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증 속 할머니는 제가 맞습니다

by 라봇

베트남에 살기 전에 현지 사정을 모를 때는, 오토바이 없이도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랩’이라는 공유 택시가 잘 발달되어 있고, 그게 없어도 일반 택시도 많은 편이라,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더군다나 나는 오토바이 사고 환자들이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갈리는 외상을 입고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 오토바이는 무조건 타서는 안 될, 절대 멀리해야 할 악마 들린 물건이라 여겼기에, 오토바이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오토바이가 매우 위험한 수단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여행으로 와서 잠깐 있는 거면 모를까, 오토바이를 거실에 들여놓고 자고 현관에서부터 목적지까지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나라에서, 오토바이를 멀리한다는 건 초밥집에 가서 해산물 안 먹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오토바이 없이 사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나, 선택지가 좁아지고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크다는 말이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싶어도 인도 자체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그냥 오토바이 주차장이니 걸어 다니는 게 오토바이 운전보다 힘들었다.


베트남에서 살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닐 때부터, 오토바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교통비를 아낄 수 있는 건 둘째 치고, 한국에서 차가 있는 것처럼 기동성이 좋아지고 시간 절약이 된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결국 집을 계약하고 나서 그다음으로 마련한 게 오토바이였다. 새 오토바이를 산다는 건 가격적인 면에서도, 내 운전 경력으로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고, 인터넷으로 알아보다 주황색의 야마하 중고 오토바이를 구매했다. 십 년은 넘은 물건이었지만, 일단 굴러가기는 했으며 가격도 내 주머니 사정과 맞았다. 사진으로 볼 때 보다 실제로는 등치가 좀 커서 당황스러웠는데, 그만큼 의자 밑 수납공간도 넉넉하다는 점이 좋았다.

야마하 오토바이와 동거남

난생처음 오토바이를 타게 되었기에 두려움이 앞섰지만 일단 타보기로 했다. 먼저 사람이 적은 곳에 가서, 오토바이 시동 거는 법부터 연습해 봤다. 대학생 때 학교에서 오토바이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거너는, 특별한 연습 없이도 곧잘 탔다. 나는 한국 대학 중에서 오토바이 수업이 있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는데, 미국은 학교에서 별 걸 다 가르쳐주는 듯했다.


키를 꽂고 오른쪽 손잡이 부분을 살짝 돌리면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도무지 이게 얼마나 돌려야 어느 정도 스피드가 나오는지 감이 잘 안 잡혔다. 이 정도는 돌려줘야 속도가 나올 것 같았는데, 너무 빨리 앞으로 튕겨져 나갔고, 겁이 나서 살살 돌리면 속도가 걷는 것만 못했다. 오토바이 중심을 잘 못 잡아 오른쪽 왼쪽 번걸아가며 넘어졌고, 주변에서 저 외국인 여자가 뭘 하나 지켜보던 베트남 아저씨들은 내가 넘어질 때마다 깔깔대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민망해진 나는 서둘러 연습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며칠 후 바로 실전에 들어가겠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큰 도로로 나가봤다. 사람이 많지 않은 우리 동네에서는 운전이 어렵지 않아 경치도 보고 바람도 느낄 수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중심가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오토바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너무 겁이 났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베트남은 신호등 자체가 없는 곳이 많아 도대체 언제 어디서 오토바이가 나한테 날라들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뒤에도 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머리 양 쪽 관자놀이에도 눈이 필요할 지경이었다. 간혹 신호등이 있는 곳을 찾아도, 빨간색이 뭔 뜻인지 내 알바 아니라는 듯 그 신호를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신호를 지키려 바이크를 멈춰 세우는 사람 때문에 사고가 났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대체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를 상태가 되었을 때, 갑자기 베트남 경찰이 나를 붙잡았다. 다낭에서 웬만하면 경찰이 외국인을 붙잡는 일이 없는데, 나는 누가 보기에도 불안하게 운전을 하고 있었나 보다. 경찰 덕분에 무사히 오토바이를 멈춰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건 다행이었지만, 이젠 나에게 뭘 요구할지가 불안했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한 번 흝어보더니 오토바이 면허증을 요구했다.


그렇다. 다낭에서도 오토바이를 타려면 ‘공식적으로는’ 면허증이 필요했던 것이다. 면허증도 없는 사람한테 오토바이처럼 위험한 물건을 타게 하는 건 당연히 안 될 말이지만, 오토바이가 시민들의 발이나 마찬가지인 나라에서, 실제로 면허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헬멧 없이 4인 가족이 한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걸 빈번히 보는 나라에서 면허의 유무가 과연 중요하겠느냐 말이다. 외국인들이 오토바이를 렌트할 때도 딱히 가게에서 면허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경찰들도 그들이 정식 면허증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워낙 많으니 신경 쓰지 않고 눈감아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암묵적인 룰이 있는 곳에서 나는 왜 붙잡힌 것인가. 운전이 너무 불안해 보였거나, 돈을 요구하고 싶은 것, 둘 중 하나인 것이 분명했다. 공무원들이 청렴과는 거리가 먼 나라라, 일반적인 행정 처리를 할 때도 뒷돈을 요구한다. ‘공식적으로는’, 내가 면허가 없다면 충분히 그들은 법적인 문제를 물고 늘어질 수 있는 건수였다.


나는 바이크에서 내려 의자 수납장 속에서 낡은 오토바이 면허증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는 면허증을 보자마자 실소를 터뜨렸다. 그 베트남 면허증 속에는 머리가 하얗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베트남 할머니의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북 아시아인의 30대인 내가, 면허증에서는 동남아시아의 50대 할머니로 둔갑해 있었다.


사실 이 면허증은 중고 오토바이를 살 때 함께 딸려온 면허증이었다. 10년간 몇 명의 주인을 거쳤는지 모르겠지만, 사진 속 할머니는 그중 한 명이 분명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중고로 넘길 때 자신의 면허증도 함께 넘겼고, 그 이후의 판매자들도 계속 이 면허증까지 세트로 판매해 온 것이다. 이걸 발견했을 때, 설마 쓸 일이 있겠나 싶었지만, 일단 갖고는 있는 게 낫겠다 싶어 오토바이에 넣어두고 다녔다. 그런데 이 면허증을 이렇게 빨리도 쓰게 될 줄이야.


경찰은 손가락으로 그 할머니 사진을 한 번 가리키고, 그다음으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이게 너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경찰은 면허증을 들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나를 바라봤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삐딱한 자세로 아무 말 안 하고 있는 그 경찰앞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저 먼 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할머니 사진이 박혀있는 면허증을 다시 돌려주며 손짓으로 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처음에는 꼬투리를 잡고 내게 돈을 요구하려는 것 같았지만, 오토바이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땀에 절어 불안해하는 나를 보고, 측은지심이 앞섰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너무도 당당하게 할머니 사진이 박힌 면허증을 내 거라고 내미는 사람하고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이유야 어찌 됐든 나는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거너에게 이 얘기를 하자, 깔깔대며 웃고는, 그래도 본인이 그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파란 눈의 백인 남자가 베트남 할머니의 면허증을 들이미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어차피 그 상황이나 내 상황이나 문제가 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저 나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웃음이 나왔다.

주황색의 야마하 오토바이는 그렇게 1년을 넘게 타다, 중고 오토바이를 찾는 다른 외국인에게 넘겨버렸다. 물론 그 할머니 사진이 박힌 면허증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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