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것 없는 미국 시골에 살며 적적함과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남편은 사냥부터 햄무전기, 중고 물건 사고팔기 등 이것저것 해대며 취미에 돈을 쓴다. 멍하니 핸드폰만 보거나 의미 없이 TV 채널만 돌리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서, 그가 어떤 취미 생활을 하든 잔소리 한 번 한 적 없는데, 그것이 문제였을까. 그의 취미 생활 스케일이 날로 커지더니 이번에는 덜컥 배를 사 버렸다. 처음에는 그가 무엇을 산 건지 확실히 인지가 안 됐다.
‘배? 배를 샀다고? 과일이 아니라 바다에서 타고 다니는 배?’
나한테 배는 자고로 어업이나 여행업을 하면서 바다를 일터로 삼고 있는 분들이나, 혹은 돈이 썩어 넘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지금 사는 곳이 바닷가여서일까. 이 동네에는 생각보다 작은 통통배부터 아예 살림을 꾸릴 수 있을 만큼 큼직한 요트를 사서, 근처 선착장에 정박해 두고 낚시와 세일링을 즐기거나 혹은 거기서 아예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걸 보고 생각보다 쉽게 개인이 배를 소유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라는 것이 마트에서 장난감 배 사듯 쉽게 살 수 있는 그런 물건은 아니지 않은가. 여윳돈이 넘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한 달 벌어 한 달 벌어먹고 사는 우리가 소유하기에는 감당 못할 물건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중고 마켓에 굉장히 저렴한 배가 매물로 나왔다면서 보러 간 즉시,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해 버렸다. 사실 남편의 오랜 꿈 중의 하나는 ‘세일링’이다. 세일 요트를 직접 운전하며 여행을 즐기는 게 그의 꿈 중 하나라, 나와 그는 가장 기초적인 세일링 수업을 듣고 함께 자격증을 딴 적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가 배를 사 버릴 줄은 몰랐다. 게다가 바다에 떠 있는 게 용한 그런 상태의 배를 말이다. 만들어 진지는 이미 50년은 훌쩍 넘은 데다, 여기저기 곰팡이도 많이 슬어 있어 타는 것도 약간 꺼려지는 그런 배였다. 더군다나 제일 문제는 배가 떠 있기는 한데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엔진이 도는 걸 보고 샀다는데, 엔진이 무슨 일회용품이었는지 우리가 구매하자마자 멈추어 버렸다. 아무리 세일보트라지만, 처음부터 아무 동력도 없이 선착장을 빠져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태의 배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금액으로 팔았던 것이다. 아니, 저렴하면 뭐 하나. 달리지 못하는 차, 날지 못하는 비행기는 그냥 조형물에 불과한 법이다.
남편은 일회용 엔진에 당황하더니, 그때부터 온갖 세일 유튜버들의 영상을 찾아보면서 배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의 구매를 말리지 못한 나도 그 죗값을 치르기 위해 곰팡이 핀 배 내부를 청소하는 벌을 받았다. 이미 예상했겠지만, 전문 기술자도 아니고 선박 지식도 없는 남편이 고장 난 엔진을 고칠 수 있을 리 만무했고, 결국 그는 따로 중고 엔진을 구매하며 돈을 더 쓰고야 말았다. 가장 큰 문제가 엔진이었고, 그 외에도 배 내부에 물이 어디서 스멀스멀 들어오는 등 50년 된 배는 결코 타기에 녹록지 않았다. 하나 수리 하면 또 하나 터지는 각종 문제에 결국 배를 사고 한 달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시동을 걸고 선착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낡고 작은 배지만 드디어 ‘우리 배’를 타는 기분을 느껴보나 했는데 이게 웬걸, 남편은 새로 장착한 중고 엔진도 사실 불안하다며 멀리 가지를 못 했다. 바다 멀리 나갔다가 엔진이 멈춰버리면 그대로 바다를 표류하게 될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바다로 나가는 게 불안할 정도로 낡은 배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구매한 것일까. 그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허나, 막상 선착장을 떠나 바다로 나가보니, 내리쬐는 햇빛을 피할 곳이 없어 배에서 금방 내리고 싶어지는 바람에 그리 오래 타기도 힘들었다. 땅에는 중간중간 나무라도 있어 잠시 해를 피할 수도 있지만, 망망대해에 차양막 하나 없는 낡은 배를 타고 있다 보니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제 엔진이 움직이니 앞으로 계속 배를 타기는 탈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끝없이 수리할 곳이 생기는 통에 선착장에는 배를 타러 가는 게 아니라 수리하러 가는 날이 더 많아졌다.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 와서 셀프 수리를 해야 했기에 시간이 더 걸리는 건 당연했다. 결국 그 많은 시간과 돈을 쓰고도 남편은 배를 딱 두 번 타고 더 저렴한 가격에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말았다.
배를 안 타는 날에도 선착장에 계속 두어야 하기에, 매달 배 정박비로 지불해야 하는 돈도 상당했고, 거기에 보험비도 나갔으며, 태풍이 오거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배가 떠나려 가지는 않을까, 다른 배에 부딪혀서 어디 부서지지는 않았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실제로 태풍 후에 가보면 배에 물이 차 있어서 그걸 빼내고 다시 수리하느라, 배를 타라고 가지고 있는 건지 모시라고 가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남편은 재미있자고 샀지만, 배로 인해 오히려 스트레스를 심히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본인이 산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팔아버렸다. 배를 샀을 때보다 더 신이 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온 그의 얼굴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비단 배뿐이겠는가. 뭐든 이왕 살 거면 돈 좀 더 모아서 괜찮은 걸로 사야 신경도 덜 쓰고, 오래 쓸 수 있는데, 이렇게 싸다고 덜컥 움직이지도 않는 배를 사버리면 수리비가 더 나가고 스트레스도 덤으로 받는다. 부디 남편이 이번 경험으로 아무거나 덜컥 덜컥 사대는 버릇을 좀 고쳤으면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결국 그는 또 어딘가 돈 쓸 곳을 찾아낼 것이라는 걸. 오늘도 집에는 그의 새로운 취미 생활들이 택배로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