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 감옥
다낭에서 당장 살 곳도 없이 온 우리는, 일단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소에서 머무르며, 천천히 부동산을 통해 살 집을 알아보고자 했다. 집을 구하는 데 일주일이 걸릴지 한 달이 걸릴지 알 수 없었기에, 호텔보다는 가격이 저렴하면서 방에서 요리, 세탁 등도 가능한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앱으로 적당한 곳을 알아보다가, 이제 막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신규 숙소 하나가 눈에 띄었다. 숙박객을 유치하기 위해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이었고, 시설도 전부 새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일단 여기 묵자며 일주일을 예약했는데, 오자마자 후회가 밀려들었다.
보통의 공유 숙소는 여행자가 몸만 와서 살아보는 체험을 할 수 있게, 기본적인 것들이 다 준비되어 있다. 예를 들어, 가구나 주방도구, 세제, 화장실 휴지, 수건 같은 것들 말이다. 아무리 호텔이 아니라지만 가구랑 화장실 휴지, 세제를 이고 다니는 여행자가 어디 있는가. 그런 걸 이고 다녀야 한다면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호텔로 갈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예약한 숙소는 달랐다. 나는 똑같은 에어비앤비라도 베트남의 숙소라는 걸 간과한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철골 세우고 콘크리트만 바르면 건물을 오픈하는 건지,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손님을 받았다. 사진 속 시설이 좋아 보였던 건, 진짜 아무도 안 쓴 새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냉장고도 가게에서 방금 꺼낸 상태의 물건이라, 내가 직접 비닐을 뜯고 박스를 꺼내고 코드까지 연결해야 했다. 주방에 있는 가스도 아직 연결이 안 돼 불도 쓸 수 없었다. 집주인에게 그걸 가지고 항의하자, 이 숙소는 장기 거주자를 위해 지은 건물이므로 필요한 도구는 거주자가 직접 준비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럴 거면 애초에 살 집을 찾는 사람들을 받아야지, 왜 에어비앤비에 올려놓고 나의 일주일자리 예약을 받은 것인가! 부동산에 내놓고 월세 돈을 받아야 할 방을, 여행자 앱에 올려두고 있다니, 공유 숙소 개념을 잘 못 이해한 사람이었다. 주인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이 사람과 싸워봤자 외국인인 나만 불리했다.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쨌든 베트남에 살러 온 것이기에, 세간살이를 좀 챙겨 온 상태였다. 수건, 프라이팬 심지어 인덕션까지. 화장지와 세제도 어차피 이사 가면 그 집에서 이어 쓸 수 있기에 그냥 사기로 했다. 내가 갖고 온 짐으로 당장의 불편함은 해소했지만, 보통의 여행자는 가구만 있는 방에서 어떻게 먹고 뭘로 씻으라는 건지 숙소 주인의 방침이 이해가 안 됐다.
대충 마트에서 필요한 걸 사 오고, 빨래를 하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공용으로 쓰는 세탁실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숙소 주인이 앞으로 몇 명의 세입자를 받을 생각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세탁실이라고 해봤자 세탁기 딱 두 대가 있을 뿐이었다. 역시나 뜯지도 않은 새 세탁기가.
또 직접 코드를 연결하고 전원을 켰는데, 이번엔 전기가 안 들어왔다. 뭐 하나 순조롭게 돌아가는 게 없는 해피 공유숙소였다.
집주인에게 이 집은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고 화를 냈지만, 그에게 전혀 타격감을 주지 못 했다. 이럴 때 거너도 나서서 뭐라 시원하게 한 마디 해 주면 좋을 텐데, 이 남자는 도통 웬만한 일에는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나는 면전에 대고 성질을 내야 하는 한국인의 끓는 피를 갖고 있었고, 미국인인 거너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늘 따질 일이 있으면 감정이 앞서는 내가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했다.
여차저차 전기가 들어오고 드디어 세탁기가 돌아갔지만 그때부터가 더 문제였다.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서는 세탁실에 마련된 카드 리더기에 방 키를 꽂아야 했는데, 방 키가 하나밖에 없었다. 카드를 리더기에서 빼 버리면 그 즉시 세탁기가 멈춰버렸다. 즉, 세탁이 다 끝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방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였다.
여기는 1년 내내 여름인 베트남이다. 심지어 옥상이라 햇빛을 직격으로 받으며, 세탁이 끝날 때까지 어디 앉아 있을 의자 하나 없이 60분간 옥상에 갇혀 있어야 됐다. 그러면 세탁실에 에어컨이라도 달아주던가!
내가 세탁을 하러 온 건지 벌을 받으러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건조기도 없었기에 빨래가 끝나면 옥상 끝에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노끈 줄에 내 모든 걸 걸어놔야 했다. 거너한테도 속옷 더미를 이렇게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이 건물 사람들과 벌써 많은 걸 공유하게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옥상에 올라간 지 두 시간 만에 땀에 흠뻑 젖어 방으로 내려왔고, 나는 미친 듯이 당장 이사 갈 집을 구하고 싶어졌다. 본래 여유를 갖고 살 집을 알아볼 계획이었지만, 속에서 천불을 일으키는 이 숙소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되도록 하루라도 일찍 ‘방이’ 아닌, ‘집’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