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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Nov 02. 2024

집 나간 시동생

시동생이 집을 나갔다. 이렇게 얘기하면 마치 그가 질풍노동의 시기를 겪고 있는 10대 청소년 같지만, 놀랍게도 60대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는 30대의 건장한 남성이다. 대학생이 되면 자연스럽게 분가해 자취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과 달리, 그는 한 번도 부모님의 집을 떠나본 적이 없다.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으신 시부모님이 두 분의 돈으로 월세방을 얻어 가구를 채운 후 아들을 내보낸 적이 있지만, 잠만 거기서 잘 뿐, 눈 뜨면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 시부모님 집에 와 있는 탓에 돈이 아까워 그냥 아들을 집으로 들이셨다. 


일전에 아픈 척하며 아무것도 안 하는 시동생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면도칼을 들고 죽는시늉으로 부모님을 협박하며 원하는 대로 컨트롤하려 하고, 그런 막내아들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장단을 맞춰주는 시부모님께 실망했단 글이었다. 

https://brunch.co.kr/@labot/138 

그런 시동생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자신의 친형인 내 남편이다. 남편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가족이기 때문이며, 때로는 마주하기 싫은 진실을 유일하게 끄집어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그에게 언제까지 부모님을 불편하게 할 거냐며 한소리 했다는 이유로 식칼을 들고 설쳐 경찰을 부른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시동생을 보는 것도, 또 그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려는 시부모님을 보는 것도 속이 상해 시가에 가는 게 불편해졌는데, 그렇다고 시부모님을 안 뵐 수는 없으니 지금은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만 가려하고 있다. 


시가가 가까이 있는 게 아니라, 한 번 가면 무조건 2박 3일은 거기서 묵어야 하기에, 가기 전 늘 미리 상의하고 일정을 체크한다. 얼마 전에도 가기 일주일 전에 미리 방문 날짜를 잡아뒀는데, 갑자기 야밤에 시동생이 집을 나갔다는 전화가 왔다. 시부모님이 일주일 뒤에 나와 남편이 온다는 얘기를 하자, 우리가 오는 게 싫다며 못 오게 하라고 난리를 피웠다는 것이다. 시부모님은 너도 내 아들이지만 그들도 내 자식이라며, 그들에게도 언제든 우리 집에 놀러 올 권리가 있다고 하자, 부모님이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다며 항의의 뜻으로 늦은 밤 집을 나간 것이다. 


미국 시골은 밤이 되면 가로등도 별로 없어 아주 깜깜한 데다, 차가 없이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인도조차 없는 길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시부모님은 그가 밖으로 나가 사고를 당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셨다. 핸드폰은 들고나갔기에 계속 전화를 해보면, 전화는 받고 아무 말도 없이 끊어버리는 행동을 반복했다. 결국 날이 밝아도 아들이 안 들어오자, 시부모님은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20킬로 넘게 떨어진 곳에서 발목을 겹질린 채로 주저앉아 있는 시동생을 발견해 집으로 데리고 왔다. 당연히 시부모님은 우리에게 전화해, 미안하지만 동생이 완강히 거부하니 이번에는 본가에 오지 않는 게 좋겠다는 연락을 하셨다.


시동생은 어떻게든 본인이 위험한 상황을 만들면, 부모님이 자기 뜻대로 따라오는 걸 알고 있기에,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올 때마다 이런 상황을 늘 자처한다. 하지만 겁이 많아, 늘 진짜 위험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모님을 통제하기는 충분하다. 나와 남편은 알면서도 아들의 통제를 따르는 시부모님의 상황이 제일 안타깝다. 


결국 우리는 시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정확히 말하면 시동생이 반대해서 시가 방문을 취소했고, 그게 미안했던 시부모님은 음식을 싸들고 우리 집으로 먼 거리를 달려오셨다. 이러나저러나 제일 몸도 마음도 고생하는 건 부모님인 것 같다. 두 분이 점점 나이 드시면서 기력이 약해지는 것도 눈에 보이는데, 손주도 아닌 30대 막내아들의 육아는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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