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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페이스북 마켓과 한국 당근 마켓 비교

by 라봇

나는 한국에서 살 때는 물론이고, 이민 간 후 잠시 들렀을 때 마저 당근 마켓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 빠져, 집에 있는 온갖 것을 팔려고 한 적이 있다. 걔 중에 아빠가 안 보는 책들을 몰래 내다 팔려다가 걸려서 잠시 멈추기는 했지만, 집에 물건 쌓아두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안 쓰는 것들은 눈에 띄는 대로 열심히 당근 마켓에 올려 대고는 했다.


미국에 와서 보니 이곳은 한국보다 훨씬 중고시장 마켓이 발달되어 있었다. 지역 내 중고 물건을 사고 싶다면 주말마다 여기저기서 열리는 Yard sale(자기 집 마당에 물건 풀어놓고 판매하는 것)이나 Good will 같은 중고 물건 전문 판매점에 가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중고품을 사는 것보다 파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인데, Ebay 같은 온라인을 통해 팔자니 포장 및 배송도 귀찮은 데다 배송비와 수수료가 추가로 드는 게 부담스러웠다. 나도 남들처럼 집 마당 앞에 물건을 늘어놓고 Yard sale을 하기에는 귀찮음과 쑥스러움이 앞서 용기가 없었기에, 지역 내에서 온라인으로 중고품을 판매할 수 있는 당근 마켓 같은 플랫폼을 알아봤다. 그런데 굳이 새로운 걸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미국인들은 다름 아닌 페이스북 마켓을 당근 마켓처럼 많이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페이스북을 예전만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페이스북이 굉장히 중요한 SNS역할을 하고 있어서 핸드폰에 깔아 놔야 되는 필수 앱 중 하나이다. 나는 동남아에서 집을 구할 때도 여러 번 페이스북으로 구했고, 현지인들과 연락을 할 때도, 물건을 사고팔거나, 정보성 커뮤니티에 들어갈 때도 전부 페이스북을 이용했다. 이는 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메신저가 다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내 미국 지인들은 페이스북 메신저를 이용해 내게 연락을 하고, 페이스북으로 지역 내 각종 이벤트 소식을 접한다. 물론 이렇게 현지인들이 많이 쓰고 있는 만큼 페이스북 지역 중고마켓 시장도 굉장히 활발하기에,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으로 물건을 처분하고 싶은 내게는 딱이었다.


현재까지 페이스북 마켓으로 미국에서 안 쓰는 가전제품을 비롯해, 조립용 가구, 운동 기구, 가드닝 도구 등 많은 걸 사고 팔아 봤다. 중고 거래를 통해 느낀 점은, 아무리 나라가 다르고 플랫폼이 달라도 인간 군상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거래 전에 뭔가 자꾸 요구하고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은, 오히려 물건을 안 사거나 사더라도 진상을 부릴 확률이 높았다. 예를 들어 이불을 판매한다고 쳤을 때, 새것이라 투명 케이스에 잘 들어 있는 이불인데도, 이불을 핀 사진, 갠 사진 온갖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결국에 가서 안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상하게 오히려 별다른 걸 요구하지 않고, 메시지 몇 번으로 물건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흥정도 없이 쿨거래를 하는 일이 많았다.


이점은 비슷하지만 차이도 있다. 한국의 당근 마켓 사람들은 가격 흥정을 하고 싶다면 직접 만나기 전에 합의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미국에서는 반은 그렇고, 반은 이미 물건 사러 만나서 흥정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만나서 물건을 직접 본 후 온갖 트집을 잡으며 깎아달라는 것이다. 이미 물건을 올릴 때도 흠집 사진을 보여주고 언급을 했는데도 말이다.


또 다른 차이는 마켓에 올라오는 상품의 종류다. 당근 마켓은 본래 지역 내 중고거래 앱으로 시작한 앱이지만, 이제는 동네 정보 공유, 동네 친구 구함, 동네 알바 등 일종의 동네 커뮤니티 같은 역할도 하고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 마켓은 그런 것보다는 정말 물건 판매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중고 물건이 아니어도 본인 비즈니스 홍보나 상품 홍보도 많이 올라온다. 걔 중에는 가격대가 나가는 물건들도 꽤 많은데, 차는 물론이고 캠핑카, 보트, 땅이나 집 같은 부동산도 있다. 나도 페이스북 마켓으로 중고차를 몇 번 팔아봤고, 전에 남편이 오래된 세일보트를 사고팔았던 것도 전부 페이스북 마켓을 통해서였다. 심지어 최근에는 물에서도 탈 수 있는 비행기, 작은 수상기까지 마켓에 올라온 걸 봤다. 역시 미국이라 중고 물건 사이즈도 남다르기는 하다.

처음에는 이 정도로 사람들이 중고 거래를 한다고? 이런 것까지 거래한다고? 하는 놀라움이 있었지만, 뭐든 비싼 미국에서 중고 거래는 가끔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그냥 옛날부터 해 왔던 당연한 생활 방식 중 하나라고 본다. 나도 값싸고 질 좋은 중고 물건 구매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가끔은 제 값 주고 새 물건 살 때 괜히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도 무언가 필요한 게 생길 때마다 페이스북 마켓부터 뒤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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