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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Oct 21. 2023

미국에서 물건 싸게 구하는 법

미국 물가가 비싼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상상이상으로 드는 생활비에 입이 벌어졌다. 그리 큰 도시에 살고 있지 않음에도 원 베드룸 월세가 100만 원을 훌쩍 넘고, 마트에서 약 일주일치 장을 보면 대단한 걸 사는 게 아닌데도 10만 원에서 20만 원은 기본으로 나온다. 외식비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에서 둘이서 일본 라멘 사 먹는 금액이 강남 파스타 집에서 6인분이 먹는 가격과 맞먹는다. 여기에 팁문화까지 더해져 밖에서 밥 한 번 사 먹으려 치면 계좌에서 돈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차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나라니, 외출 한 번에 드는 기름값과 보험료, 관리비는 말할 것도 없고, 의료 보험료만 둘이서 한 달에 50만 원을 넘게 낸다. 그런데도 병원에 가서 검사 한 번 하면 또 몇 십만 원이 숭덩 빠져나간다. 수도세나 전기세가 싼 것도 아니라서 집에만 있어도 매달 나가는 돈이 엄청나기에, 도무지 저금이라는 걸 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단 두 식구뿐임에도 이런데, 도대체 아이까지 있는 보통의 중산층 가족들은 어떻게 가계를 꾸려나가는지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뭐든 비싼 미국에서도 나름 물건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먼저 주말에 열리는 yard sale을 간다. 주로 단독주택에서 사는 미국인들은 주말 아침에 자기 집 yard(마당) 앞에 안 쓰는 중고 물건들을 늘어놓고 이웃들을 대상으로 판매한다. 당연히 현금 거래만 가능하며, 안 쓰는 물건을 처분하기 위해 하는 거라 대체로 저렴하다. 미국판 오프라인 ‘당근 마켓’ 같은 것이다. 잘만 고르면 괜찮은 가격에 쓸만한 중고 물건을 건질 수 있다. 우리 집에 있는 거실 조명부터 에어프라이기, 청소기 등 상당히 많은 살림을 yard sale을 통해 장만했다. 남편은 매주 yard sale 하는 곳을 찾아가 싸게 사서 인터넷에 이윤을 붙여 판매하기도 한다. 그리고 미국의 대표적인 중고 물품 판매소인 good will이라는 가게도 있다. 사람들이 물건을 기부하면 그걸 판매한 수익금으로 취약계층을 도와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물론 중고 물품이라 아주 좋은 상태의 물건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중고품이 싫다면 새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도 있다. TJ MAX라는 가게는 이월상품을 저렴하게 파는 곳이다. 신상품만 취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탈리아제 신발을 2~3만 원에 살 수도 있고, 좋은 브랜드의 선글라스도 하나의 가격으로 두세 개를 살 수 있으니 쇼핑할 맛이 난다. 


그다음으로 아주 재미있는 곳이 있는데, 앨라배마 주 어느 작은 마을에 있는 상점이다. 이곳에서는 공항에서 버려진 물건들을 판매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공항에서는 주인이 잃어버린 수화물들이 종종 발생하는데, 특정 기간이 지날 동안 아무도 찾아가지 않으면 Unclaimed baggage(주인 없는 수화물)이라는 이름의 가게로 보내진다. 누군가에게 속해 있던 물건이기에 물론 중고품들이 많기는 하지만 yard sale이나 good will에서는 볼 수 없는 명품도 있고, 품질 좋은 전자제품까지 종류가 훨씬 더 다양한 편이다. 


워낙 기본적으로 드는 생활비가 싸지 않다 보니, 미국에서는 중고 물품 거래가 한국보다 훨씬 더 발달한 것 같다. 나도 이제 기본적으로 무언가 필요할 때, 휴지나 세제처럼 매일 쓰는 생활 용품이 아니면 일단 중고 물건 먼저 검색해 보고는 한다. 사실 한국에서 살 때는 아주 고가의 물건이 아니라면 중고 살 바에 조금 더 주고 새 거 사는 게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 팽배했었다. 남이 쓰다 버린 물건을 주워 쓰는 느낌이었기에 스스로가 낮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오히려 낮은 내 자존감을 감추려 내가 쓰는 물건들에 스스로의 가치를 부여하려 했던 행동으로 만들어진 잘못된 생각이었다. 지금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처럼 물건도 나를 거쳐가는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필요할 때 좋은 가격으로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이 나타나면 오히려 감사한 거다. 중고 물건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는 점이 미국 와서 배운 것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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