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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Dec 03. 2024

취직과 동시에 쫓겨난 동생

5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아주 큰 나이차이가 아니지만 어릴 때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얘는 초등학생인 나이차이였고, 내가 10대 때부터 학교를 이유로 집에서 나와 떨어져 산 기간이 몇 년 있어서 그런지, 자매임에도 우리는 사실 약간 데면데면한 사이다. 내가 미국에 오고 나서는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서로 연락할 일이 더 없었는데, 얼마 전 동생이 1년 반 넘게 준비한 공기업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입사까지 한 달 넘게 남아있어 우리 집에 오라고 초대했다. 내가 미국으로 이주한 지 좀 됐는데도, 공부 때문에 한 번도 우리 집에 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 언제 길게 휴가를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이번이 동생이 놀러 오기에 제일 적합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시차 때문에 각자 깨어 있는 시간에 메시지를 남기며 천천히 여행 계획을 진행하던 중, 늦은 밤 동생이 평소와 다르게 여러 번 보내는 메시지 소리에 잠이 깼다. 아빠가 집에서 내쫓아서 미국에 못 간다는 소리였다. 


갑자기 뭔 소리인고 하니,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생이 입사 전 언니네 집에 갔다 올 거라 얘기하자 아빠가 불같이 화를 냈다는 것이다. 취직했으면 빨리 자취방 구해 부모집에서 나갈 생각을 해야지 무슨 미국 여행이냐는 게 아빠가 화를 낸 이유였다. 아빠도 은퇴 후 사택을 나와 가족 집으로 들어와 살며 눈치 안 보고 편히 지내고 싶은데, 동생이 시험 준비 중이니 TV를 보는 것도,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도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셨던 것이다. 은퇴 후에도 다 큰 딸을 데리고 사는 게 불편함은 이해를 하겠지만, 딸의 취직을 축하하기도 전에 버럭 화를 내며 네가 지금 여행이냐 갈 때냐고 소리친 건 백번 이해를 하려 해도 어려웠다. 오죽 서러웠으면, 내게 속마음을 잘 얘기하지 않는 동생이, 아빠는 내가 들어간 공기업이 규모가 작은 곳이라 축하도 없고 빨리 집에서 내보내려 하는 것 같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가장 축하받고 싶은 부모님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니 동생 입장에서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고 취직을 하고도 자존감이 바닥을 친 것이다. 우리가 살가운 자매 사이는 아니어도,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건 같은 형제인 나 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동생의 노고를 격려하고 여행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치켜세웠다. 


아빠 말을 듣고 서러워서 미국 여행을 취소하려던 동생은,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무 때나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예정대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자취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동생 또한 다 커서 부모님과 생활하는 게 불편하던 차였고, 엄마에게만 자취 의사를 밝혔었지만 집에서 출퇴근하라는 엄마의 설득으로 고민을 하던 차였다. 그 상황에서 아빠는 엄마 마음도 모르고 동생에게 나가라고 한 바탕 난리를 친 것이었다.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던 동생은 일주일도 안 돼서 바로 회사 근처로 원룸을 구했다. 그리고 이사 직전 혼자 미국으로 날아왔다. 이사 날짜 때문에 생각보다 여행 일정을 길게 뺄 수 없었지만, 동생이 가고 싶어 했던 테마파크도 데리고 가고, 마침 생일도 겹쳐 동생을 위해 처음으로 생일상도 차려 봤다. 


나는 동생 대신 아빠한테 전화해 왜 그렇게 모질게 말했냐 따질까 하다, 생각해 보니 아빠가 말로 상처 준 게 한두 번도 아닌 데다 말해봤자 바뀌지 않는다는 그간의 경험이 전화조차 포기하게 만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우리를 사랑해 온 방식이 다르고, 그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자식의 대한 사랑의 크기 또한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왜 꼭 날카로운 말로 동생을 독립시켜야 했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 되고 원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다행히 동생은 자취 생활을 잘 해내고 있고, 겉으로는 부모님과의 관계도 잘 유지하고 있다. 내가 부모가 되면 아빠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설령 이해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 해도 나는 다른 대화 방법을 택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는 게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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