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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Jan 24. 2024

돈이 없어서 집을 삽니다

요즘 사람들과 맞지 않게 남편과 나는 정말 가진 거 없이 결혼한 편이다.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또래에 비해 각자 모은 돈도 많지 않았고, 그 마저도 베트남 생활을 하며 마이너스로 만들었다. 결혼을 할 때는 국제결혼을 핑계로 예단과 혼수도 생략했다. 일단 남편이 저렴한 월세집을 얻어 놓고, 총각 때 쓰던 가구나 싸게 산 중고 물품을 대충 갖다 두고 살았다. 이직으로 이사를 할 때도 당연히 월세 집을 구했고, 그때부터 비상금을 쓰거나 그 달 그 달 번 돈으로 조금씩 가구를 새로 사들였다. 거실과 안방이 하나 있는 ‘원 베드룸’ 타입의 아파트였지만 1층이라 옆에 딸린 차고도 쓸 수 있었고, 둘이 쓰기에는 거실도 넉넉한 편이라 사실 난 이 아파트가 좋았다. 해주는 것 없는 관리실의 태도는 짜증 났어도, 조용하고 깔끔한 이 아파트 단지가 나름 신혼집으로는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딱히 별일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이 집과 재계약을 하고 좀 더 살고 싶었다. 그런데 별 일이 생겨버렸다. 아파트 회사 쪽에서 갑자기 월세를 엄청나게 올린 것이다. 


나날이 고공행진 하던 미국 물가는 이 시골 마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고, 그 영향을 재빠르게 수용한 아파트 쪽에서는 어떠한 언질도 없이 월세를 확 올려버렸다. 당연히 재계약을 생각하고 있던 남편과 나는 확 달라진 고지서에 집을 보는 시선마저 바뀌어 버렸다. 아늑하고 따스하게만 느껴지던 집이, 월세가 오르니 과연 이 금액의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는 집인가 의구심이 들어, 우리가 매달 내는 금액에 비해 집이 더없이 초라하게 느껴진 것이다. 처음 이 아파트로 들어왔을 때도 시골 아파트 치고 좀 비싼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월세가 달에 200불 인상되어, 1년이면 2400불, 한화로 30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추가로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집이 온전히 보였을 리 없다. 월세가 그만큼 올라갔다고 월급도 그렇게 훌쩍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는 집에만 앞으로 300여만 원을 추가로 써야 한다는 것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 번 내면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이 신기루 같은 월세에 그 돈을 더 쓰는 게 맞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월세가 더 낮은 집을 찾아 옮긴다면 이보다 더 싼 건 원룸 혹은 치안이 위험한 지역일 것이다. 그러다 인터넷을 막 뒤져보던 남편은 의외의 제안을 했다. 도저히 그 돈 내고 여기 사는 건 아닌 것  같으니 차라리 집을 사자는 것이다.

 

월세가 올라 더 사냐 마냐 고민하는 처지에 집을 산다는 게 무슨 말인가. 남편은 대략 현재 살고 있는 지역 주변으로 집 시세를 알아봤고, 현재 자신의 신용 점수와 직장 등을 고려해 가능한 대출 한도를 계산해 보았다. 그랬더니 30년 융자로 했을 때 매달 은행에 갚아야 하는 돈이 이 집에 내야 하는 월세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차피 나가는 돈은 비슷한데, 그래도 하나는 자산으로 잡힐 수 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그냥 영원히 볼 수 없는 돈이 되는 것이다. 또 같은 돈을 내도 쓸 수 있는 공간의 크기가 굉장히 달랐다. 아파트는 ‘원 베드룸’이지만 집을 산다면 방 세 개에 작게나마 정원도 있는 공간에서 지낼 수 있으니 집을 훨씬 넓게 쓸 수 있었다. 물론 매매로 하냐, 월세로 하냐는 사람마다 갖고 있는 경제관에 따라 뭐가 더 나은 선택인지 판단도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살고 있는 입주민임에도 예상외 금액으로 집세를 올린 아파트 쪽에 좀 섭섭한 마음이 있었고, 월세로 생돈이 더 나간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사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았던 건지, 괜찮은 매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연락하면 이미 나갔거나, 아니면 기회가 있어도 하루 이틀 고민하는 사이 금방 다른 사람에게 팔려버렸다. 부동산 업자에게는 일거리가 많아지는 기분 좋은 시기라 해도, 정해진 기간 안에 이사 갈 집을 골라야 하는 우리는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아침부터 부동산 사이트 켜 두고 매물을 보고 일하면서도 틈틈이 집만 찾을 결과, 나온 지 얼마 안 된 집을 볼 기회가 생겼다. 살고 있는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우리가 본 건 굉장히 아담한 2층 집으로 집의 나이가 나와 같을 정도로 오래전 지어진 집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태풍에 휩쓸리거나 침수된 적 한 번 없고, 리모델링도 몇 년 전에 새로 한 터라 주방이나 화장실을 보면 세월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마음에 아주 꼭 드는 그런 집은 아니었다. 그래도 딱히 흠잡을 곳 많지 않은 데다, 조금만 한 눈 팔면 매물이 금방 나가 버리는 이 마당에, 이 정도면 베팅을 해봐도 괜찮은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포함해 총 세 팀이 이 집을 사고 싶어 했고, 때문에 집주인은 금액을 더 높게 제시한 사람에게 집을 판다는 조건을 걸었다. 나보다도 집을 더 마음에 들어 했던 남편은 영혼까지 끌어다 본인이 제시할 수 있는 최대의 금액을 제시했고 결국 우리는 집 계약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대부분의 집 값을 대출받는다고 해도 백 프로 대출은 어려우니, 계약금은 결혼 때 받은 축의금을 끌어 모아 꼭 지불해야 하는 기준에만 맞췄다. 물론 빚이 대부분이나 생애 최초 우리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매매계약을 하며 기쁨보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빨리 집을 살 계획이 없었기에, 높은 월세에 떠밀려 더 높은 빚을 졌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국에서 집을 산다는 건, 매달 은행에 갖다 내는 것 외에도 돈 들어갈 곳이 엄청 많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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