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가면 종종 한국과 미국에서 본 적 없는 희귀한 과일, 채소가 진열되어 있을 때가 있다. 그걸 구경하는 게 재미있어, 하루 일정을 마치고 작은 마트로 거너와 같이 산책을 가곤 했다. 늘 여름만 있을 것 같은 베트남도 시기에 따라 즐겨 먹는 제철 과일과 채소들이 다른데, 어느 날 마트에 갔더니 본 적 없는 낯선 과일이 과일 코너에 한가득 놓여 있었다. 빨갛고 반짝거려 처음에는 사과인 줄 알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사과 치고는 너무 몸이 얄팍했다. 파프리카를 집어든 것인가 싶어 요리조리 돌려보니, 모양이 참으로 해괴하고 낯설었다.
과일의 꼭지부분이, 사방에서 가운데로 힘을 모아 들어간 것처럼, 중심이 매우 강조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연상되기는 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기 뭐 해 그냥 돌아서려는 찰나, 거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오! 똥구멍!”
너무나 적나라한 단어가 나와, 나는 고개를 홱 돌려 그를 쳐다봤다. 거너는 한 손에 그 과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모인 꼭지 부분을 가리키며 크게 웃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하라고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소리를 냈지만, 나 역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도 이 과일을 처음 봤을 때부터, 가운데로 모아진 것이 꼭 그렇게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먹을 걸 앞에 두고 굳이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아 참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거너는, 그 단어에서 받는 느낌이 나와는 달라서인지 아니면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서 안심한 건지 그저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이 과일 똥구멍 닮지 않았어?”
“알아, 그래도 조용히 해. 한국 사람 들으면 민망해.”
“그럼 똥구멍 아니면 뭐라고 말해?”
그렇다. 거너는 이런 단어밖에 몰랐던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유치원에서 일한 적이 있는 거너는, 유치원에 있는 아이들을 통해 첫 한국어를 접했다. 애들은 방귀, 엉덩이 같은 원초적인 단어와 소리만 들으면 깔깔거린다. 그런 애들이 재미있어, 애들이 하는 말을 따라 하면서 단어를 배웠는데, 그 때문에 거너는 종종 애들처럼 한국어를 할 때가 있었다.
‘나 화장실 가고 싶어’가 아니라 “쉬 마려”라고 하거나, ‘오늘 oo 생일이에요’라는 문장 보다, “오늘 우리 친구 생일이에요”라고 말했다. 다수를 부를 때는 ‘여러분’이 아니라 “얘들아”라는 표현을 써서 내가 말린 적도 있었다. 그런 거너가 이건 똥구멍 닮은 과일이라는 말을 쓰는 게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과일의 영어 이름은 ‘로즈 애플’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한 송이의 장미꽃처럼 보이는 과일이지만, 방정맞은 우리 눈에는 움푹 들어간 과일의 꼭지 부분만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이거 말고도 거너가 베트남 음식을 먹으며 원색적인 표현을 쓴 적이 또 있었다.
채소와 구운 두부, 삶은 돼지고기를 소면과 함께 먹는 요리였는데, 언뜻 보면 한국식 요리랑 비슷해서 맛있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저 보라색 소스였다. 도대체 어떤 식재료를 쓰면 소스가 보라색이 될 수 있는 건지도 신기했지만, 찍어 먹으면 코털이 타 들어갈 듯한 냄새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이거 똥 냄새나.”
이 음식을 맛본 거너가 처음 꺼낸 말이었다. 과일을 보러 갔을 때는 동네 작은 마트여서 다행히 한국 사람이 없었지만, 이 음식을 먹으러 간 식당은 관광객이라면 필수로 간다는 다낭의 유명 레스토랑이었다. 손님의 90%가 한국인인 식당에서, 한국어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주변에서 고개를 돌려 거너를 쳐다봤고, 나는 황급히 아이 입을 막으려는 부모처럼 다시 한번 거너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기 바빴다.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나는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가까이만 가도 올라오는 소스의 역한 냄새에 솔직히 속으로는 그의 반응에 많이 공감하고 있었다. ‘맘똠’이라고 부르는 이 보라 소스는 새우를 소금 발효 시켜 만든 소스인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해산물 향도 나고 고소하다고 하지만, 차라리 나는 청국장 냄새가 그리웠다.
로즈 애플과 이 보라 소스는 한 번 맛을 본 후 다시는 찾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거너의 그 유아틱 하고 원색적인 한국어를 고치는 데는 애를 먹고 있다. 참 신기한 게, 속어나 은어, 욕설은 한 번 들으면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외국어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그런 언어들은 잘 기억한다는 걸 거너의 한국어를 통해 많이 실감하게 된다. 계속되는 나의 잔소리에 이제는 거너도 본인의 한국어가 좀 경박하다는 걸 느꼈는지, 새로운 단어를 외우려고 매일 아침 사전을 들여다보고 있다. 언젠가는 그도 어른스러운 말투의 한국어를 구사하게 되겠지만, 나는 해맑은 얼굴로 유치원생처럼 말하는 거너 말투가 종종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