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크다 못해 중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 남편의 편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 양파를 너무 싫어해서 안 먹는다는 것 외에는 나보다도 매운 한국 음식을 잘 먹었고, 내가 어디를 데리고 가든 동물 내장요리, 해산물, 야채 등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음식으로 안 맞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늘 외국인이어도 한식을 비롯한 아시아 음식을 너무 잘 먹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몇 년간 생활하자 조금씩 안 먹겠다고 하는 것들이 늘기 시작했다. 두부, 삶은 계란, 어패류 등 전에는 맛있다고 먹던 것들을 이제는 아예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심각한 편식쟁이가 많은 다른 미국인들에 비하면 그는 여전히 양반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헌데 글루텐 알레르기 판정을 받고 나서는 일반 미국인과 똑같이 음식 편 가르기를 시작했다. 혼자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을 정도로 매콤한 음식도 잘 먹었는데, 이제는 아예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입에 대지 않고, 오징어 볶음을 하면 손뼉을 치던 그가 새우, 오징어 같은 기본적인 해산물도 아예 쳐다보지를 않는다. 안 그래도 알레르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게 굉장히 제한적인데, 본인 스스로 안 먹는 식재료까지 추가해 버렸으니 외식 나가면 먹을 수 있는 게 고기와 밥이 전부다. 알레르기 때문에 빵 대신 밥을 먹는 걸 제외하면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편식쟁이 미국인과 다를 바 없는 식단이다.
대체 왜 잘 먹던 김치나 해산물까지 안 먹냐고 물어보면 별다른 이유가 없단다. 그냥 먹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냥 싫다고 하는데 거기서 더 이유를 따져 물을 수도 없다. 그는 구구절절 이 식재료가 왜 싫은 지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외국에 살았을 때는 주변 환경에 다양한 식재료가 많아 시도해 보기 쉬운 환경이었지만, 막상 다시 햄버거와 피자 밖에 없는 미국 생활을 하게 되니 거기에 동화되고 그 음식들이 편해져서 편식을 시작한 게 아닐까 추측한다. 혹은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고집이 생기는 나이가 되니 아무 생각 없이 편히 먹을 수 있는 익숙한 음식을 추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렇다 보니 비슷한 음식을 매일 먹는 걸 질려하는 나와, 그의 편협해진 식단은 자주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집에서는 내가 먹고 싶은 음식과 그가 먹는 음식을 따로 만들기도 하는데, 그마저 에너지가 있을 때는 이렇게 두 가지 요리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내가 그의 식단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외식을 할 때는 더 골치 아프다. 그는 늘 내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보지만, 햄버거 체인점 혹은 비싼 다이닝 식당 정도만 있는 미국 시골에서 애초에 선택권은 매우 한정적이다. 게다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음식과 각종 안 먹는 걸 빼야 하는 남편의 상태를 생각하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없다. 먹고 싶은 걸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남편이 먹을 수 있는 걸 말해야 하는데, 마치 연인 관계에서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여자 친구에게 이것저것 제안하면서 다 퇴짜 맞는 남자친구가 된 기분이다.
‘오늘은 뭘 먹을까’의 행복한 고민이 미국에 오면서, 그리고 남편의 편식이 심해지면서 ‘오늘은 뭘 먹을 수 있나’의 고민으로 바뀌었다. 음식에 집착하지 말자고 마음가짐을 바꾸려 해도, 먹는 게 일종의 낙이었던 한국인의 생활방식을 그리 쉽게 져버릴 수 없다. 먹는 게 즐거운 일이었는데 지금은 스트레스가 되다니, 함께 사는 사람과 식성이 안 맞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의 변화와 함께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렇게 식성이 안 맞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가족들만 봐도 그렇다. 어촌 지역에서 자란 아빠는 해산물이 있는 시골 밥상을 좋아하고, 엄마는 빵과 면, 떡, 회를 주로 먹는다. 동생은 단 걸 좋아하고 회는 안 먹어서 늘 우리 가족들은 외식할 때마다 메뉴 정하는 게 일이었다. 시가 가족들도 비슷한데, 시누이는 동물성 음식은 안 먹는 ‘비건’, 남편과 시엄마는 안 먹는 게 많은 편식쟁이라 명절이 되면 같은 음식도 고기가 있는 것, 없는 것, 소스가 다른 것 등 여러 버전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오래 함께 한 가족끼리도 식성이 다른 걸 보면, 그냥 이 또한 서로 맞춰가며 살아야 하는 타협 후보 중에 하나인가 보다. 그래도 식성이야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을 수라도 있으니, 그럴 수 없는 부분이 안 맞는 것보다는 낫다고, 오늘도 긍정 회로를 꾸역꾸역 돌려본다. 입맛은 바뀌어도,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주는 의미만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