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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Oct 17. 2023

미국 풍토병 배지(badge)

우리는 결혼 후 처음 맞는 연말을 조금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고, 그래서 고른 곳이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 월드였다. 연말이었기에 입장료도 그 어느 때보다 비쌌고, 발걸음을 내딛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미어터졌지만, 그들과 함께 디즈니 성 앞에서 카운트 다운을 외치고 마주한 화려한 불꽃놀이는, 그 모든 불편함을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너무 사람 많은 곳에 머무른 부작용이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몸이 이상했다. 목이 간질간질하고 따끔한 것이 딱 봐도 감기 증상의 전조가 분명했다. 이럴 때는 따뜻한 차로 목을 좀 데워주면 금세 괜찮아지는 경우가 많아, 다음 날 호텔을 나설 때부터 계속해서 차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런데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지더니 이제는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코감기나 목감기면 몰라도 열이 나면 정말 답이 없다. 밤비행기라 시간을 때우기 위해 쇼핑몰에 갔었는데, 걷기도 힘들 정도로 열이 나서 로비 소파에 앉아만 있었다.   


열 때문에 비몽사몽 한 상태로 밤 비행을 마치고 공항에 주차해 둔 차를 타기 위해 가방을 뒤졌다. 그런데 아무리 핸드백에 손을 넣어 뒤져봐도 차키가 잡히지 않았다. 캐리어까지 열어 재치고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차키는 없었다. 열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이동하다가 어딘가 떨군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만일 한국이었다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그 마저도 끊기면 택시라도 타고 일단 집에는 갈 수 있었을 텐데, 대중교통이 전무한 미국 도시에서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자차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건 그냥 공항 노숙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 1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시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주무시고 계실 시간이었지만 차키를 잃어버려 공항에 갇힌 우리 상황을 듣고 흔쾌히 데리러 와 주셨다. 나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만 펑펑 울어버렸는데, 몸 상태도 좋지 않은 데다 차키를 잃어버린 죄책감과 시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에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되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어느 정도 감정이 진정이 되자 그때부터 오한으로 미친 듯이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화장실로 뛰어들어 양말을 벗고 샤워기로 뜨거운 물을 발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얼어 죽을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극심한 추위를 느꼈다. 겨울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발가벗겨진 채 한 밤의 사막 한가운데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40도 가까이 올라가는 열과 오한으로 잠을 설쳤다. 마지막으로 열이 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만큼 이렇게 아픈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다음 날 차키 수리공과 함께 공항으로 차를 찾으러 가야 했는데 나는 도저히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태였고, 그렇다고 주차료 비싼 공항에 언제까지고 차를 세워둘 수 없는 상황이라 거너는 근처에 계신 아버지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다행히 거너는 차키를 새로 만들고 공항에서 차를 되찾아왔지만, 내 건강은 쉽사리 되돌아오지 않았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 약 외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기침 또한 심상치 않았다. 병원에 가고 싶어도 그땐 아직 보험이 없던 터라 죽기 직전 상태가 아니면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에서는 보험이 있어도 한 번 의사를 만나는 것만으로 몇 만 원에서 몇 십만 원이 들어가는데, 보험도 없는 상황에서 병원에 한 번 갈라치면 고작 감기라 할지라도 얼마를 청구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미국에서는 아프면 그냥 죽는다는 말을 하는구나 라는 걸 실감하며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3일째 되던 날 드디어 약 효과가 나기 시작한 것인지 땀으로 전신이 한 번 흠뻑 젖은 후 조금씩 열이 떨어졌다. 한 줌의 과일과 빵을 입으로 넣고 나서야 비로소 침대 밖을 벗어나 거실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일반적인 감기와는 달라 코로나인가 싶었지만 코로나는 아니었다.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던 독감에 걸린 것 같았다. 다른 환경에서 살다 왔다 보니 이곳의 감기 바이러스에는 면역력이 약한 내가 더 심하게 앓은 것이다. 열이 떨어지고 나서도 한 달을 넘게 폐렴과 같은 기침을 뱉어 냈으니 보통 독한 감기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그래도 그때 한 번 고생한 후로 감기에 안 걸리는 걸 보면, 아팠던 만큼 단단한 면역력도 얻었나 보다. 타지 살이가 그러한 것 같다. 사용하는 언어나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건 물론이고, 풍토병까지 이겨내야 하니 새로 적응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이러한 통과의례를 치르고 나면 새로운 보이스 카웃 배지를 받은 것처럼 내 능력치도 하나 추가된 느낌이다. 언제까지 미국 살이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은 힘든 게 있어도 새로운 배지 얻는 다는 생각으로 힘 좀 내 봐야겠다. 지나고나서 가슴팍 가득 걸려 있는 배지가 삶의 이력서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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