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버스킹

by 라봇

날은 덥지만 전기가 넉넉하지 않은 베트남에는 에어컨 없는 식당과 카페들이 많다. 벽에 붙어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 몇 대가 더위를 식히는 유일한 수단이라, 이런 로컬 가게들은 영업시간 동안 늘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가게 정문은 물론이고, 작은 창문까지 가게에 붙어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다 열어 놔야 그나마 더위에 질식사하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렇다고 시원한 건 아니라, 사람이 제일 많을 때는 역시 해가 뜨기 시작한 새벽이나 그늘이 지기 시작한 저녁 시간 때다. 타 죽지 않고 야외 활동을 즐기려면 그 시간에 밖에 나가는 게 제격이다. 편안해진 밤공기를 타고 사람들이 길거리에 달그락 거리는 낡은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 놓는다. 그리고 각종 고기나 해산물을 구워 미지근한 맥주에 얼음을 타서 여름밤을 즐긴다. 여기나 저기나 사람들이 무더운 여름을 즐기는 방식은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이 거룩한 밤 나들이를 망치는 원흉이 있다. 바로 길거리 공연자들이다.


뚱땅거리는 시끄러운 반주를 틀어놓고, 무선 마이크를 들고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돌아다니며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타닥타닥 고기 구워지는 소리 좀 들으면서 이 동남아의 밤을 즐기려고 하는데, 그에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도대체 무슨 장르의 음악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알 수 없는 기계 반주로 주변을 시끄럽게 만든다. 노래도 귀를 막고 싶게 만드는 실력이라, 차라리 어린아이 앉혀 놓고 동요를 부르게 하는 게 훨씬 고막이 편안할 것 같다. 식당 주인은 신경도 안 쓰는 걸 보면 직접 이 사람을 고용한 것 같은데, 손님들 즐거우라고 부른 공연자를 실력도 안 보고 뽑은 건지 짜증이 울컥 밀려온다.


그런데 이 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손을 내민다. 자기 손을 잡으라는 건가 싶어 나도 손을 내밀면, 그 손은 내쳐버린다. 그리고는 빳빳한 베트남 지폐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사람이 원하는 건 돈이었다. 식당에서 돈 주고 고용한 가수인 줄 알았더니, 전혀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스피커를 매달아 두고, 동네 식당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팁을 받는 일종의 버스킹 공연자였다.


베트남에서도 이렇게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버스킹이 있는데, 한국이나 서양권에서 보던 버스킹이랑은 사뭇 다르다. 번화가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다니는 서비스로, 허락도 구하지 않고 이 가게 저 가게를 들락거리며 원하지 않는 노래를 불러준다. 날이 더워 문을 닫아 놓은 식당이 없고, 문은 커녕 아예 길거리에 테이블을 다 세팅해 놨으니 이들의 입장을 막을 방법은 없다. 식당 사장님과 직원들도 원래 그냥 있던 직원이려니 하면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딱히 제재를 하지도 않는다.


저렇게 귀청 나가게 노래를 불러 대는데 누가 돈을 줄까 싶지만, 그게 주는 사람들이 있다. 듣기 좋은 노래도 아닌데 왜 돈을 쥐어 주냐고 물어보니, 돈 줄 때까지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란다. 본래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와 시끄럽게 하는 사람은, 식당 사람들이 막아줘야 하지만 그들은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쳐다도 안 보기 때문에, 듣기 싫은 손님이 결국 돈을 쥐어주고 공연자들 내보낸다. 음악에 감동을 받아 팁 박스에 지폐를 넣는 타국 사람들과 달리, 듣기 싫어서 돈을 주는 버스킹 문화는 또 처음 봤다. 그렇게 드디어 조용히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을 때, 또 다른 사람이 스피커 달린 오토바이를 이끌고 나타났다. 이렇게 소리만 빽빽 질러대면 공짜 돈을 받을 기회가 생기는데, 당연히 여러 명이 이 일을 하겠다고 달려들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누가 또 돈을 주고 내보내려나 눈치를 보던 그때, 갑자기 쩌렁쩌렁 울리던 음악 소리가 서서히 멀어져 갔다. 마이크를 들고 노래에 심취한 사람은 아직도 내 테이블 옆에 서 있는데 말이다.


노래가 듣기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그의 오토바이가 탐이 났던 걸까. 식당을 지나던 어떤 남자가, 오토바이 주인이 노래 부르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열쇠가 꽂혀 있던 오토바이를 몰고 냅다 도망간 것이었다. 뒤늦게 스피커 소리가 멀어지자 자기 오토바이가 도둑맞았단 걸 안 주인은, 마이크로 ‘도둑 잡아라’를 외치며 오토바이가 사라진 쪽으로 뛰어갔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식당은 1~2초간 정적이 흘렀고, 동시에 빵 터져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어대는 소리가 가득했다. 다들 도둑놈을 욕하는 게 아니라, 안 그래도 듣기 싫은 노래였는데 오토바이를 통째로 도둑맞은 공연자가 샘통이라고 말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내가 방금 본 게 버스킹 노래 공연인지, 코미디 극인지 헷갈린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버스킹은 낭만만 있는 행위인 줄 알았는데, 베트남의 버스킹은 주작이 아니라고 해명해야 할 뜻밖의 일들이 벌어진다. 외국 살이에 익숙해졌는지 나도 이제는 이런 일들에 두 눈 크게 뜨고 놀라기보다는 그냥 웃어버린다. 조금만 더 익숙해지면 내가 아예 마이크 들고 돌아다니며 케이팝 선전을 하고 다닐지 모를 일이다. 베트남의 여름밤이 이렇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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