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베트남 친구가 두 눈이 빨갛게 충혈돼서 나타났다. 누가 봐도 운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학창 시절 은사님이 돌아가셔서 동창들과 장례식에 다녀왔는데, 가기 전까지는 괜찮았지만 막상 가 보니 많이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과 슬픔, 두려움 등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복받쳐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선생님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도 안타깝지만, 아직 장례식장에 익숙하지는 않은 나이기에, 장례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겁고 슬픈 분위기에 압도되면서, 동시에 늦둥이로 태어나 나이 많으신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면 어찌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미쳐, 부정적인 감정에서 쉽게 헤어 나올 수 없었다고 했다.
보통, 장례식장을 빌려 장례를 치르는 한국과 달리, 베트남은 아직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나도 지나가다 우연히 누군가의 장례를 보게 된 적이 있는데, 장례 절차가 꽤 한국과 닮은 것 같았다. 유족들이 상복을 입고 머리에 흰색의 머리 장식을 하는 것도 그렇고, 조문객들이 방문해 부조금을 내고 간단한 음식을 먹는 것 등이 그러했다. 은사님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친구는 아직 20대의 나이로, 가까운 지인 중 누군가가 돌아가신 게 처음이라, 성인이 된 이후 조문을 하러 간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장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조문 다녀온 지 얼마 안 돼 그런 건 알겠지만, 지병도 없으신 부모님의 장례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더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도 슬프지만, 사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자기 손으로 부모님의 시신에 칼을 대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님 시신에 칼?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내가 지금 무슨 예기를 듣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나가다 내가 본 베트남 장례가 전부라고 생각했고, 그 외의 어떤 문화가 있는 지는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트남도 장례식 후에는 매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는데, 아직은 매장이 조금 더 일반적이다. 매장을 할 때 풍수지리를 따지는 우리처럼, 베트남도 그들의 방식에 맞게 좋은 묫자리를 골라 안장시킨다. 문제는 고인이 돌아가시고 3년 뒤다. 이건 북부 지방이냐 남부 지방이냐에 따라 다른데, 북부의 경우 3년 후 무덤을 파서 이장을 한다. 특별히 묫자리가 안 좋거나 땅에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다. 본래 3년 후 이장을 하는 것이 북부 지방의 장례 문화다. 이장을 할 때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관을 열고 시신을 꺼내 썩은 살을 발라내고 뼈만 추려, 따로 준비한 관에 넣고 가족 묘지나 공동묘지로 옮긴다. 시신의 뼈를 추리는 일은, 고인의 가족들, 특히 자식이 하며 자식 중에서도 장자가 하는 문화다. 내 친구는 외동딸이며, 현재는 다낭에 살고 있지만 북부 지방인 하노이 출신이고, 부모님은 여전히 하노이에 살고 계신다.
친구는 오늘 은사님의 장례식에 갔다가, 문득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신이 자식으로서 장례식 준비 외에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떠올라 마음이 더 불편해졌던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님이라지만, 3년 뒤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변해버린 부모님의 사체에 직접 칼을 대고 살과 뼈를 발라내는 일을 과연 좋은 마음으로만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요즘은 사람들이 화장품도 많이 쓰고 사망 전 병원에서 약도 많이 쓰기 때문인지, 시체도 옛날만큼 쉽게 썩지 않는다. 옛날 같았으면 3년이면, 거의 뼈만 남은 상태가 됐겠지만, 지금은 3년 뒤에 관을 열어도 부패 속도가 느려진 탓에, 아직 썩고 있는 시신과 마주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물론 직접 고인의 뼈를 추려내야 하는 가족의 괴로움도 올라갈 것이다. 외동딸이라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의 유골을 혼자 다 수습해야 하는 친구는, 그 걱정으로 얘기하는 내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건강하신 부모님을 두고,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것도 못할 짓이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부디 부모님이 매장이 아니라 화장을 선택하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충격적인 베트남 북부 지방 장례 문화를 듣고, 나는 친구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래도 문화가 그러하니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해야 한다고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어쩌냐며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혹은 나도 너희 부모님이 화장을 선택하시길 바란다고 공감의 리액션을 보여야 할까. 이 상황에 맞게 건네야 하는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친구의 어깨를 토닥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 오늘 나눴던 얘기를 곱씹으며 나도 문득 부모님의 장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나이 먹을수록 부모님이 크게 아프신 데 없이 건강하신 게 정말 얼마나 큰 복이지 느낀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불로장생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미래 어딘가에서 벌어질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장녀로서 그런 상황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도 없었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없었다. 괜스레 심란해진 마음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 아버지가 군 출신이라 두 분 다 국립묘지로 갈 거니, 크게 알아볼 거 없다고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하고 싶었으나, 친구랑도 얘기 나누기 어려운 주제가 ‘죽음’인데, 가족끼리, 그것도 부모 자식 간에 얘기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하지만 황망히 가족을 보낸 사람들을 보면, 그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여러 장례 절차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야 되며, 동시에 고인이 어떤 걸 원할 지 알지 못해, 살아있을 때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게 후회되고 안타까워 더 슬퍼하는 걸 봤다. 가는 데 순서 없고, 언제 갈지 알 수도 없기에, 기회가 된다면 가까운 사람들과 나의 장례는 이런 식으로 치러주면 좋겠다고 미리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 할 말은 아닌 걸 알면서도, 현재 나는 외국에 있으니 혹 내가 객지에서 사망하면, 꼭 고국에 데려가 뿌려 달라는 말을 전했다. 무섭게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하셨지만, 때로는 살이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매일 여러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게 세상이기에, 또 타지에 있어 쉽게 볼 수 없다는 거리감과 외로움이 이런 말도 떼게 만들었다.
요즘은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냐며, 살이 있을 때 미리 사람들을 모아다가 장례식을 하는 사람도 봤다. 장례를 치른다는 게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꼭 마주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문화와 사회적 시선에만 국한되지 않고, 본인과 주변인을 위한 나은 방식을 생각해 보기 위해, 조금 더 이 주제를 양지로 꺼내 얘기해 보는 게, 뒤늦은 후회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