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에서 사귄 친구 중 유치원 선생님이 있다. 애들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30대가 훌쩍 넘는 나이에도 목소리부터 체형, 얼굴까지 어린이 같아서, 어쩌면 자기한테 이렇게 잘 어울리는 찰떡같은 직업을 찾았을까 싶은 사람이다. 유치원에서 받는 월급이 크지는 않아도, 혼자 생활하는 데 부족하지는 않았는데, 이 친구가 어딜 놀러 갔다가 소매치기에게 크게 당해 상당한 액수의 돈을 도둑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을 찾을 수도 없었고, 찾아도 잃어버린 돈을 전부 돌려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급한 대로 유치원 일을 마친 후에, 부업으로 어느 가정집 애들을 봐주는 돌보미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갑자기 일이 바빠진 친구는, 한동안 볼 수 없다가 약 한 달 만에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일이 힘든지 많이 핼쑥해져 있었다. 돌보는 아이들이 힘들게 하냐고 물어보니, 사실 애들을 보는 건 힘들지 않지만 언어 문제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했다. 외국인 애들을 돌보는 것도 아닌데 이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애들도, 그 애들의 부모님들도 전부 베트남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친구가 돌보미 일을 시작할 때, 애들 엄마가 내건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하노이 말투였다. 애들 앞에서는 무조건 하노이 말투를 써 달라 했다는 것이다. 친구는 하노이에서 태어나 자라기는 했지만, 다낭으로 이사와 산 지 10년이 훨씬 넘은 상태였다. 이곳에서 살면서 중부지방 발음에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그 애들 앞에서는 북부에서 쓰던 말투를 쓰려니, 같은 언어인데도 혼돈이 오고, 말실수를 할까 봐 훨씬 신경이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하노이 말투를 부탁한 애들 엄마도 다낭 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꿋꿋이 하노이 말투를 고수하고 있었고, 다낭에서 태어나 다낭에서만 산 아이들에게도 하노이 말투만 쓸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한국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듯이 베트남도 지역에 따라 발음과 말투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대화가 아예 안 될 정도의 차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특정 문자 발음과 사용하는 어휘가 달라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한국에서도 표준어로는 ‘부추’라고 하지만, 경상도 쪽에서는 ‘정구지’라는 표현을 쓰는 데, 이 단어를 모르면 정구지를 달라고 할 때, 뭘 달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중부지방인 다낭에 살면서, 북부 지방 말투를 쓰면 분명 이런 의사소통의 오류가 없지는 않을 텐데도, 그 애들 엄마가 그렇게나 하노이 말투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본인이 하노이 출신이라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 엄마가 말하는 ‘지역 자부심’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어느 나라든 있지 않은가.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자부심. 특히 유명한 도시 혹은 한 나라의 수도 출신의 사람들이 많이 갖고 있는 뽐내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TV에서도 지역색이 짙은 말투를 쓰는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의 말투를 재미있어하기도 하고,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놀리기도 한다. 놀리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말투로 지역을 구분하고, 출신 지역에 따라 처음 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일도 매우 흔한 일 아닌가.
나 또한 살면서 많이 경험해 봤다. 강원도에서 내가 다니던 학교와 타 도시 학교의 교류회에 갔을 때, 그 도시 학교 부모님들이 내가 강원도 학교에 다닌다고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던 일부터, 베트남에서도 내가 중부지방 발음을 한다고 우스워하는 현지인들도 봤었다. 나라고 지역에 따른 편견을 안 갖고 있을까. 의식도 못 하는 사이에 내가 타인에게 얄궂은 태도를 내보였던 적이 없었을까. 그래서 그 아이 엄마가 어떻게든 하노이 말투를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는 알 것 같다. 나와 우리 애들이 말투만으로 어디 가서 괜한 차별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 마음을 넘어 ‘나와 우리 애들은 뉴스 아나운서가 쓰는 말투를 쓰는 사람들이고, 고로 이 지방 사람들과는 다르다’라고 선을 긋기도 하며, 심지어 돌보미 일을 하는 친구의 발음 중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그걸 고쳐 주려고까지 했다. 만일 여기가 하노이면 모를까, 다낭에서 하노이 말투를 써야 하고 발음까지 지적받는 친구는, 아이 돌보는 일보다 그게 더 스트레스라고 울상을 지었다.
한국에서 아이 외국어 교육을 위해 영어 할 줄 아는 돌보미를 찾는 사람은 봤어도, 서울말 쓰는 돌보미를 구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땅이 넓은 만큼 지역마다 말투 차이가 심하니 베트남은 이런 경우도 생기나 보다. 후에, 나도 우연히 그 아이 엄마를 만난 적이 있는데, 베트남어를 배울 거면 하노이 말을 배우지 왜 중부지방 말을 배우냐고 한 소리 들었다. 처음 만난 외국인인 나에게도 하노이 부심을 이렇게 드러낼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일지 대략 짐작이 간다. 나야 뭐 어릴 때부터 이 지역 저 지역 이사 다니며 떠돌아다닌 탓에, 부릴 만한 지역 부심이 없어, 그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가 싶지만, 한편으로는 하노이 출신이라는 것 외에 자존감을 높여줄 만한 다른 무언가가 없어, 그게 집착으로 이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딱히 내세울 거 없는 건 매한가지인데, 필요하면 베트남 다낭 산다는 다낭 부심이라도 부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