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로 오고 나서 내가 배우기 시작한 게 있다. 바로 중국어다.
말레이시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중국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서 중국어를 배우는 걸 의아하게 여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30% 가까이가 중국계 말레이시아 사람이라는 걸 알면 이해할 것이다. 중국계 커뮤니티가 엄청나게 형성되어 있고, 그들끼리는 중국어로 얘기를 한다. 영화관에 가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자막이 말레이시아어와 중국어 두 개가 같이 나올 정도다. 게다가 내 얼굴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 마주치는 중국인들은 100프로 나에게 중국어로 말을 건다.
못 알아듣는다 말을 하고 손짓을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느 순간은 중국어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지겨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유창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에게 중국어로 말을 거는 사람들이 대략 뭐라고 하는지는 알아듣고, 간단한 대답은 하기 위해 중국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재미있는 건 의외로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어 학원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중국어 교실이 어린이 대상 수업이었고, 성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리고 그런 곳은 보통 집중코스라 일주일에 5~6시간씩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데다, 위치도 쿠알라룸푸르 한복판에 있어,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은 외곽에 살고 있는 나에게는 오가는 것도 부담이 됐다.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 그만이었지만, 아는 사람도 없는 말레이시아에서 대면 수업을 들으면서 사람도 사귀고 다른 학생들과도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무조건 대면으로 하는 곳 위주로만 찾아봤다. 그러다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만 가도 되고 대면 수업이 가능한 곳을 찾아 연락을 한 후, 주소를 받아 들고 시범 수업을 들으러 갔다. 이상했던 건 분명 그룹 수업이라고 했는데, 내가 어떤 레벨이건, 어느 시기에 들어가던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의아하긴 했지만 학원이라는 곳에 가는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었고, 외국에서 외국어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부풀었다. 그런데 택시는 점점 상점가와는 거리가 먼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그곳에 나를 내려줬다. 내리고 보니 나는 너무나 흔한 말레시이사 주택 어느 집 앞에 서 있었다. 이곳이 과연 맞는가 싶어 마당을 어슬렁 거리다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말 흔하디 흔한 가정집이었다. 그런 가정집 거실에 긴 책상 여러 개가 놓여 있었고, 거기에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 각자 책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내가 놀랐던 건 그곳에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 초등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성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세네 명 정도였다.
내가 얼굴을 들이밀자 누군지 확인하고 비어 있는 플라스틱 책상 앞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 앳된 얼굴의 선생님이 중국어 병음 프린트를 들고 와서 발음을 알려줬다. 잠깐 알려주고 다른 학생에게 가고, 다시 돌아와 또 알려주고 다른 학생에게, 그다음에 가정집에 비치되어 있는 컴퓨터로 중국어 연습 프로그램을 틀어줬다. 그제야 그룹 수업이지만 레벨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이해됐다. 그곳은 일종의 공부방이었던 것이다. 정해진 시간대에 가면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아이들 레벨에 맞춰 개인적으로 봐주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건 다 같이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중국어를 연습하는 일종의 어학당이었는데, 전혀 다른 스타일의 공부방에 좀 실망감이 몰려왔다. 아무리 각자 와서 알아서 공부하다 가는 곳이라지만 초등생들이 주로 오가는 곳에서 혼자 이렇게 그들 사이에 껴 있는 게 너무나 어색하고 민망하게 느껴졌다. 물론 성인도 참여할 수 있는 이런 성인용 공부방이 독특하기는 하지만, 이곳에 가는 게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면 수업으로 선택할 만한 다른 대안이 딱히 없었고, 선생님이 못 가르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약 서 너 달은 바쁠 때 빼고는 매주 가려고 했다. 하지만 어차피 다른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하게 되는 공부방인데, 굳이 이렇게 택시비와 이동 시간까지 써가며 올 필요가 있나 하는 현타가 와서, 한국에 잠깐 방문했을 때를 핑계 삼아 결국 공부방 다니기를 관뒀다.
뭐든지 때가 있다고 하던데 나이 먹고 공부방 다니려니 영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아 불편했다. 물론 어차피 공부하러 가는 곳이기에, 공부방이든 학원이든 뭔 상관인가 싶지만, 대면 수업을 선택한 이유는 아는 이 없는 말레이시아에서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같은 레벨의 사람들과 중국어로 회화 연습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런 이점이 없는 대면 수업을 위해 추가로 나가는 택시비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현재는 1:1 온라인 수업으로 바꾼 상태다. 공부방에서 친구 사귈 게 아니라면 오히려 온라인으로 내 수업만 봐주는 선생님과 공부하는 게 더 만족스럽기는 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말레이시아 외곽에서 택시를 타고 주택가 골목까지 찾아 들어가, 말레이시아 초등학생들 사이에 혼자 끼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객관적으로 꽤 웃긴 그림이다. 그래도 성인이 되고 나서 그런 공부방에 다녀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냥 내게 더 맞는 공부법을 찾는 나쁘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