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너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관심도 없고 가본 적도 없었다. 미국의 50개 주 중 들어본 주도 고작해야 네다섯 개였기에, 미국이 얼마나 넓은 지, 넓은 만큼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매체에서 접하는 미국은 너무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나라로 표현돼서 미국인 모두 그런 마인드를 갖고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남부에서 왔다는 거너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보다도 훨씬 보수적이었는데, 특히 남녀 관계에 있어 그런 편이었다. 베트남에 같이 가기 전까지 한국에서 약 3년 가까이 데이트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여자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여자 사람들과도 좀 어울리고 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아예 또래 여자들과 인간관계 자체를 안 만들었다. 친구 관계도 좁았다. 내향적이고, 사람 만나면 기 빨린다는 스타일이라, 쉬는 날에는 주로 나 아니면 한 두 명의 동성 친구들과만 어울렸다. 물론 여자친구 입장에서 이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여자 저 여자 기웃거리면서 쓸데없는 의심과 걱정을 하게 만들지도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빠 나를 외롭게 하는 일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와 반대의 성향이라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친구가 너무나 중요했다. 더구나 나는 밖에서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었기에, 성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는 걸 좋아했고,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온갖 약속들로 바쁘게 보냈다. 베트남에 가기 전부터 이렇게 서로 다른 성향 때문에 마찰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있었다. 안 그래도 함께 살면서 맞춰 나가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편안한 환경에서는 그냥 넘어갔을 서로의 다름이, 낯선 환경에서는 싸움의 원인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몇 번의 언쟁이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내가 베트남어 어학원에서 준비한 홍보성 모임에 참여했다가, 여러 명의 현지인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전부 베트남어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연락처를 주고받은 선생님 중에서는 남자 선생님도 있었다. 모두 일의 일환으로, 혹은 공부 목적으로 모임에 참여한 것이기는 했지만,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었다. 그래서 연락처를 교환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한 것을, 거너는 안 좋은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가 선생님이라고 해도 어학원 밖에서 굳이 그 사람을 따로 만나 볼 필요는 없지 않냐는 게 거너의 생각이었고, 친구들과의 어울림이 그리웠던 나는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학원 밖에서 대낮에 어울리는 게 무슨 대수냐는 생각이었다. ‘연인이 있는데, 굳이 쓸데없이 오해 살 인연은 안 만드는 게 좋다’는 그의 신념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일가친척 없는 해외에 있으면서 알고 지내는 현지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게 내 의견이었기에 말다툼이 이어졌다.
그 외에도 베트남 여행 카페에서, 현금은 없고 ATM은 작동하질 않아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는 한국 사람을 도와주러 나갔다가, 그가 남자분이라는 이유로 다툼이 되기도 했다. 도움을 받은 분이 감사의 표시로 밥을 샀는데, 함께 식사를 한 게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카페 글만 읽고 성별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 나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지에서 곤란을 겪고 있는 한국인을 모른 척하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낯부끄러울 정도의 개방적인 문화를 가졌다는 나라 사람이, 대학에서 유교라도 전공한 것인지 남녀칠세부동석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그의 이런 성향을 아예 모르고 사귀어 왔던 건 아니지만, 함께 살며 모든 일상을 공유해 나가니,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남자였다. 단순히 베트남에서의 생활을 넘어, 앞으로도 우리가 좋은 관계로 함께 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계속해서 같은 문제로 속 시끄럽게 싸울 게 분명했다.
결국 내가 생각을 바꾸면서 해결되었다. 거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렇게 누군가와 오래 교재 해본 일이 없었고, 때문에 내게는 연인 못지않게 친구가 굉장히 중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살다 보니 진짜 내 곁에 남을 사람은 친구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평생 갈 것만 같던 친구 관계도, 삶에 치어 멀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평생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나온다. 인맥 중요하다는 말이 잘 못 된 건 아니지만, 나이 들수록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이 주변에 모이기 마련이지,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술 마신 횟수가 진짜 중요한 인맥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거너와의 말싸움 끝에, 문득 스쳐 지나갈지 모를 인연을 위해 현재 옆에 있는 사람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안 하고, 주변인을 차단할 건 아니지만 평생 이기적으로 살 게 아니라면 상대의 생각과 성향에 맞춰 나도 어느 정도는 바뀌어야 했다. 그게 우리의 관계를 위한 노력 같았다.
물론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그의 감정과 가치관을 존중해 달라지려고 하자, 거너 또한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십분 이해하려, 베트남에서는 나를 따라 함께 모임에도 참여하고 사람들과도 뒤섞이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이 생기고, 대화거리도 늘어서 나중에는 같은 문제로 감정 상하는 일이 없어졌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여전히 활력이 되고 즐거우며, 익숙함과 편안함을 주는 내 짝과 보내는 시간도 매우 가치롭다고 느낀다. 처음에는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이 사람의 성향이, 내가 바뀌려고 노력해 보니 오히려 안정감을 주는 성향이었다. 역시, 문제가 있을 때 남을 바꾸려 하기보다 내가 바뀌는 게 더 쉽다는 말이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