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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Mar 22. 2024

미국에서 백인들에게 일본 무술을 배우는 한국 여자

제목 그대로다. 나는 미국에서 일본 무술인 가라테를 배우고 있다. 평생 무술이라고는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억지로 시켜서 태권도 노란띠 까지 땄던 거 말고는 없기에, 내가 가라테를 그것도 미국에서 백인 선생님한테 배우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깊은 생각 없이 일단 그냥 해보는 나의 바보 같은 성향 때문에 그렇다. 


미국에 오고 나서 남편도 재택근무로 바뀐 뒤, 우리는 정말 종일 집에만 있었다. 답답할 때는 외식을 하러 나가거나 종종 카페에 일하러 갈 때도 있었지만 학교에 가거나 사무실 출근을 하지 않는 우리는 정말 최소한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점차 지박령이 되어가는 것도 걱정스러웠지만 안 그래도 연고 없는 지역에 와서 그 어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기회도 만들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우리도 건강도 챙기고 다른 사람들도 볼 겸 무언가 해야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남편 또한 일이 끝나도 계속 같은 공간에 있거나 주변 산책만 하는 것이 지루했던 터라 같이 무슨 운동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술을 배워보는 것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그는 대학 때 교양 수업으로 ‘영춘권’ 수업을 들었고, 거기에 흠뻑 빠져 학교 수업 외에 따로 무술 과외까지 받으러 다녔다고 한다. 미국 대학에서 영춘권 교양 수업이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남편의 몸은 전혀 운동한 몸처럼 보이지 않기에 그의 과거는 놀라웠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일을 하면서 무술 연습을 그만둔 게 아쉬웠는지 오랜만에 영춘권은 아니더라도 무술류의 운동을 하고 싶다며, 집 근처에 있는 ‘가라테’ 도장 정보를 보여줬다. 나는 가라테에 관해 전혀 아는 게 없었어도 왠지 태권도와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아, 같이 가라테 도장에 일일 체험을 신청했다. 성인 수업반에는 10대 유소년들과 머리가 새하얀 장년층까지 굉장히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간단한 준비 운동과 함께 발차기, 펀칭 기술, 그리고 방어술 등 50분이라는 시간을 지루할 틈이 없이 다양한 운동 기술로 꽉 채운 수업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안전 장비를 갖춘 후 스파링을 하는 높은 급수의 수강생들의 모습은 없던 무술의 열정이 지펴질 만큼 멋있어 보였다. 


일일 수업 후 빠르게 진행되는 수업 속도에 재미를 느껴 그냥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미국행도 한 번 가보기로 결정하고 이렇게 눌러 있게 된 것처럼, 나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앞으로의 일을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내린다. 그게 나의 장점이나 단점이기도 하다. 할인해 준다는 말에 단번에 1년 치 수업료를 지불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남편과 함께 무술 수업에 참여했다. 서로서로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도장 분위기에, 집에만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에너지를 얻었다.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본 팔 굽혀 펴기나 스파링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았고, 잠깐이지만 도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아시아 무술인만큼 종종 그들이 쓰는 용어에서 일본어와 한국어를 그대로 가져와 쓰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고 말이다. 여전히 언어 장벽은 늘 나를 따라다니는 불편함이라, 가라테 수업에서도 말을 이해 못 해 그냥 고개만 끄덕일 때도 있었는데, 운동이다 보니 남들 하는 자세를 보며 이해한 척하는 기술도 늘어갔다. 


사실 내가 사는 지역 특성상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백인인 도장이다. 내 나이대의 성인 여자가 가라테 수업에 참여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닌데, 거기에 몸집도 작고 근력도 없는 아시아인 수강생이 있으니 나는 조금 더 눈에 띄는 편일 거라 생각한다. 심지어 나는 학교에서 달리기를 하면 늘 꼴찌 자리를 놓고 다툴 정도로 심각한 운동 신경의 보유자라 가라테를 할 때도 여지없이 그 능력이 드러났다. 특히 승급 시험이 있는 날에는 다른 수강생들의 가족들이 한가득 모인 자리에서 내 부실한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민망함에 어린아이처럼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 채로 있기도 했다. 


다행인 건, 어릴 때는 그 창피함에 어떻게든 숨으려 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부끄러운 내 모습에도 무던해졌는지 오히려 내가 잘한 모습에만 집중한다는 사실이다. 남들은 팔 굽혀 펴기 50회 할 때 나는 겨우 10회를 했지만, 내 인생에 그것은 엄청난 기록이기에 남편과 조촐히 팔 굽혀 펴기 10회 기념 외식도 했다. 또 바라던 대로 가라테 도장을 통해 첫 동네 친구도 만들었으니 여러모로 나쁘지 않은 시도가 되었다. 현재는 다른 수강생들과 스파링을 할 수 있는 레벨까지 올라갔어도 실력만 놓고 보면 아직도 초보자급이라, 솔직히 나와 아주 잘 맞는 운동이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역시 맞건 안 맞건 해봐야 아는 거고, 안 맞아도 해보는 시도를 통해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혹시 모를 일 아닌가. 내 인생의 검은띠가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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