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이해 안 되고 적응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그중 미국 욕실 사용법도 내게는 굉장히 어려운 것 중에 하나였다. 한국에서 평생을 욕실용 슬리퍼를 신고, 청소할 때는 사방팔방 시원하게 샤워기를 뿌려대며 쓸 수 있는 습식 욕실을 쓰다가, 갑자기 물 한 방울 밖으로 튈까 조심해야 하는 건식 욕실을 쓰면서 말이다.
한국처럼 욕실 바닥에 배수구가 없으니 물기가 생기면 직접 닦을 수밖에 없는 데 이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특히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면 아주 넓은 세면대가 아니고서야 세면대 주위로 물이 튀는 게 다반사라, 늘 마른 수건으로 세면대와 카운터를 닦는 새로운 습관을 길러야 했다. 샤워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국 욕실에는 대부분 욕조가 있어서 반신욕을 즐길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이게 그저 샤워용으로 있는 욕조라 깊이가 매우 얕아 반신욕 따위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그저 인테리어 용이라 생각했던 샤워 커튼은 물이 욕조 밖으로 튀지 않도록 신경 써서 제대로 여며야 하는 욕실 필수품이었다. 샤워 후에 잘 말린다고 해도 어느새 커튼 밑부분에 곰팡이가 스멀스멀 올라오니, 생각보다 자주 갈아줘야 하는 소모품이라 좀 귀찮기도 하다. 그래도 적응 하고 나니, 누군가 바로 쓰고 난 뒤에도 훨씬 더 뽀송함을 유지하고 있는 건식 화장실이 습식 화장실보다 좋을 때도 있다.
사실 이보다 내게 더 신경 쓰이는 건 미국인들의 샤워 습관이다. 모든 미국인들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남편을 비롯해서 주변 미국인들은 샤워 시, 손바닥만 한 작은 천 쪼가리를 사용한다. 샤워볼로 거품을 내는 나는, 천 쪼가리로 거품을 내서 샤워를 하는 방식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살아온 방식이 다르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남편이 샤워 후, 사용한 천 쪼가리가 젖었다는 이유로 욕실에 두고 나오면 그게 나중에 덜 마른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냄새가 나기 전에 미리미리 빨래통에 넣어두면 좋으련만 자꾸 잊어버린다고 하니 그 다 쓴 샤워용 천을 자꾸 마주하게 되는 것도 은근히 괴롭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다른 양식의 욕실, 다른 샤워 습관을 가진 사람과의 적응기와 불편함이라 치지만 미국 욕실에서 샤워를 하면서 해결되지 않는 의문점이 하나 있다. 우리 집 샤워기는 호스가 달려 있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샤워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그 긴 줄을 자유롭게 이용해 등 뒤 건 겨드랑이건 수압을 주고 싶은 부위에 물을 쏴 주면서 구석구석 닦을 수가 있다. 그런데 다른 미국인들 집에 가거나 특히 미국 호텔에 묵을 때는 그냥 샤워 헤드만 떡 하니 달려 있는 욕실이 정말 많다. 고정된 샤워 헤드만 있으니 내가 원하는 곳에 물을 뿌릴 수 없어, 내가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움직이고 때론 곡예 댄스와 같은 동작을 하며 샤워를 해야 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호스가 달린 샤워기를 여행 갈 때마다 갖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몸을 배배 꼬며 열심히 물이 떨어지는 곳에 몸을 갖다 대도, 한 군데 속 편하게 씻기 어려운 곳이 있는데 바로 엉덩이 쪽 주요 부위이다. 남자건 여자건 성별 상관없이 긴 샤워기 호스를 이용해 비데처럼 아래에서 물을 쏴 줘야 속 편하게 깨끗이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놈의 미국 욕실에서는 머리 꼭대기에 달린 샤워 헤드가 그것을 허락해주지 않으니, 늘 최선을 다해 씻고 나와도 찝찝한 기분이다.
미국 생활 방식에 대한 의문점이 있다며 물어보기에 조금 남사스럽기도 한 질문이라, 시어머니와 시누이한테도 물어보지 못했다. 또 그런 걸 물어볼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도 아니다. 남편보다는 나와 같은 신체구조를 지닌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훨씬 이해가 잘 되고 공감이 될 것 같은데 이런 질문을 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여자인 친구가 없어 계속 내게는 의문점으로만 남아 있다. 나중에 남편처럼 샤워 거품용 천 쪼가리를 쓰는 사람들은, 그걸 이용해 샤워 헤드만 있는 욕실이라도 구석구석 씻는 게 가능하다고 들었지만, 그 천을 모든 미국인들이 쓰는 건 아니기에 아직 내게는 해결되지 않은 미국 욕실의 은밀한 의문점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