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좀 단속하러 왔습니다

by 라봇


나는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서 음주가무를 제일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생각했다. 남다른 음주 양을 비롯해 춤과 노래를 즐기는 문화는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뼈에 새겨져 있는 한국인의 민족성 같은 거라고 의심치 않았으며, 나는 그에 부응하기 위해 일요일 아침마다 전국 노래자랑을 보고, 뻔질나게 노래방에 드나들었다.


하지만 베트남에 와서 한국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집집마다 노래방 기계를 두고 밤이고 낮이고 마이크와 상시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가전제품 마트에 가면 크고 작은 노래방 기계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들고 다닐 수 있는 소형 노래방 기계도 많았다. 기계뿐만 아니라 무선 마이크도 엄청 잘 팔렸다. 세탁기나 냉장고처럼, 마치 집 안에 꼭 필요한 가전제품 취급을 받았다.


집집마다 노래방 기계가 있는 것도 신기한데, 밖에 나가도 마찬가지였다. 바닷가에 가도, 술집에 가도, 오토바이에 소형 노래방 기계를 싣고 다니며 여기저기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매우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노래방이라는 특정 장소가 별로 없는 이유는, 그들이 마이크를 잡는 곳 어디든 노래방이 될 수 있으니, 굳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어딘가를 따로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언제든 노래 한 소절 뽑고 싶으면, 거실에 있는 마이크를 집어 들면 되고, 집에서 부르는 게 지겨우면 기계를 들고 문 밖을 나서면 될 일이었다.

그런 문화이기에,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그들의 노랫소리가 자연스레 내 알람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옆집 노랫소리, 내일은 뒷집 노랫소리, 그리고 다음 날은 앞 집, 뒷집 동시에 섞이는 노랫소리.. 그들이 열심히 열창해 준 덕에 낯설었던 베트남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릴 때가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노래 부르는 시간이었다. 그들의 노래 사랑은 도무지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 아침 5시부터 눈 뜨자마자 노래가 땡기면 기계부터 틀었다. 밤이 깊어 2시 3시가 되어도 노래방 기계에 예약된 그들의 번호는 끝이 없었고, 오히려 해가 떨어지니 노래 부를 맛 난다며 진성에, 두성까지 써가며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다. ‘부른다’라기보다는 ‘지른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외국인으로 이 마을에 살며, 현지 사람들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침부터 질러 대는 그들의 노랫소리에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려 했지만, 새벽 2시가 넘어가도록 끝나지 않는 이웃들의 흥겨움은 도무지 참기가 어려웠다.

이쯤 되면 베트남 사람들은 한밤 중 남의 집 노랫소리를 신경 안 쓰나 싶겠지만, 신경 안 쓰는 게 아니라 시끄러워도 보통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본인도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옆집이 불러도 내일은 내가 부를 것이니, 서로서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이상, 시끄러워 잠을 설쳐도 그들끼리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종종 서로의 노랫소리를 못 참고 칼부림이 낫다는 베트남 기사를 볼 때도 있었지만, 그건 그만큼 예외적인 사건이니 신문에 실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와 거너는 현지인이 아니다. 밤에 시끄러우면 경찰에 신고하는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거너는, 안 그래도 방음도 안 되는 집들이, 덮다고 문까지 열어젖혀놓고 노래방 기계를 밤새 틀어대는 통에 죽을 맛이었다. 결국 새벽 2시에 오토바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일단 말려보았다. 혹시나 현지인들이 우리의 불만에 앙심을 품으면 경찰이 되려 우리 집으로 와서 못 살게 굴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거너는 잠을 못 자 미치겠다며, 결국 얼마 전 중고로 구매한 오토바이를 끌고 동네 순회를 했다. 베트남어를 할 줄 모르니, 뭐라고 할지 궁금했는데, 노래를 부르는 집 앞으로 가, 오토바이로 경적을 울린 후 손목시계를 가리키는 제스처와 귀를 막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렇게 동네 방범대원처럼, 집집마다 노래방 기계를 단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과연, 파란 눈의 외국인이 갑자기 나타나 손짓 발짓 한 게 그들에게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거너가 집으로 돌아오고 얼마 후, 거짓말처럼 노랫소리들이 멎기 시작했다. 감히 우리의 흥에 불만을 갖냐며, 동네 사람들이 집으로 쳐들어오지 않을까 긴장도 되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꿀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뿐, 한 밤의 순회가 그들의 흥을 오래도록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바로 다음 날부터 다시 그들은 마이크의 전원 버튼을 눌렀고, 그때마다 동네 순회를 다시 할 수 없었던 우리는, 사는 곳은 주택가였으나 유흥가의 한복판에 있는 기분으로 잠들었다. 듣기 싫은 소리도 매일 들으면 익숙해진다는 말을 되새기며 정신 승리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한국에 가도 노래방에 가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꽤나 음주가무 좀 한다는 명함을 내밀 수 없다는 걸 안 이상, 흥미롭게도 나의 노래방 사랑은 귀신같이 그 모습을 감추었다. 누군가 베트남 현지 마을에 살러 간다고 하면, 꼭 좋은 귀마개를 하나 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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