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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Jan 16. 2024

1년에 두 번이나 회사를 그만둔 남편

남편이 회사를 관두고 싶다고 말했다.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지 반년이 좀 넘었을 때였다. 이 회사를 다닌 지 1년도 채 안 되었는데 다시 관두고 싶다길래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사무실로 출근하기 싫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남편은 해외 살이를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바로 취직을 한 후, 내가  비자를 받아 미국에 들어오고 두 달 뒤 그 직장을 그만뒀다. 그가 받아들이기 힘든 부당대우가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본래 살던 곳에서 6시간이나 떨어진 바닷가 마을에 새 직장을 잡아, 둘 다 아무 연고 없는 지역으로 이사와 살게 되었다. 전 직장보다 연봉도 나았고, 전반적으로 동료들과의 합도 나쁘지 않아 큰 불만 없이 일을 하는 듯했다. 물론 종종 부서 간의 마찰은 있었지만 회사 생활 하다 보면 어디서나 있는 작은 의견 충돌 정도였다. 그래서 그가 갑자기 회사를 다시 관둔다고 했을 때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관두고 싶은 이유는 업무 문제도 연봉 문제도 동료 문제도 아닌 ‘사무실 출근’ 문제였다. 

본래 버젓이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회사였고, 일도 사무실에서만 하는 게 조건이었기에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내에서도  재택근무가 급 활성화되면서 그가 입사할 때쯤 우리도 재택근무를 시도해 보자는 움직임이 있어, 면접 합격 후에는 이사한 집으로 새 노트북이 배달되어 왔다. 당분간 재택근무를 시도해 볼 계획이니 출근하라는 지시가 있을 때까지 집에서 일을 하라는 게 새 회사의 방침이었다. 그래서 회사 사무실 근처로 이사를 왔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출근 첫날부터 회사로 얼굴 한 번 내비칠 일이 없었다. 물론 화상으로 직원들과 많은 회의를 하고, 가끔은 근처 사는 사람들과 밖에서 직접 만나 점심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업무는 백 프로 원격으로 이루어졌다. 


나도 집에서 일하는지라 얼떨결에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같이 붙어있게 되었다. 그래도 낯선 나라 낯선 지역에 있으니 남편이 곁에 있는 게 오히려 안심이 되었고, 그도 점심때마다 맛없는 패스트푸드 대신 집에서 내가 해주는 집밥 먹으면서 씻지도 않고 편히 출퇴근할 수 있으니 재택근무에 매우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당황해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그의 포지션이 재택이 아니었다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이 생활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그렇게 영원히 재택근무가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직 후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슬슬 다시 회사쪽에서 사무실 출근을 염두하고 있다는 공지가 있었다. 남편이 봤을 때는 딱히 재택근무를 하며 문제가 생긴 적은 없던 것 같은데, 그가 모르는 무언가가 발생한 건지 아니면 그저 윗사람들의 변덕인 건지 현재까지 100%였던 재택근무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얘기였다. 그때부터 남편은 몹시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아직 정확히 언제부터 사무실 출근을 시작할 건지, 또 재택이랑 출근 비율을 어떻게 조정할지 구체적인 수정 사항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재택근무에 너무 익숙해진 남편은 다시 전처럼 사무실로 출근한다는 걸 생각만 해도 극도의 스트레스가 오는 듯했다. 


매일 아침저녁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지는 교통체증을 뚫고 회사와 집을 오가야 하고, 또 사무실 내 복장도 신경 써야 하며, 좋든 싫든 회사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생활을 해야 하는 게 그는 미칠 정도로 싫었나 보다. 본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북적이는 곳을 피하는 성향에, 늘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기 빨린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집을 떠나 다시 예전의 업무 방식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본인이 사무실 출근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때부터 언제 없어질지 모를 재택근무 생각에 예민해졌다. 그러더니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사무실 출근이 시작되기 전에 이 회사를 관두는 것이었다. 


남편도 물론 그만의 입장과 사정이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외국인인 내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단기간에 이직을 반복하는 걸 보는 건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다. 꼭 외국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1년에 두 번이나 회사를 관두려는 남편은 가족에게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의 취미가 계속해서 바뀌듯, 직장도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평생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마는 건 아닌지 나 역시 보통의 아내들처럼 우려가 되었다. 나라도 가장으로서 단단한 버팀목이 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 더 걱정이 앞설 수밖에.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예고한 대로 역시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약 2~3주 정도 놀러 다니며 여유 시간을 즐겼다. 다행히 변덕은 심한 사람이어도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아니어서 몇 주 놀더니 다시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야 할 걱정 없이, 애초에 백 프로 집에서만 하는 재택근무 포지션으로 직장을 잡는 게 그의 목표였다. 재미있게도 그가 얼마 전 관둔 직장의 동료가 재취업을 도와주었다. 그 역시 사무실 출근 공지를 듣고 남편보다 일찍이 회사를 관둔 후 재택근무만 하는 회사로 옮긴 상태였는데, 그곳에 새로운 자리가 난 건지 남편이 일을 관뒀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 온 것이다. 그렇게 운 좋은 남편은, 베트남 경력까지 포함해 한 회사에서 1년도 못 채운 경력을 세 번이나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출근 걱정할 일 없는 회사에서 새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간절한 바람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낸 건지 알 수 없지만, 결국에는 바라던 대로 되었으니 일단 축하부터 해줘야겠다. 물론 이 직장도 언제까지 다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심신의 안정을 위해 그의 변덕 때문이 아닌, 더 나은 업무 환경을 찾고 있던 그의 노력이라고 좋게 포장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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