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심한 자식입니다

by 라봇


베트남으로 이주한 지 두 달이 좀 지났을 무렵,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베트남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결혼도 안 한 딸이 갑자기 어디서 허여멀건한 외국인 남자를 데려오더니, 이 친구와 같이 베트남에서 살아보겠다고 할 때부터, 내색은 안 하셨어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함께 살겠다는 놈이 어떤 놈인지 파악하고 싶어도, 말도 잘 안 통하는 애를 데리고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놈이 딸에게 안전한 놈인지 도통 감이 안 잡히는 상태에서, 다 큰 딸의 출국을 막을 수도 없었다.


걱정 어린 두 분의 눈빛을 뒤로하고 베트남으로 왔으니, 나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 병원에 다니는 등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일상을 있는 그대로 공유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두 분은 자식이 베트남에 있으니 무료 관광을 해보자는 걸 명목으로 내세우며 오셨지만, 베트남에서 어떤 꼴을 하고 사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게 실제 목적이셨다.


두 분 다 베트남이 처음이었다. 특히나 엄마는 덥고 비위생적인 동남아를 그다지 좋아하는 분이 아니라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서 집까지 가는 택시에서부터 연거푸 비명을 질러 댔다. 신호도 없고 차선도 안 보이는 도로에 엄청난 수의 오토바이들이 지나다니니, 차에 부딪힐 것 같아 불안하다며 택시 뒷자리에서도 편히 앉아 있지 못했다.


불편해하는 건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잠자리도 편하지 않아 푹 자기 힘든데, 화장실은 넓기만 하고 너무 더워서 변기에 앉아있으면 땀을 한 바가지 흘린다고 했다. 주방이 있는 1층은 현관문 외에는 창문도 없고 에어컨도 없어서 환기가 힘들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았다. 나 역시 살고 있는 집이 불편하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좀 더 편한 집에 모시지 못한 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인데 거리낌 없이 불편한 기색을 그대로 내비치는 부모님께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결국 며칠 집에서 묵다가 나중에는 호텔로 거처를 옮기셨다.


관광에서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 다낭의 유명 관광지는 한 번씩 다 돌아봤고, 한국에서 보기 힘든 두리안과 코코넛 게 등 나름 괜찮다는 음식도 열심히 먹으러 다녔다. 나와 살며 어휘력이 좋아진 거너는 한국어로도 곧잘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나를 따라 제2의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무사히 두 분의 여행이 마무리되고, 거너와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며, 공항으로 배웅 나갔을 때 아빠가 한 마디 하셨다. 그만하면 됐고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처음에 베트남 가본다고 했을 때는, 가서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건설적으로 살아볼 것 같다는 생각에 응원해주고 싶었지만, 막상 다낭에서 사는 내 모습을 보니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집이라고 구해서 살고 있는 곳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불편해 보이는 옛날식 베트남 집이고, 한국에서는 나름 제 몫은 하면서 산다고 생각했는데 베트남에서는 하는 일 없는 백수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하는 것도 없는데 무슨 시간 낭비를 하고 있냐며 그냥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부모님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과년한 딸이 갑자기 준비도 없이 외국으로 가더니, 좋아 보이지도 않은 환경에서 직업도 없이 살고 있는데 마음 편할 부모님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때 난 베트남으로 온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된 상태였다. 남들은 얼마나 적응력이 빠를 진 몰라도, 내게 두 달은 이제 막 공과금 납부 방법이나 지역 내 시스템을 알아가는 초입기였다. 그런 내게 부모님은 베트남에 있는 너는 한심해 보인다는 말을 던졌다. 실제 한심한 자식이라 할지라도 언제 또 볼 지 모를 자식 얼굴을 앞에 두고, 굳이 그 말을 던져야 했을까 싶다. 안 그래도 적응이 힘들어 소리 죽여 울던 날이 많던 시기였기에, 부모님의 말은 비수가 되어 꽂혔다. 잘 버텨보겠다던 의지도 한층 꺾여 진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나는 괜히 이곳에 와서 허송세월 보내고 있는 것인가 마음이 복잡해졌다.


다행히 함께 사는 거너가 그런 나를 위로해 줬다. 부모님들이야 어떻게든 자식이 편하고 안정된 길을 가길 바라지 않겠느냐고, 그분들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잠깐 와서 보신 거라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네가 여기서 얼마나 내면적으로 외면적으로 잘 싸우며 많이 배워가고 있는지까지는 모르셔서 그런 걸 거라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여기 온 지 두 달 밖에 안 됐으니 부디 후회 없이 이곳에서 해보고 싶은 것과 해볼 수 있는 건 하고 가자고 말이다.


기가 막히게도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말을 건넨 거너 덕에, 나는 한국행 티켓을 접고 다시 한번 있어볼 때까지 있어 보기로 했다. 만일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남들 보기에 실패한 베트남 살이가 되더라도, 살면서 이런 실패를 마음껏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당연히 그때 부모님 말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걸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지금까지 잘한 일 중 한 가지로, 베트남 살이에 도전해 본 걸 꼽을 정도로, 두 달 만에 포기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값진 경험과 인적 자산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와 가깝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미래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내가 어떻게 변할지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부모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 다지만, 그게 내가 진짜 먹고 싶었던 떡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원했던 떡이 아니라고 해서 나중에 가서 그분들을 원망할 수도 없다. 비록 떡이 아니라 떡고물만 얻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원했던 떡고물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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