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국에 걸쳐 해외 살이를 하고 있는 나에게 한국 친구들이 주로 물어보는 질문들은, 생활비나 사는 환경에 관한 것도 있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외국에서 어떻게 친구를 만드는지, 그리고 자유 시간에 뭘 하면서 지내는 지를 많이들 궁금해한다.
이건 당연히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떤 환경에 있는지에 따라 따르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미국 시골에 살았을 때는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딱 두 명밖에 없었고, 주말에 하는 거라 봐야 그냥 동네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가끔 캠핑을 가거나 바다, 강에 놀러 갈 때도 있지만 어딜 가든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통에 그런 일은 가끔 있는 이벤트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는 다르다.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도, 만날 수 있는 사람도 무궁무진하다.
나는 주로 모임 어플을 활용하는데, 스포츠 계열부터, 예술 계열, 혹은 그냥 친목을 다지기 위한 모임 등 다양한 종류의 동네 모임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한국에 있었을 때도 비슷한 계열에 모임에 많이 다닌 편이라 비교하자면, 말레이시아에서 모임에 참가할 때와 한국에서 참가할 때의 차이점이 분명히 있다.
현재까지 말레이시아에서 내가 참여해 본 모임은 독서모임, 언어 교환 모임, 명상모임, 실내 클라이밍 모임, 디지털 노매드 모임, 글쓰기 모임 등이 있다. 물론 모임의 성격마다 분위기도 사람들의 성향도 다르지만 쿠알라룸푸르에서 참여해 본 모든 모임의 공통점은 세상 온갖 사람을 다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미국에서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확실한 특징이 두드러지는 지역에 있었기 때문인지, 접하는 인종도 비슷했고, 사람들의 성향도 폐쇄적이라 미국에서 그렇게 말하는 '다양성'에 대해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는 애초에 말레계, 중국계, 인도계 등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섞여 있는 나라인 데다, 따뜻한 기후와 합리적인 물가로 은퇴자들과 디지털 노매드족들을 더 많이 불러 모으고 있어, 모임을 나가면 오히려 겹치는 인종과 국적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다.
그냥 국적이 다양하다기보다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배경 자체가 다국적이다. 단순히 미국인, 중국인 이렇게 있는 게 아니라 대만계 독일인, 중국계 영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배경을 갖고 독일에서 자란 사람, 베트남과 프랑스 혼혈 등 최소 두 개 이상의 다국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인지 3개 국어는 기본에 5개 국어 6개 국어까지 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여기서는 드물지 않다.
게다가 자기 고향을 떠나 해외 생활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세상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라, 온갖 지역 여행 경험은 물론이고 경제, 문화, 문학 계열까지 박식해 그냥 얘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새로 알아가는 것들이 많다. 한 번도 그들의 MBTI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모임을 즐긴다는 것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E성향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이 중 가장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건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독서모임이다. 미국에서 살다 은퇴한 일본인이 운영하는 모임으로, 일본 문학은 물론이고 고전 문학, 만화까지 딱히 편식 없는 그녀의 책 선정이 재미있어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날 겸 나가고 있다. 이 모임에서 현재 제일 친하게 지내고 있는 영국인 친구도 만났다.
한국에서도 서울에서 열리는 모임에 나가면 외국인들이 섞여 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말레이시아는 다국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 같은 느낌이라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비교가 어렵다. 그리고 한국은 연령별로 다니는 장소와 갈 수 있는 모임의 경계가 강한 편인데, 말레이시아에서는 그 경계가 적어 부담 없이 사람들과 섞일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세상은 넓고 그 넓은 세상 곳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쿠알라룸프르로 몰린다는 억지스러운 생각이 들 정도다. 외국인이어도, 젊은 나이가 아니어도, 갈 곳 많고 만날 사람 많은 이곳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