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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Mar 27. 2024

외국 가서 친구 없이 사는 외향인

MBTI가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내가 외향적 성격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게으른 탓에 밖에 나가는 걸 귀찮아할 때도 있었지만, 하루에 약속을 몇 개씩 잡을 정도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고, 실제로 사람들과 어울리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에너지를 얻었다. 낯도 안 가리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즐겼으니 혼자 여행 다니며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었다. 잘 모르는 외국에 나가 사는 것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이유가, 본인 스스로가 적응력이 좋고 어디를 가든 친구를 잘 사귀는 유형으로 과대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시골에서 지내고 있는 나는, 친구가 없는 사람이다. 운전 없이는 집 밖을 나설 수도 없는 환경이라 사람 구경이 힘든 것도 있지만 주변에 내 또래로 보이는 이들도 적었고, 워낙 흉흉한 뉴스가 많은 치안 사정에 괜스레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 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과 주택가로 이사를 한 후에도, 그전에 살던 곳보다 나은 것이지, 여전히 한국의 도시들처럼 북적임을 보기 힘든 곳이다. 미국에 놀러 오셨던 우리 부모님은 다른 집들은 다 빈집이냐고 할 정도로 굉장히 조용한 마을인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이웃들과라도 친하게 지내볼까 싶어 음식을 만들어 찾아갔지만, 음식 문화가 다르고 사람 사귀는 방식도 달라서인지 생각처럼 가까워지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여기서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일도 집에서 하는 터라 더더욱 사람 만날 기회가 없어지다 보니, 그냥 친구가 없는 이 상황이 굉장히 당연해졌다. 물론 친구 없는 것이 익숙해진 것과, 친구들과의 시간이 그리운 것은 다른 문제다. 때로는 마음 맞는 친구와 왁자지껄 떠들면서 술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무언가 벽이 느껴지는 미국인들에게, 에너지 쏟고 마음 쏟아 가까워지고 싶다는 의지가 점점 줄어들었다. 


베트남에 있을 때만 해도 이사 가자마자 현지 친구를 만들었던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해가 바뀌어도 친구 한 명 없이 지내는 나를 보고, 한국 친구들은 좀 의아하게 여기기도 했다. 나도 내가 친구 없이는 못 살 사람인 줄 알았기에, 사교 활동에 전혀 적극적이지 않은 나 자신이 신기했다. 단순히 한 두 가지가 바뀌어서 그렇다기보다, 달라진 내 체력과 지리, 문화적 환경 등 꽤 많은 것들이 영향을 준 것 같다. 남편은 처음에 친구 없이 혼자 지내는 나를 좀 걱정하기는 했지만, 바란다고 없던 친구가 뿅 하고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그냥 인연이 없으면 없는 대로 닿으면 닿는 대로 순리대로 흘러가기를 내버려 두며 지내기로 했다. 


친구가 없는 생활도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다. 함께 사는 짝이 있으니 좋은 말벗이 되어준다. 어떤 이들은 남편과 24시간 붙어 있는 생활이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필요할 때마다 얼굴 맞대고 얘기할 수 있어서 좋다. 같이 있다고 해서 계속 같이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별로 지치지 않는 데다, 둘 다 밥도 간단히 먹는 편이라 식사 차리는 게 큰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들을 만나지 않는 대신, 그 시간에 생산적인 일을 하며 이른바 ‘갓생’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꼭 그런 건 아니다. 여가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거나 멍하니 시간을 때울 때도 있다. 당연히 해외에서 지내는 외로움도 있었는데 이제 그런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가끔 느끼는 게 아닌, 늘 있는 기본 감정값이라 생각하니, 딱히 외로움에 깊이 사무치는 일도 없어졌다. 


오히려 이렇게 현지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 친구도 많이 만들고 내 나라처럼 적응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난 후, 오며 가며 보는 사람들과 더 편히 대화할 기회도 생겼다. 애초에 나는 이 나라 사람도 아니고, 이 나라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냥 이방인이니 이방인으로 내 정체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조용히 묻혀 사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쉬는 날 누군가를 만날 일정이 없으면 심심함을 넘어 괜한 불안감을 느낄 때도 있었는데, 여기서는 누굴 만날 일이 있는 게 이벤트라 넉넉히 비어 있는 일정이 자연스럽다. 물론 성향이 아예 변한 건 아니라서 여전히 사람 만나는 일은 좋다. 단지, 친구가 없어도 내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알게 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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