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봇 Nov 19. 2023

가구를 조립할 때 내가 결혼했다는 걸 실감했다

미국에서 첫 셀프 이사를 할 때, 가지고 가는 가구는 매트릭스와 소파, 수납장 한 개, 세탁기뿐이었다. 남편이 혼자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미국을 떠나기 전 부모님 댁에 맡겨 둔 세간살이를 되찾아 대충 갖추어 살고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 가구들 전부 낡은 싸구려 가구들이었기에 이미 수명이 다한 상태였고, 그래서 다 버리고 이사 갈 때 가져가는 것들은 이것뿐이었다. 


세간살이는 얼마 안 되지만 새 집에서 당장 생활을 시작하는데 아주 불편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냉장고와 가스레인지는 월세집에 이미 있는 가구였고, 침대 없이 매트릭스만 바닥에 깔고 자도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새로 뭘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밥 먹는 것에서 비롯된 불편함 때문에 우리는 뜻밖의 대규모 가구 쇼핑을 시작했다. 식사 때마다 무릎에 밥을 올리고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식탁은 남편이 혼자 살 때도 없었다. 그래서 대충 플라스틱 간이용 식탁을 두고 밥을 먹었고, 이사 트럭에는 싣지 않았다. 한국에서 쓰는 작은 상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우리는 이사한 집에서는 밥을 먹을 때마다 주로 한 그릇 요리를 만들어 소파에 앉아 무릎 위에 올려 두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무릎 위로 허리를 비스듬히 굽혀 어정쩡하게 먹는 것에 질려 식탁만은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근처 가구점으로 가 전시되어 있는 식탁을 둘러보다 적당한 가격의 4인용 식탁을 구매했다. 그런데 의자 미포함이었다. 역시 싼 건 이유가 있는 거다. 식탁 사이즈에 맞게 네 개의 의자를 같이 구매하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의자 가격이 비쌌다. 우리는 집에 올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두 개의 의자만 추가했다. 크기가 큰 가구를 사면 기본적으로 배송 서비스가 따라오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배송 서비스에도 적지 않은 추가 요금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정말 공짜가 없다. 결국 작은 트럭을 빌려 식탁과 의자도 셀프로 싣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이제 드디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싶을 때, 이번에는 또 책상이 문제가 되었다. 


남편은 새 사무실로 출근하기 전, 한 동안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책상이 하나 더 필요했다. 그리고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소파도, 세월을 이기지 못해 앉는 순간 철판처럼 찌그려져, 편히 쉬는 게 아니라 균형 잡기 운동을 하는 격이 되었다. 사실 본래 이 모양이었지만 소파가 비싸다는 이유로 더 쓸 수 있다고 최면을 걸고 있는 상태였다. 더 이상 최면도 통하지 않을 만큼 소파가 제 구실을 못 하게 되었을 때 그제야 소파 또한 쇼핑 목록에 추가되었고, 한 번 돈 쓰는 데 고삐가 풀리자 줄줄이 다른 가구들도 눈에 들어왔다. 결국 새 책상, 새 소파에 이어 거실에 둘만한 작은 테이블도 장바구니에 들어갔으며, 베란다에 둘 티 테이블까지 최종 결제 목록에 포함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립식 가구들의 부품이 속속들이 우리 집 거실에 집합했다. 한국에서는 혼자 살아 본 경험이 없고, 베트남에서 모든 가구가 포함된 집에 살았으니, 이렇게 내가 쓸 가구를 직접 조립해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설명서를 보고 낑낑대며 나사를 돌렸다 뺐다 난리를 쳤더니 다리 세 개짜리 의자, 기하학 형태의 책상이 완성되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그것들은 본래의 모양새를 잡고 새 집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신기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마지막 의자의 다리를 고정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진짜 결혼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함께 사는 게 처음도 아니고, 우리는 이미 동거 기간을 거쳐 결혼에 이른 부부가 아닌가. 집을 고르고 함께 살림살이를 준비하는 과정도 전에 다 했던 일들인데, 이제야 그가 동거인이라 아니라 배우자로 보이는 게 참으로 아리송했다. 마치 그와 처음으로 이 집에서 첫 살림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예전과 다른 것은 함께 쓸 가구를 새로 마련한 것 밖에 없는 데 말이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내 감정을 동요하게 만든 것은 새로운 가구들이 아니라, 가구를 함께 ‘조립’하는 데 있을 것이다. 집이야 내 집도 아니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언제든 이사 갈 수 있는 곳이라 ‘우리 집’이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는데, 가구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도 함께 들고 갈 최초의 ‘우리 소유’ 물건이며, 가끔 꺼내 보다 먼지가 쌓일 웨딩 앨범 같은 것이 아니라, 매일 같이 손 때 묻히고 쓸 물건들이다. 물론 세월이 흘러 이 가구들도 언젠가 새로운 가구들로 대체될 수 있겠지만, 부부가 되어 함께 새로 만들어낸 ‘우리의 물건’이라는 점은, 뒤늦게 나로 하여금 그와 나의 관계가 진정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누군가는 호칭이 바뀌었을 때, 혹은 연인이 다 놀고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 결혼한 게 실감 난다고들 얘기하는데, 나는 다른 무엇보다 가구를 조립하며 비로소 내가 진짜 결혼을 했다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부부로서 앞으로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고 움직여야 할 일들이 이제부터 더 많아질 것이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다리 세 개짜리 의자를 만드는 과정을 거쳐 본래의 튼튼한 의자를 완성하듯 우리도 각자 가지고 있는 부품을 합쳐, 앞으로의 결혼생활을 잘 조립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퇴사로 이사한 낯선 바닷가 마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