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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Mar 08. 2024

말 안 통하는 외국인들과 친구가 되는 아빠의 능력

부모님이 미국에 오셨다. 전부터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방문하고 싶어 하셨지만, 아파트에 살 때는 방이 한 개라 초대가 쉽지 않았다. 다행인지 아닌지 월세가 올라 급히 이사를 한 후에는 남는 방 한 개를 손님방으로 만들었고, 부모님은 날이 따뜻해지자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총 한 달을 미국에서 지내기로 하셨는데 우리 집에서는 2주, 남은 2주는 미국 사는 친구분들과 다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내기로 하셨다. 사실 부모님이 내가 사는 곳에 오신다는 건 너무 신나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자고로 멀리 있어야 평안한 가족이다.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맞대게 되면 분명 얼마 안 가 싸울 일이 생길 게 분명했다. 특히나 계획성을 추구하는 나와 즉흥성이 강한 아빠는 무언가 같이 하려 할 때 늘 삐걱거렸다. 그래도 멀리서 딸 사는 거 보겠다고 여기까지 오시는 데 최대한 하고 싶은 거 하실 수 있게 맞춰야겠다 다짐했다. 


그렇지만 사실 여기서 두 분이 할 만한 게 많지 않았다. 구경할 거리가 많은 동네도 아닌 그저 미국 구석 시골 마을이라, 하루 이틀이면 대략 근처 옆 동네까지 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곳은 골프장이 지천이라는 것이다. 운동 자체에 관심이 없던 아빠가 은퇴 기간이 다가오며 골프에 빠졌고 은퇴 후에는 더더욱 골프에 열정을 쏟고 있다. 한국에서는 필드 한 번 나가려면 도심에서 거리도 있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드는 반면, 내가 사는 이 동네는 남는 게 땅이라 거의 각 마을 커뮤니티마다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골프장이 많다. 내가 사는 마을에도 입주민들을 위한 골프장이 있고 그를 위해 매달 관리비도 내고 있지만, 골프에 관심 없는 나와 남편은 한 번도 이용해 본 적 없는 곳이다. 


골프 장비를 갖고 오지 않으신 부모님을 위해 장비까지 대여해 주는 골프장을 근처에서 찾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두 분 이서만 몇 번 게임을 즐기러 나가셨다. 골프를 안 치는 나는 차로 픽업만 하러 왔다 갔다 하고 순전히 골프장에는 두 분만 가셨는데,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두 분 끼리 괜찮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웬걸. 걱정이 무색하게 가는 골프장마다 친구를 만들어 오셨다. 백인들만 있는 골프장에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아침에 동네 산책을 나가시더니 나는 한 번도 얘기해 본 적 없는 이웃들의 근황까지 알아오셨다. 저 집은 최근 화단작업을 시작했다더라, 앞집 사람들은 다음 달에 휴가를 어디로 간다더라 등 나는 전혀 몰랐던 이웃들의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다. 도대체 어떻게 대화를 나눴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였다. 


스포츠야 언어가 필요 없는 만국 공통어라 영어를 못 해도 대충 통할 수 있다 치지만, 간단한 자기소개 정도만 하는 아빠가 어떻게 내 미국인 이웃들과 그렇게 많은 얘기를 나누는 건지, 밖에 나가 이웃을 만나면 적어도 20분 이상은 떠들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엄마는 원래 아빠가 사교적이지 않냐고 하는데, 그 특유의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어디서든 사람을 사귈 수 있나 보다. 친구분들과 떠난 애틀랜타와 애리조나 여행에서 사귄 사람들과는 한국에서까지 다시 만날 정도로 가까워지셨다. 


지금은 미국 시골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약간 성격이 변하기는 했지만, 나도 그전까지는 꽤 쉽게 사람을 사귀는 사교적인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단순히 남편에 비해 그런 편이었고, 아빠에 비하면 나는 아주 심한 낯가림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해외 생활을 해야 했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부모님인 것 같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 언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부분인가 의문이 생긴다. 물론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해외 생활을 하거나 여행을 할 때 편하고 이로운 점이 많겠지만, 사실 손발을 이용한 제스처와 표정, 눈빛만으로도 소통을 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 말이다. 언어의 중요성을 간과하자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언어적인 소통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오늘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나는 영어책에서 한 걸음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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