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베트남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은 예상밖에도 베트남 사람도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이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에’.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친구지만, 이름을 부르는 사이기에 딱히 나이 차이가 많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낭에서 마당발인 베트남 친구의 소개로 만났고, 공통점이 많아 금방 친해졌다. 한국과 일본은 생활 수준이나 문화가 비슷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도 많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워진 이후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
현지인처럼 베트남 음식만 먹고살 수 없는 우리는 같이 한국 식당과 일본 식당을 가는 식사 메이트가 되기도 했고, 베트남 친구들한테는 말 못 하는 이곳 생활의 고충을 침 튀기며 토로할 수 있는 수다 메이트가 되기도 했다. 평소 너무너무 잘 맞고 좋은 친구지만, 딱 한 가지 이 친구의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운전 스타일이다.
내가 맨 처음 마리에를 만났을 때는 나처럼 오토바이 운전을 무서워해, 매번 친구한테 부탁해 뒤에 같이 타고 다니거나, 공유 택시인 ‘그랩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신호 없는 무질서 상태의 베트남 도로를 직접 운전해 달리기에는 너무 겁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없이 지낸다는 게 얼마나 불편한 지 금세 깨달은 그녀는, 결국 나처럼 자기 오토바이를 하나 장만했다. 새 오토바이를 끌고 와서는 계속해서 “ I’m gonna die soon.”을 중얼거렸다. 기동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를 마련했지만, 이런 대혼돈의 세계에서 직접 운전을 하다가, 조만간 사고로 죽을 것 같다는 공포심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렇게 마리에는 덜덜 떨며 첫 오토바이 운전을 시작했다. 우리는 사고 없이 잘 타고 다닐 수 있게 해 달라며 술까지 구해와 앞바퀴, 뒷바퀴에 열심히 뿌려대며 오토바이의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같이 다낭에 있는 애견 카페에 놀러 가기로 했다. 그녀의 집과 우리 집 중간에서 각자 오토바이를 타고 만났는데, 그 카페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다는 마리에가 자기를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알겠다며 호기롭게 따라나선 나는 너무 놀라고 말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곧 죽을 것 같다며 오토바이 운전에 덜덜 떨었던 그녀가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속 2~30km로 달려도 불안해하는 나와 달리, 마리에는 50km은 훌쩍 넘어 보이는 빠른 스피드로 도로를 휘젓고 있었다. 내 속도로 쫓아가기에는 너무 벅찰 정도로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뿐만 아니라 도대체 언제 그런 걸 배웠는지 역주행까지 시전 했다. 작은 도로도 아니고 큰 도로에서 역주행을 하며 앞에서 달려오는 몇몇 오토바이들을 요리조리 피해 갔고, 좁은 골목길에서는 칼치기에 보행자 무시하고 지나가기 등 현지인들도 자주 안 하는 온갖 기술을 선보이며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횡단했다. 그녀의 운전 스킬에 이제는 내 입에서 “I’m gonna die”가 나왔다. 안전운전을 위해 오토바이의 신에게 한 기도가 잘 못 전달됐는지, 신은 마리에에게 ‘겁을 상실한’ 운전 스킬을 내려주셨다.
내가 알던 마리에가 맞는 건지, 분명 오토바이 산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그 사이에 누구한테 운전을 배운 것인지 온갖 의문점이 머리 위로 떠올랐다. 종종 운전대만 잡으면 성격이 돌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마리에가 그런 사람이라기에 그녀는 운전을 하며 성질을 내거나 욕을 하지도 않았고, 그저 매우 평온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런 표정으로 모든 걸 무시하고 역주행을 하는 위험한 운전을 한다는 거였지만.
길을 모른 채 그녀를 따라가야 하는 나도 멀쩡한 운전을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혼돈의 카오스를 넘어 뇌가 폭발하기 직전, 가기로 한 애견 카페를 발견했다. 드디어 살았다 싶은 순간 결국은 사고가 발생했다. 애견 카페 앞 시멘트 바닥에 오토바이를 세우려 했는데, 도로에서 거기까지 약간의 턱이 있었다. 족히 10센티는 넘어 보이는 꽤 높은 턱이었다. 살짝만 속도를 냈다가는 오히려 턱에 의해 뒤로 밀려 뒤에서 전진해 오던 오토바이와 부딪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정도껏 엑셀을 돌려야 하는데, 마리에를 따라오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있는 힘껏 손잡이를 돌려 버렸다. 그 순간 마치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듯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돌진했고, 너무 놀란 나는 브레이크를 꽉 잡으며 눈까지 감아버렸다.
오토바이는 멈춰 섰지만 순식간에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고함이 들렸다. 감았던 눈을 떠보자, 내 오토바이는 턱을 넘어 애견카페 바로 옆에 있는 간이 꽃집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그곳에는 주인을 비롯해 두 명의 손님이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진열대 바로 5센티 앞에서 오토바이 바퀴가 멈춰 섰기에 부순 물건은 없었지만, 너무 놀란 꽃집 사장님과 손님들은 무서운 기세로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을 쏴대기 시작했다. 베트남어를 몰라도, 심한 욕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너무 놀란 나머지 다리가 풀려 오토바이에서 내릴 수 조차 없었고, 시동도 끄지 못 한 채 몸이 굳어버렸다.
이미 주차를 마치고 옆에서 지켜보던 마리에가 놀라 다가와 나 대신 시동을 꺼주고, 이 사람은 외국인이라 운전이 미숙했다고 열을 내는 사람들에게 대신 사과를 했다. 뒤늦게 정신 차린 나도 두 손을 모으고 ‘아임 쏘리’를 연신 외쳐대자, 그제야 욕을 거둔 사람들이 눈으로 흘깃 쏘아보며 사라졌다.
당황스럽고 무섭고 창피하고 온갖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른 채 일단 애견카페로 들어섰는데, 여기서도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귀여운 개들은 많았지만 언제 목욕을 시킨 것인지, 야생의 들개 냄새가 진동해 숨을 쉴 때마다 헛구역질이 올라왔고, 카페 바닥에는 바퀴벌레 시체가 개들의 장난감대신 놓여있었다.
도저히 여기서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어, 집 근처에 있는 조용한 카페로 옮겼다. 거기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보며, 기적적으로 사람을 안 치고 물건을 안 부순 일에 안도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리에와 어딘가를 갈 때는 미리 꼭 네비를 찍고 갔다. 그녀의 속도와 상관없이 내 속도를 지키며 멘탈을 부여잡기 위해서였다. 마리에는 생각보다 오토바이 운전이 잘 맞는다며, 렌탈 가게를 통해 오토바이를 여러 대 바꿔가며 훨씬 더 강한 스피드를 즐기기 시작했다. 과격한 운전 스타일도 현지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우리는 지금도 좋은 친구지만 그녀가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을 때만큼은 나는 결코 그녀 옆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