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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Jan 07. 2024

들짐승과 함께 한 노숙

본래 나는 캠핑이나 등산 같은 야외 활동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원래부터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그런 활동이 훈련처럼 느껴져서 싫다는 아버지 덕에 일찍이 그쪽에는 흥미가 꺾였다고 할 수 있겠다. 때문에 친구들이 한창 차박이다 글램핑이다 하며 캠핑과 등산에 빠져 있을 때도 나는 굳건히 집에만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다. 


그는 어릴 적 보이스 카웃 활동을 한 것을 최고의 재미로 꼽을 정도로 야외 활동을 좋아했는데, 한국에서 도시 생활을 하면서 잠시 잊고 있다가, 다시 미국 시골로 돌아오면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이 깨어난 것이다. 그러더니  작은 텐트를 비롯해 각종 캠핑 도구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나도 친구들 SNS로만 봤던 낭만 캠핑을 한 번 느껴보고 싶어, 그의 캠핑에 동참하기로 했다. 


주말 1박 2일 캠핑을 하기로 하고, 집에서 약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어느 국유림에 도착했다. 그는 차를 갓길에 대충 세우더니 트렁크에서 군장만 한 크기의 배낭을 두 개 꺼냈다. 모든 캠핑 계획을 그에게 맡겼던 나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국유림 근처에 있는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고기도 구워 먹으며 자연을 만끽하는 캠핑인 줄 알았건만, 그가 준비한 캠핑은 군장을 메고 2시간 넘게 걸어서 흙바닥에 대충 텐트를 치고 자는 노지 캠핑이었던 것이다. 사실 말이 좋아 노지 캠핑이라는 단어를 쓰는 거지, 그냥 밖에서 노숙하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내 등을 완전히 가리고도 남는 큰 배낭을 메고 걷기에 나섰다. 주로 숲으로 이루어진 산림지였기에 길이 험하지는 않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지 않아 그나마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었다. 설사 길이 험하다 하더라도, 거기서 포기해 버리면 다시 오도 가도 못 한 채 그 길바닥에서 자야 하는 상황이라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걸었다. 어디서 자든 노숙인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돌이 많이 굴러다니는 경사진 길보다는 잔디가 좀 있고 평평한 곳에서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남편은 인터넷을 뒤져보니 두 시간가량 걸어 들어가면 호숫가가 나오고 그 근처에서 캠핑을 하는 게 좋겠다며 계속 채찍질을 했다. 


중간중간 쉬기도 했지만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호숫가에 도착했다. 풀밭이 있고 물이 나오는 수도가 하나 놓여 있는 자그마한 호숫가였다. 그쪽에 등에 이고 온 작은 텐트를 펼쳤다. 정말 딱 두 사람의 몸집만 뉘일 수 있는 아주 작은 크기의 텐트였다. 온몸이 땀에 찌들어, 물로 씻어 내고 옷도 갈아입고 싶었지만, 물을 쓸 수 있는 곳은 내 무릎 높이의 수돗가 하나가 전부였기 때문에 그냥 바람에 땀을 말렸다. 자연을 감상할 새도 없이 바로 배가 고파왔다. 남편은 불을 피워야 한다며 가방에서 도끼를 꺼내 건넸다. 집에서 장작을 팰 때 쓰는 도끼를 캠핑에 가지고 온 것이다. 남편은 그 길로 여기저기서 나무들을 주워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 나무들을 불을 피우기 알맞은 크기로 잘라냈다. 


숲에 있는 나무들은 집 근처 나무들보다 훨씬 크기도 크고 두툼했다. 웬만한 도끼질 몇 번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오히려 열 번에 넘어가는 나무는 쉬운 나무였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지 얼마 안 된 나무를 반으로 가르면, 마른나무를 팰 때는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인다. 바로 나무속에서 얽히고설킨 그들의 붉은 혈관들이다. 식물에 무지한 나는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사람 피처럼 붉은색을 띠는 얇은 선들이 나무속에 얽혀있다. 사람과도 같아 보이는 나무의 혈관을 보며 어쩌면 사실 나무나 사람이나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자른 나무들로 불을 피우고 군용 반합 같은 작은 통에 가져온 식수 조금과 먹을 수 있는 파우더를 부어 끓였다. 그 파우더는 본래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사둔 비상용 건조식품인데, 모든 것들을 이고 지고 움직여야 하는 노지 캠핑의 경우, 최대한 짐을 가볍게 들고 와야 하기에 이렇게 대충 때울 수 있는 음식을 갖고 온 것이다. 불에 끓이고 나니 몇 분 후 치즈 마카로니 같은 형태로 변했다. 말 그대로 칼로리를 채울 수 있는 비상식량이지 ‘요리’의 형태는 아니었기에,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배가 고팠음에도 불구하고 반도 입에 대지 못했다. 상상했던 캠핑 바비큐는 무슨 노숙 쉼터에 가도 이보다는 먹을 만한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먹는 것보다 더 쉽지 않은 건 볼일을 보는 일이었다. 남편에게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자, 이 넓은 자연을 화장실로 쓰라며 작은 휴대용 삽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먹은 게 많이 없어 삽까지 쓸 일은 없었지만 해가 져 어두 컴컴한 숲을 뒤져 바지를 내리고 볼 일을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섭고 생경한 일이었다.

 

전기는커녕 핸드폰 전파도 제대로 안 터지는 이곳에서 해가 지면 달리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멍하니 타들어가는 나무를 조용히 바라보는데 이상하게도 불안함보다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몰려왔다. 내 몸에서 나는 땀 냄새도, 배가 고파 꼬르륵 거리는 뱃소리도, 밤이 되자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호숫가 개구리와 새소리도 잊힌 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이 깊은 숲 속에서 불꽃 하나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내가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묘했다. 


7시도 되기 전에 플래시 라이트 없이는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해졌다. 호숫가를 비치는 달빛만이 주변에 있는 유일한 빛이었다. 그래서 그냥 잠자리에 들기로 하고 텐트에 기어 들어갔는데, 어디선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소리가 들렸다. ‘아우우우’하는 것이 늑대 같기도 하고 여우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동물의 소리였다. 남편은 이게 바로 미국 코요테의 소리라고 했다. 근처 어딘가 코요테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코요테는 가수 코요테만 알았지 이렇게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육식과 동물 코요테를 마주한다는 걸 상상해 본 적 없던 나는 소름이 쫙 끼쳤다. 그는 생각보다 코요테가 겁이 많은 동물이라 불을 피워두면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불이 뭐 밤새 안 꺼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나를 안 먹을 거라는 걸 완전히 보장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뉴스에 나온 다른 캠퍼들처럼 곰 같은 포식자를 맞닥뜨린 것은 아니지만, 어릴 적 ‘전설의 고향’에서 흔히 들었던 그런 코요테의 울음소리는 나를 공포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날이 밝을 때까지는 나는 단 한숨도 자지 못 했다. 코요테의 울음소리는 밤새 계속되었고, 그들 외에도 숲에는 생각보다 야행성 동물들이 정말 많았다. 밤에 펼쳐지는 그들의 오케스트라 공연 한가운데에 내가 끼어든 느낌이었다. 게다가 춥기는 또 얼마나 추운지, 수면 바지와 양말을 갖고 와 꽁꽁 싸매고 잤는데도 이 놈의 싸구려 침낭과 텐트는 그 어떤 난방 기능도 해주지 못했다. 역시 노지 캠핑은 그냥 노숙과 다름없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집으로 돌아오며 맥도널드에서 맥모닝을 하나 먹어치우자, 이제야 다시 내가 살던 세계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땀 내는 옷을 벗어던지고 침대에 쓰러져 간 밤에 못 잔 잠을 채웠다. 그리고 눈을 떴는데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웃기게도 간 밤이 재미있었다고 느낀 것이다. 몸은 몸대로 힘들고, 밥도 제대로 못 먹은 데다 밤새 들짐승 울음소리에 공포에 떨었는데도, 그 상황을 무사히 넘기고 등 따뜻한 집으로 돌아오니 그게 머릿속에서 ‘괜찮았던 기분 전환 나들이’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나의 노지 캠핑 경험을 얘기해 주자, 하나같이 그게 무슨 캠핑이냐 군대 행군한 거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다. 오히려 도시에서 하는 노숙보다 더 위험한 것 같다는 친구들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의 하룻밤이, 나에게는 놀랍다 못해 재미난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결국 이 노지캠핑에 빠지게 되었고, 캠핑 용품이 더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노지 캠핑을 넘어 텐트 없이 해먹에서 자는 해먹 캠핑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시골 생활은 매우 불편하지만 도시에서는 내가 아예 꿈도 꾸지 않았던 것들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노지 캠핑 자체보다, 그걸 하는 과정에서 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게, 실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나무에 매달려서 하게 될 해먹 캠핑은 또 내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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