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낭 내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베트남 친구도 있었고, 또 현지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 본인의 친구들을 소개하며 조금씩 아는 사람이 늘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아는 걸 넘어,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되려면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말에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약속을 잡으려 노력했지만, 이게 문화차이로 참 쉽지 않았다.
“ 우리 내일 만나지? 몇 시에 볼까? “
“ 내가 자주 가는 카페 있는데, 아침 7시에 거기서 보자. “
‘………………………………’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주말인데 대체 왜 아침 7시에 만나자는 것인가. 그 시간은 새벽이 아니었던가?
나는 저혈압에 잠도 많은 인간인지라,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주말 아침 7시에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한국에서 주말인데 7시에 커피를 마시자고 하는 건 오히려 너무 예의 없는 일 아닌가? 회사 부장님을 따라 등산을 가거나 어디 장거리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아니 세상에, 한국에서 주말 아침 7시에 나가봤자 문을 여는 카페도 별로 없다. 뭐 얼마나 대단한 수다를 떤다고 새벽같이 일어나 만날 일이냔 말이다.
“ 내가 그렇게 일찍은 잘 못 일어나는데… 좀 더 늦게 보면 안 돼?”
“ 그럼 8시? “
“ 음… 한 10시는 어때? “
“ 안 돼. 너무 늦어. “
대체 뭐가 늦는다는 말인지.. 버스 타고 당일치기로 지방 가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시간 개념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더운 나라는 아침을 시작해도 너무 일찍 시작했다. 한 여름에는 기본적으로 온도가 37~38도로 오르는 곳이다 보니, 학교도 회사도 보통 아침 7시 전에 시작한다. 그러니 새벽 6시만 되어도, 이미 길거리가 활발하게 돌아갔다. 아침밥을 파는 간이식당부터,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로컬 카페는 이미 커피를 들고 앉은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진한 커피 한잔으로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하루를 시작하는 게 그들의 일과라, 7시에 친구를 만나는 것도 결코 이른 시간이 아닌 것이다. 새벽까지 집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사람들이, 새벽같이 일어날 에너지는 또 어디서 난 건지, 이런 것만 보면 베트남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근면 성실한 민족 같았다.
어쩌겠나, 외국인이 현지인 리듬에 맞춰야지. 결국 서로 양보해 아침 8시로 약속을 잡고, 나는 7시 반에 맞춰 놓은 알람으로 비몽사몽 일어났다. 직장에 나가는 것 처럼 친구 만나러 알람까지 맞춰 놔야 하는 상황이 조금 어이없었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아침 일찍 보는데도 꼭 다들 밥은 먹고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허겁지겁 나오기 바빠, 물 한 잔도 못 마시고 나올 때가 많았다. 그렇게 빈 속에 커피만 넣고 있다 속이 쓰려서 배 안 고프냐 물어보면, 베트남 친구들은 이미 아침을 먹었다며, 넌 밥도 안 먹고 나왔냐는 답이 돌아왔다.
‘ 너 만나기 30분 전에 일어났는데, 먹고 나왔겠냐….’를 속으로 생각하고 주린배를 참았다. 참으로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커피만 마시는 게 좀 질려, 점심시간이나 저녁때 만나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런데 그건 또 싫어했다. 물론 모든 베트남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본인의 가족 식사에 초대한 친구도 있고, 현지 요리 전문점에 데려간 친구들도 있다. 그럼에도 밖에서 사람을 만날 때, 일부러 식사 시간 즈음에 만나 밥을 한 끼 같이 하는 한국 문화와는 꽤나 차이가 있었다. 밥시간에 맞춰 만나는 일이 별로 없고, 보통 밥은 각자 집에서 해결하고 밖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는 문화였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게 지극히 일반적인 나라에서 살다가, 사람을 만나도 밥을 같이 안 먹으니 그게 좀 이상했다. 밖에서 맛있는 거 사 먹는 재미도 있는 건데, 여기 사람들은 미식에 대한 취미는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늘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오토바이로 다니는 사람들이니, 저녁에 술 마시기는 힘들 것이고, 평균적으로 버는 월급이 크지 않다 보니, 밖에서 같이 밥을 사 먹는 것보다 커피를 마시는 게 덜 부담이 되어 이런 문화로 정착이 된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만난 베트남 친구들 중, 술을 좋아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예 술을 안 마시는 친구도 있었다.
현지식으로 따라가려고 해도 원래 살던 버릇이 있어, 그렇게만 사니 답답했다. 가끔은 맛난 외식을 즐기며 술 한 잔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인데, 베트남 사람들과 그걸 못 하는 게 제일 아쉬웠다. 하지만 본래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려 할 때는, 당장 얻는 것보다는 당장 포기할 게 많아지는 법이다. 익숙했던 것을 손에 계속 쥐고 있고 싶다면, 굳이 내가 여기 있을 필요는 없었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없는 것들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봤다. 현지 친구들과 같이 밥은 못 먹어도, 아침에라도 만나서 그들의 카페 문화를 배울 수 있고, 그렇게나 아침잠이 많아 주말에는 하루의 반을 잠으로 보내던 내가, 덕분에 하루를 좀 더 길게 쓰게 됐다. 물론 맛난 안주에 술 한 잔 기울이는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취미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거너가 있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지금도 베트남 사람들에 비해서는 잠이 많아도, 요즘엔 그들의 시간에 맞춰 아침 6시에 일어날 때도 종종 있다. 환경이 사람을 이렇게 바꾸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