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50만 원 버는 남자친구

by 라봇

직업도 돈도 계획도 아무것도 없이 베트남으로 온 우리는, 당연히 한국에서 저축해 온 저금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금이라고 해봤자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고, 경제관념을 날려버린 채 물가 적응기를 한참 겪었던 덕분에 그나마 가지고 온 현금도 빠르게 떨어져 갔다. 어떻게든 여기서 돈을 벌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그 어떤 기업에도 내정받지 않고 들어왔고, 노동비자도 없는 우리가 베트남 현지에서 일을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노이나 호찌민 같은 대도시라면 모를까, 다낭 같은 휴양지에는 관광업, 카지노, 호텔 산업이 주를 이뤘으므로, 다낭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었다. 다낭이 좋아서 계속 살고 싶어도, 일자리 다양성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더 큰 도시로 가는 젊은 베트남인들도 많았다.


그렇게 둘 다 손가락 쪽쪽 빨며 현실적인 걱정을 하기 시작할 때, 거너에게 좋은 소식이 찾아왔다. 면접 기회가 온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취미로 혼자 코딩을 공부한 거너는, 개발자로 새로운 경력을 쌓고자 했다. 하지만 그 분야에서는 전공자도, 경력자도 아니었기에 원하는 직군으로 지원조차 쉽지 않았다. 학비가 저렴한 학교를 찾아 정식 코딩 수업이라도 들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다낭에 있는 IT 기업을 발견하고 이력서를 넣어봤는데 운 좋게 면접 연락이 온 것이다. IT기업은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다낭 같은 도시에도 몇 군데가 있었고, 거너는 그 면접을 위해 호이안에 있는 옷가게에 가서 면접용 셔츠를 맞췄다.

KakaoTalk_20230419_231351721 (1).jpg 베트남에서 맞춘 면접용 셔츠

파란 셔츠에 주황색 오토바이를 타고 처음으로 베트남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 거너는, ‘비비드 컬러의 신’이라도 도운 것인지 덜컥 합격을 하고 말았다. 경력도 비자도 뭐 하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악조건 속에서 취업을 해낸 그가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으며, 둘 중 한 명이라도 베트남에서 돈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현실적인 안정감도 들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그 회사에서 실질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는 없었다. 거너가 받기로 한 월급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세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회사에서 거너에게 제안한 급여는 한국 돈으로 월 50만 원이었다. 심지어 50만 원이라는 월급은 ‘세전’ 금액이었다. 베트남 정부에 내는 세금까지 떼고 나서 실제로 손에 쥐는 급여는 더 적다는 얘기다. 주재원으로 간 것도 아니었고, 무작정 베트남으로 가서 현지 회사에 외국인으로 취업한 것이었기에, 그들과 비슷한 급여를 받는 건 당연했다. 베트남 회사원들의 평균 월급이 3~40만 원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50만 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가 계약해 살고 있던 집의 월세만 50 만원이 넘었다. 현지 평균 월급과 물가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집 계약을 먼저 해버려서 난 사단이었다. 그제야 왜 베트남 젊은이들이 원룸 하나에 세 명이 같이 살고, 결혼해서도 부모님 집에 들어가 사는지 이해가 됐다.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거너는 평일에는 IT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온라인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은 거너가 부지런한 사람이라 투잡을 뛴다고 생각했지만, 투잡을 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는 걸 나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나도 계속해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헤드헌터를 통해 면접을 보았지만, 그들이 제안하는 대부분의 회사는 하노이 같은 대도시에 있었고, 그나마 다낭에서 면접을 본 곳들은 내가 그쪽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잘 되지 않았다.


현실을 깨닫고 집세가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옮기고 싶어도, 계약 기간 전에 먼저 나가버리면 보증금과 미리 낸 월세를 돌려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쉽사리 그러지도 못했다. 결국 일거리를 찾을 때까지 야금야금 저금을 쓸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 우리는 이 베트남 살이를 통해 마이너스 통장까지 얻게 되었다.


디지털 노마드족처럼 수입원을 제대로 준비해 간 것도 아니고, 일자리가 많은 지역으로 간 것도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계획을 철저하게 하고, 준비를 해도 생각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인데, 그 무엇 하나 준비한 거 없이 해외 살이를 시작한 우리가 처음부터 쉽게 풀렸다면, 그 또한 불공평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월 50을 받아서 불행하고 힘들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월세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았지만, 거너는 새로운 분야의 경력을 쌓을 기회를 얻었다는 걸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그 경력을 발판 삼아 현재는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다. 나 또한 현재의 일을 베트남에서 시작하게 되었으니 둘 다 이곳에서 또 다른 일을 해 볼 수 있는 포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게 돼서, 현지인들처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배우기도 했다. 50을 받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 자체가 평생 50짜리 일은 아니다. 숫자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가치를 찾을 수도 있고, 의지에 따라 뒤에 0이 더 붙는 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난 그가 월 50받으며 일을 했던 것도 자랑스러웠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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