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불꽃이 터지는 곳
내가 해외 살이를 해보기 전까지, 나는 한국인이 세계 제일의 음주가무의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베트남 살이를 했을 때 그 자부심이 완전히 부서졌었다. 새벽 4시와 오후 2시의 분간이 없이 아무 데서나 스피커와 마이크를 들고 다니며 노래를 즐기는 걸 보고 한국인들은 이들의 가무 사랑에 비비기도 힘들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무슬림 문화라 상대적으로 조용해 보이는 말레이시아에서는 노래방 기계로 고통받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살아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 이곳에서는 마이크를 잡는 사람들 대신 매일 밤 불꽃을 터뜨리는 연쇄 불꽃마들이 있다.
말레계, 중국계, 인도계가 섞여 있고 종료 또한 이슬람, 불교, 힌두교, 기독교가 다 같이 섞여 있는 이 나라에서는 그만큼 축하할 일도 너무나 많다. 쿠알라룸푸르 기준으로 1년에 보통 18일~20일 정도 쉬는 날이 있다고 한다. 거의 한 두 달에 한 번 이상 큰 명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정말 요만큼도 거짓말을 안 보태고 나는 펑펑 터지는 불꽃 소리를 최소 매주, 많을 때는 매일 듣는다. 오버하는 게 아니다. 설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는 일주일 전부터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마다 불꽃 터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한국에서는 설날이지만 중국에서는 가장 큰 명절인 춘절이고, 중국계가 많은 말레이시아에서는 1월 말부터 이 춘절 장식과 축제 준비를 한다. 2월 초부터는 완전히 마트와 쇼핑몰이 빨간색으로 뒤덮이고 온갖 춘절 선물 세트를 판다. 한국도 설날 전부터 장식을 하고 선물 세트를 팔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전혀 의아하지 않지만, 춘절이 오려면 몇 주나 남은 시점부터 불꽃을 터뜨리는 건 적응이 안 된다.
이 시기에는 길거리에서도 폭죽을 주렁주렁 매달고 팔고 있어 구하기도 쉽다. 폭죽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자기들의 명절을 축하하는 시기이니 오죽할까 싶기도 하지만, 개인들이 터뜨리는 폭죽은 차치하고, 대형 쇼핑몰에서도 매일 밤 그렇게 불꽃을 쏘아 올려댄다. 이르면 아직 밝을 때인 7시부터 시작하는 곳도 있고, 보통 9시, 그리고 늦으면 12시가 넘어서도 펑펑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특히 고층 아파트가 많은 우리 동네는 소리 반사 현상이 더해져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내가 처음 말레이시아에 왔을 때는 라마단이 금식이 막 끝난 시점이어서, 그때도 여기저기서 불꽃이 쏘아 올려졌다. 그때는 이렇게 매일 같이 불꽃쇼를 보게 될 줄 모르고, 집에서 편히 멋들어진 불꽃을 볼 수 있다는 게 신나서 한참을 베란다에 머물렀는데, 지금은 조용해야 할 밤 시간에 허구한 날 폭죽 소리가 울려 퍼지니 솔직히 펑 소리가 나면 '또 시작이네' 하고 한숨 먼저 나온다.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흥이 많은 민족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크고 화려해 보이는 걸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다. 정말 연중 불꽃놀이의 국가라 부를 만하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요즘 같아선 밤에 불꽃놀이 못 하게 비가 쏟아지길 바라며 혼자 조용히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