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와 돌돌이

by 라봇

개나 고양이처럼 털이 보송보송하고 네 발 달린 동물에 환장하는 내가 지금까지 실제 함께 살았던 반려동물은 많지 않다. 어릴 때는 동물을 들이는 걸 엄마 아빠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성인이 된 지금은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쉽게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부모님은 동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언제나 사람이 동물보다 훨씬 위에 있으며 동물은 짐승이기에 반드시 밖에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었다. 때문에 군인 아파트에 살 때 동물을 키울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 동생이 개를 키우고 싶다 때를 써도, '아무 데나 똥 싼다, 개 냄새난다' 등의 이유로 절대 키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딱 한 번 개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군인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 관사에 살게 되었을 때다.


그 집에 살던 전임자가 개를 좋아했는지 관사에는 꽤 많은 개들이 있었다. 거기에 산길과 부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떠돌이개들까지 합쳐서 거의 7~8마리의 개들이 있었다. 당연히 엄마 아빠 성향상 그 많은 개들을 다 책임지고 싶어 할 리 없었다. 부대원들에게 지시해 한 마리씩 도망가지 못하게 목걸이를 걸게 한 후, 개를 필요로 하는 마을이나 다른 부대로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아파트가 아닌 작게나마 마당 딸린 시골집에 살게 되었으니 집 지키는 용으로 한 마리 정도는 키워도 되지 않겠나 싶었나 보다. 개들을 거의 붙잡아 갈 때쯤 아빠가 나에게 물어왔다. 혹시 키우고 싶은 개가 있으면 한 마리 골라보라고.


세상에 나쁜 개가 없듯이 안 예뻐 보이는 개가 없었기에 딱 한 마리만 고른다는 게 쉽지 않았다. 한 마리 한 마리 성향을 알아볼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고, 그냥 개들의 외모만 보고 바로 한 마리를 골라야 했다. 결국 나는 중형 사이즈의 갈색 털이 기다랗게 자란 강아지를 한 마리 골랐다. 삽살개의 유전자가 조금 섞인 시골 잡종개였다. 내가 그 개를 고른 이유는 내가 알던 '세상에서 제일 우아한 개'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방학마다 도시에 사는 이모네로 놀러 갔었는데, 이모와 친하게 지내던 교회 집사님이 계셨다. 그 집사님은 경제적으로 꽤 여유 있는 분으로, 아직 2000년도 안 됐던 당시에 100평 가까이 되는 아파트에 살고 계셨다. 집사님 댁에 가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운동장 같은 집도 좋았지만, '찰리'라는 이름을 가진 집사님 댁 개랑 노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찰리는 요크셔테리어종으로, 크기는 작아도 윤기 나는 긴 털을 휘날리며 작은 발로 쫑쫑 걸어 다니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운 강아지였다. 시골에서 살던 내게, 밖이 아닌 집 안에서 개를 키운다는 게 신기했고, 진돗개나 삽살개처럼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들이 아닌, 영국 출신의 이름도 어려운 요크셔테리어는 너무나 도시적인 개였으며 마치 부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집사님에게 사랑받으며 예쁘게 사는 찰리를 보면서, 나도 나중에 개를 키울 수 있게 되면 저런 개를 키워야지라고 은연중 생각했던 것 같다. 요크셔테리어가 나를 더 돋보이게 해 줄 거라는 착각으로 말이다. 그러니 아빠가 개들을 다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기 전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찰리처럼 긴 털과 갈색 털을 가진 개가 무의식 중에 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으로 그 개를 가리키자마자 바로 다른 개들을 큰 군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새로 생긴 개에게 '찰리'처럼 멋진 이름을 지어줘야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한 명의 군인아저씨가 '어어어!'하고 뛰어다니는 게 보였다. 부대에 있는 떠돌이 개 중 흰털의 단모종을 가진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어찌나 날쌘지 아무도 못 잡고 있었던 것이다. 잡히면 어디론가 가버린다는 걸 아는지, 여러 명의 손을 요리조리 뿌리치다가 결국 사람들이 들어가기 힘든 산속으로 사라졌다. 결국 그 개를 잡는 건 포기하고 이제부터 함께 살게 된, 찰리를 닮은 개에게 새로운 집을 만들어줬다.


다음 날 아침, 동생과 함께 밖에 나가 있었다. 집 앞에는 본래 테니스장으로 쓰이던 곳이었는지 사각형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있었다. 공사 중이었는지 초록색 철조망만 남은 채 버려져 있는 듯한 황폐한 땅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서 돌아다니다 다시 나가려고 철조망 문 가까이 가는데, 어제 도망친 하얀 개가 바로 문 앞에 앉아있었다. 군인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며 빠져나가던 모습을 봤던 우리는, 혹시나 갑자기 우리한테 달려들어 팔다리를 물어뜯을까 봐 걱정됐다. 어린 동생은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개가 무섭다며 울기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무서워졌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엄마를 불러도 집 안까지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아 방도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저 문으로 나가야만 했기에, 손으로는 동생을 붙잡고 눈으로는 흰 개를 계속 응시하며 문으로 다가섰는데, 공포에 떠는 우리와 달리 그 개는 너무나 평온하게 앉아 그저 우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어제와 달리 아무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는 개를 보며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 개는 딱히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 이 관사 주변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렀다. 전 주인이 키우던 개도 아니라고 했다. 애당초 한 마리만 키울 계획이라 개 집도 하나밖에 없는데, 거기 들어가서 잠을 잤고, 갈색 개 먹으라고 놔둔 밥을 함께 먹었다. 내가 고른 강아지는 너무나 순한 성격이라 사람에게 건 동물에게 건 별로 짓는 일이 없었으며, 흰 개가 자기 집에서 자고 자기 밥을 같이 먹어도 그러려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는 밥을 빼앗겨도 아무 소리도 안 하는 멍청한 개라며 '돌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머리가 돌 같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런 거지 같은 이름 따위 내 개에게 줄 수 없다며 반발했지만, 가족 모두 그 이름이 찰떡이고 기억하기 쉽다며 돌돌이로 이름이 굳혀졌다.


흰 개는 첫날 그렇게 군인들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놓고, 우리 가족에게는 꼬리치고 엎드리며 엄청나게 살갑게 굴었다. 아빠가 퇴근하고 오면 바로 달려가 배를 내보였고, 가족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차 소리만 듣고도 미리 마중 나와 꼬리를 흔들어댔다. 오히려 돌돌이는 우리가 찾아가야 꼬리만 흔들 뿐, 집 앞까지 나와 배를 내보이며 반기는 일이 없었는 데 말이다. 흰 개는 누구한테 잘 보여야 이 관사에 머무를 수 있는지 아는 똑똑한 개였던 것이다. 엄마도 마주칠 때마다 몸으로 웨이브를 그려대며 오는 강아지한테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개 밥그릇은 두 개가 되었다. 나는 흰 개에게 '루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 마당 돌무더기에 앉아 루미와 함께 새우깡을 나눠 먹었다. 처음에는 루미를 무서워하던 동생도 가족 모두가 예뻐하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집 밖에 사는지라 간혹 몸에 붙어 있는 진드기를 떼어주기도 하고, 같이 달리기를 하기도 했다. 목줄 없이 키우는 개라 가끔은 어디 갔는지 안 보이기도 했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루는 내가 하교하자마자 엄마가 부엌에서 뛰어나와 루미가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나는 개가 임신했는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루미는 뒷마당 돌담을 긁고 땅을 파서 그 안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냈고, 자기를 닮은 하얀 개 세 마리를 낳았다. 아무래도 돌돌이가 있어 좀 더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낳고 싶었다보다. 지금에서야 어떻게 키우는 개가 임신했는지도 모르냐고 하는 사람이 많을 테지만, 나는 개를 좋아할 줄만 할지 개에 대해 무지한 아이였다. 그 무지로 인해 한 번은 루미를 사지에 몰아넣은 적도 있었는데, 루미와 함께 TV에 나오는 것처럼 산책을 해보고 싶었을 때다. 드라마나 예능을 보면 개에게 예쁜 개 목걸이를 걸고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나도 그걸 따라 하고 싶었는데 집에는 산책용 목걸이가 없었다. 애초에 풀어놓고 키우는 개들인데 개 목걸이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떻게든 따라 해 보겠다며, 집에 있는 줄넘기 한쪽을 동그랗게 묶어 루미 목에 걸어놓고, 나머지 한쪽 줄넘기를 손에 쥐었다. 얼추 비슷하게 산책 목걸이를 만든 것 같아, 그렇게 하고 루미와 걸으려는데 목에 이상한 게 묶이니 루미가 너무 불편해했다. 결국 루미는 나를 뿌리치고 줄넘기를 목에 맨 채 달아났다. 주변엔 거의 산뿐이라 어디로 갔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고, 기다란 줄넘기를 질질 끌며 산속을 다닐 걸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결국 아빠가 산을 직접 뒤져 루미를 찾아내었는데, 아빠가 발견했을 때는 아니나 다를까 줄넘기 반대편이 나무에 휘감겨, 루미는 나무에 묶여 옴짤달싹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빠는 하마터면 개가 목 졸려 죽을 뻔했다며 크게 화를 냈다. 아빠한테 혼나서 속상하기보다는 나도 루미한테 너무 미안했다. 괜한 내 욕심에 개를 죽일뻔했다는 죄책감이 컸던 것이다. 그런 사건이 있음에도 루미는 나를 떠나지 않고 계속 꼬리를 흔들어주었다.


하지만 결국 루미가 먼저 우리 가족을 떠나버렸다. 아빠가 어디선가 혈통 좋은 진돗개 새끼를 데려오면서부터다. 아는 사람에게 받았다는, 마치 하이에나처럼 신기한 줄무늬가 있는 강아지였는데, 이제 태어난 지 세 달 정도 되어 보이는 통통한 강아지였다. 그 당시에 흔하지 않던 혈통서까지 있었다. 아빠는 이 개가 남다른 개라며 따로 우리를 지어주고 그 안에서 지내게 했고, 집에 오면 돌돌이와 루미보다 훨씬 신경 쓰며 예뻐했다. 나는 혈통 그런 걸 따지지 않았지만 그저 집에 새로 생긴 아기 강아지였기에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루미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가 더 이상 루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했던 것 같다. 돌돌이보다 애교가 많아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는데, 가족 모두 새로 온 강아지를 신경 쓰는 게 마음에 상처였던 것이다. 그런 루미의 마음을 알아차리기에 나는 한없이 무지했고 어렸다. 결국 어느 날 갑자기 루미는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 놀러 나가서 며칠이면 돌아오겠지 했지만, 우리가 그 관사에서 이사 나갈 때 까지도 볼 수가 없었다. 루미가 집을 나간 게 실감이 났을 때, 그제야 루미의 마음이 보이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때였다.

가끔 옛날 사진첩을 뒤적이면, 그때 찍었던 루미와 돌돌이, 루미 새끼들의 사진이 보인다. 시간이 이렇게나 오래 지났는데, 여전히 루미와 돌돌이의 기억이 선명한 걸 보면 생각보다 내가 그 아이들을 훨씬 많이 사랑한 것 같다. 그리고 유일하게 내가 키웠던 개들이 그 아이들이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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