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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스 Nov 29. 2021

"저 비행기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야!.."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소환 일지 _01


안시까지 가는 여정에 잠시 멈췄다. 오른쪽을 보니 올려다 보이는 산과 내려다 보이는 마을이 동시에 펼쳐져 있다. 참 위안이 되었다. 밤새 유럽 최대의 협곡을 지났기 때문이다.


지역 또는 동네를 기억할 때 지형적인 것들에서 받은 인상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때가 있다. 도시 안에 있든 도시를 벗어나 있든 상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또 그러한 것들이 기억과 의식 속에 또렷이 남아 있거나 미미하게 남아 있거나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여하튼 부지불식간 우리를 지배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나그네로서 생경하게 맞닥드리는 장소가 그럴 수 있고 거주자로서 일상에 녹아든 채 지나치는 장소가 그럴 수 있다.


어릴 적 내가 인지하고 이해하는 지리적 세상을 가끔씩 떠올려 볼 때가 있다. 금정산 위로 비행기가 넘어와서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어디에선가 나타난 비행기가 금정산 뒤로 사라지곤 했다. 그것이 실제 어디로 향하든 상관없이 "저 비행기는 미국(美國)으로 가는 비행기야!.."라고 혼잣말하듯 했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고 사실에 근거하는 추측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그렇게 정한 거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는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동네는 구월산과 금정산이 각각 동쪽과 서쪽에 병풍처럼  놓여 있었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일대를 충분히 감쌀 정도의 지형을 갖췄었고, 어린 나에게는 그렇게 느끼기에 충분했다. 내 인식의 범위를 정해주는 물리적인 장치 같은 거였다. 조금 높은 건물이나 조금 높은 길목에 서서 둘러보면 다소 멀어 보이는 곳이라도 보이는 범위가 확실했다. 병풍 같은 산들 때문에 보이는 곳과 볼 수 없는 곳이 명확히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1988년 구월산에서 보는 금정산과 대학캠퍼스, 지하철 1호선, 공장,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주거지역 모습 / 출처:부산대학교


내 인식의 범위를 정해주는 또 하나의 장치를 떠올려보면, 생각나는 것이 길이다.


두 개의 산들 사이에는 정중앙에 평행하게 가로 놓여 있는 큰 도로가 있었다. 당시 산업도로라고 불렸던 것 같다. 꽤 많은 차로를 갖고 있어 물리적인 경계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 길에 닿기 전에 보다 작은 도로를 건너야 했는데 어릴 때는 이 작은 도로를 건너는 것조차도 큰 모험이었다. 길은 연결하고 단절하는 역할을 했다. 내가 성장하면서 인식하고 시도하고 모험하는 것들은 차츰 늘어났는데, 시간이 갈수록 길은 단절의 힘보다 연결하는 힘을 발휘했다.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머물렀으니 그 과정을 고스란히 체득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한 지역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머물 수 있었던 것은 이후로 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장소에 대한 기억을 소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갑작스레 그 장소들을 되새기면서 글을 쓰게 된 것은 최근 작은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공동주택 단지의 계획안에서 커뮤니티 시설에 대한 대안을 제안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다.    


생각을 정리하는 가운데 스케치 하나를 했다.

건물 안에 꾸역꾸역 구겨 넣은 듯한 시설들을 풀어내고, 그중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시설들을 정리하면서 그것들을 작은 도로변에 풀어놓았다. 주어진 제약 속에서 할 수 있는 나름 의미 있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걸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아이들은 과연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고 이해하게 될까, 살고 있는 곳에서 느끼는 장소가 훗날 어떻게 기억될까, 성장하면서 느끼는 것과 기억들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작용할까, 어른이 되어 돌아보면서 생각되는 것들은 어떻게 얘기될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2021년 10월. 신길동 주거단지 커뮤니티시설 제안 이미지 스케치


단지가 크면 클수록 커뮤니티 시설 종류도 많아지고, 대단지가 되면 없는 것이 없게 된다. 적어도 아이들 세계에서는 작은 자족 마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의 변화를 살펴봐도 그 시설의 종류는 계속 새로운 것이 더해지고 규모가 변하고 있다. 인근 3천 세대에 가까운 단지의 경우 8년 전의 것임에도 없는 것이 없으니, 최근의 경향은 단지 내 더 많은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이들이 아이들의 현재를 누리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다. 보이지 않는 정보의 누적도 골라 담을 정도로 풍족해 보인다. 손에 만져지는 것들이나 보고 느끼고 숨을 쉬고 맛을 느끼고 하는 것들이, 즉 아이들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해졌다. 또 오랜 세월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쉬웠던 것들이 이제는 많이 채워졌다.  


그런 중 자신만의 세계가 구축된다.   

우리도 아이들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장소에 대한 기억들이 무의식의 한자리를 채우고 있다. 나의 어처구니없는 이해, 내 안에 은연중 구축되었었던 세계는 지금의 아이들이 경험하기에는 더는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모바일 환경과 가상 환경은 그 자체도 경계와 정의가 어려울 정도로 확장되어 가고 있고, 심지어 메타버스가 세상을 또 어떻게 정의할지 모두가 귀를 쫑긋하며 긴장하고 있다.   


더 이상 단품 세상이 아니다. 모든 것들이 연결되고 관계되어 있다. 어처구니없는 이해를 할 겨를 없이 세상은 완벽하게 풀 세트로 아이들 앞에 떠억 펼쳐진다. 게다가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나이도 점점 젊어지고 어려지고 있다.


이젠 보이는 곳과 볼 수 없는 곳을 결정하는 것은 산과 지형이 아니라 아파트 구조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단지 안에서는 보차분리도 확실해졌으니 작은 아이들이 움직이는 일상에서는 길을 구분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졌다. 차는 모두 지하로 출입이 되고 땅 위에서는 아이들이 맘껏 뛰어다닐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기억을 자극하는 것들이 달라졌다.   

건축적인 환경을 일구는 나로서는 자극을 받을 수 있고 새로운 생각들을 하며 도전할 거리가 생겼으니 반갑다고 해야 할지 모르나,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다. 무엇이 우리를 풍족하게 하고 마음과 오감을 시간의 변화에 따라 채워주고 변화를 느끼게 하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는데, 한없이 헐거워 보였던 그 틈새는 꽉 쪼여 든 나사못이 허락하는 간극만큼이나 여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 정말 달라졌으니 외려 난 기대한다.

어릴 적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처럼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니, 또 한 번 중얼거린다.        


"저 비행기는 미국(未知의 나라)으로 가는 비행기야!..”          



2021년 11월. 집을 나서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저 비행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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