럭도 직접 운전해야 하는데, 우리 차도 가지고 가야 하니 시부모님이 같이 우리 차를 갖고 같이 새 집으로 이동을 해주셨다. 다행히도 우리는 세간살이가 얼마 없어, 어찌어찌 우리 힘만으로 이사를 해내긴 했지만, 짐이 많은 다른 집들은 이삿짐센터의 도움 없이 어떻게 이사를 해내는지 초짜 미국 거주자로서 아리송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사한 집이 원베드룸이라, 시부모님은 호텔을 잡아 하루 주무시고 바로 다음 날 렌터카를 이용해 6시간 거리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미국에도 이삿짐센터가 있긴 하고, 자동차 배송 서비스도 있다고 하는데 그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대부분 이렇게 가족 찬스를 쓰나 보다.
새로 이사 온 지역은 차로 10분 거리에 바다가 있는 남쪽 끝자락이다. 남편 역시 처음 와 본 지역이라 가족도 지인도 없어서, 우리 둘 다 살면서 배우고 알아가야 할 게 많은 곳이다. 본래 있던 곳보다야 편의성은 훨씬 낫지만, 그래도 버스 구경은 할 수 없는 시골에, 다민족 국가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아시아인은 희귀한 동네다. 집에서 가까운 바닷가 공원에 가서 석양을 바라보며, 베트남에서 살 때부터 의도치 않게 계속 바닷가 마을에 거주하게 되는 내 삶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산간지역을 돌며 살았는데, 남편을 만나고 난 후 나는 이제 바닷가를 돌고 있다. 진짜 신혼살림을 꾸린다고 할 수 있는 이 바닷가 마을에서, 앞으로의 미국에서의 시간을 잘 개척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