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부엌에는 없는 게 있다. 바로 설탕과 밀가루다.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 나이라는 것과 남편과 내가 그리 건강한 체질은 아니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제는 설탕과 밀가루가 건강에 해롭다는 건 거의 상식처럼 알려져 있어, 집에서만이라도 설탕과 밀가루 없는 요리를 하고 있다. 다행히 요즘에는 대체 식품도 많이 있어서 설탕 대신에 꿀과 아몬드 가루로도 충분히 여러 집 밥 요리가 가능하다. 그런데 미국에서 특히, 내가 사는 남부 지방에서 집에 설탕이 없다고 하면 사람들이 너무 신기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남부 가정식 요리에 설탕은 아주 필수 중에 필수기 때문이다.
미국 명절에 시가에 가거나 동네 친구 집에 가 명절 음식을 얻어먹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가서 보면 설탕을 어마어마하게 소비한다. 대표적으로 남부 미국 음식 중 하나인 고구마 캐서롤을 예로 들자면, 이미 당분이 있어 이름마저도 ‘스위트 포테이토’인 고구마를 쪄서 으깬 뒤에 흑설탕 한 팩을 거의 다 쏟아붓는다.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에는 당분이 50%가 넘는 마시멜로를 그 위에 전체적으로 다 깐 다음 오븐에 굽는 게 바로 미국 가정 요리인 고구마 캐서롤인 것이다. 그냥 먹을 때는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보니 이럴 거면 그냥 설탕을 숟가락으로 퍼 먹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로 당이 많이 들어간다.
집 밥에 이 정도로 설탕을 많이 쓰는 것 외에도, 간식으로도 엄청난 양의 당류를 사들인다. 매년 부활절이 되면 우리 집으로 초콜릿, 사탕, 젤리, 마시멜로 등이 한가득 들어간 바구니가 배달 온다. 바로 시부모님의 선물이다. 미국에서는 성탄절이나 부활절 같은 명절에 초콜릿 같은 단 걸 선물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말이다. 이 동네 사람들 또한 부활절 다음 날에는 마트에서 간식류를 할인한다며 아이들 먹을 초콜릿을 싹쓸이한다. 나도 한 번 궁금해서 어떤 간식들을 사나 동네 친구를 따라가 봤는데, 하나같이 성분표를 보면 첨가당이 40%, 50%가 넘는 간식들이다. 모르면 몰랐지 뭐가 얼마큼 들어갔는지 알기에 카트에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나에 비해, 친구는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한다며 카트 하나를 달달한 과자들로 가득 채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친구는 자기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한다. 나의 남편도 시부모님에게는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사랑스러운 자식이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왜 몸에 안 좋은 설탕과 화학첨가물이 범벅된 음식들을 권하는지 그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전에야 설탕이 그렇게 몸에 안 좋은지 몰랐다지만, 지금은 모두 알고 있다. 시어머니도 당과 탄수화물을 줄이는 식단을 하고 계시고, 친구도 보통은 아이들 먹일 식재료 고르는 데 신중한 편이니 말이다. 가끔 먹는 이벤트 음식이라면 이 정도로 이해가 안 되지는 않겠지만, 내가 가 본 많은 미국인들 집에는 늘 설탕이 잔뜩 들어간 음료수 페트병이 쌓여 있고, 아예 설탕이 하얗게 덩어리 채로 붙어 있는 시리얼과 간식을 일상적으로 먹는다.
성인이 된 미국인들이야 어릴 때부터 단 음식에 절여져 지금도 어쩔 수 없이 찾는다지만, 그렇다면 다음 세대인 아이들에게라도 어릴 적부터 보다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여기 사람들은 건강한 식습관에는 관심이 덜 한 느낌이다. 물론 앞서 얘기했듯, 내가 살고 있는 미국 지역은 튀김 요리와 단 음식이 유명한 남부 지방이라 더 그런 것도 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본인도 알고 있는 해로운 음식을 권장하고 먹이는 건 식문화라 치더라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곳 식문화가 이렇다 보니, 장을 볼 때마다 한국 살 때는 신경도 안 썼던 성분표를 보기 위해 매번 상품들의 뒷면을 확인하고 있다. 여기서는 정말 내가 정신 차리고 잘 고르지 않으면 좋은 마음으로 쇼핑하고 요리해서 건강 망치기 십상이다. 괜히 미국이 비만율이 높고 건강 지표가 안 좋은 게 아님을 살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