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한 귀퉁이를 잠시 응시하고 있는데 쓱하고 들어오는 이들이 있다.
시간을 강제로 멈춰 세워놓고 있다 생각했는데
주말 오후 정동길은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려워 보인다.
부지불식간의 일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강제로 멈춰 있는 셈이 됐다.
100년이 되어가는 건물 앞은 검소함과 장엄함이 겹쳐 있다. 첫 느낌이 그랬다.
오래전 각 국 공사관들로 둘러싸였던 건물은 한 때 외교관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다는 얘기에서 이해가 되었다.
공관들처럼 공적인 위엄을 갖출 필요는 없었지만 그 경계에 놓일 필요는 있었던 모양이다.
모든 것이 정물화나 풍경화 속 그것들인데 그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은 공유자전거,
길과 담장과 가로수와 표지판 사이에 유일하게 동력을 유발하는 기계 덩어리다.
모든 것이 시간에 순응하지만 혼자 속도를 가졌으니 언제 위치 이동을 시도할지 모르는 녀석인데 이 순간만큼은 깊이 동화되어 있다.
이 자리에는 손탁호텔이 있었다.
지금은 학교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것마냥
시간의 흔적이 깊이 베여있다.
원래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도시에서 뭔가 변했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시간이 카운트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다.
이 육중한 벽체 덩어리는 대체 뭔가 하고 한참 올려다봤다.
필요에 의해서 학교 담장과 수위실 지붕 처마 사이를 덮은 것이었다.
내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 보였다.
기능이 형태를 이끈다는 얘기가 그대로 녹아있다.
어떤 모양을 갖는다면 그것에 기능을 담지 않는 건 흔한 일이다 보니
이런 것에 궁금해할 때가 있다.
친절하기 위한 안내판이
초록으로 풍성히 담장을 덮고 있는 담쟁이식물들로 인해 불친절한 안내판이 되었다.
담쟁이식물들은 그 옆에 환경보호 안내판도 방해하고 있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담장 전체가 눈에 띄었다.
삼거리에서 여기를 제일 먼저 쳐다보았다.
그리고 구 러시아공사관으로 향했다.
망루 보수공사를 4년을 꼬박 한다고 적혀 있었다.
큰 아파트 단지를 두 번 정도 지을 수 있는 시간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 셈이다.
공사가 끝나면 꼭 올라가 봐야 한다.
저곳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은 마치 필름이 끊기듯 4년 분량이 증발한 셈인데,
마치 어떤 장면을 무음모드로 흘려보내거나
장면을 날려버리고 소리만 내보내는 걸 경험한 것처럼
어떤 곳에서 도시를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렇다.
그걸 만회할 방법은 없다. 거기서부터 또 기록되기 시작한다.
도시는 있지만, 잠시 도시 부재를 겪는 건 흔한 일이다.
숲과 나무들, 오랜 담장, 가파른 언덕이 화면을 모두 채워버리는 이곳을
서울의 경계 즈음 어디라고 하면, 그렇겠지.. 근데 어디지?
지방 어느 마을 고택의 뒷길이라고 하면, 그렇겠지.. 근데 어디지?
순간 장소가 장소성을 지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게 된다.
정보가 입력되기 전에 그렇겠지라고 수긍하는 것과
더 알고 난 후에 생각되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을지도 궁금했다.
여긴 서울 중구 정동이다.
살짝 언덕진 길을 따라 올랐다.
길을 따라 나란히 뻗은 작은 공원도 있었는데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고 공원 역시 이 길을 다라 걸쳐 있었다.
길게 목을 내밀듯 나있는 길을 내려왔다. 보이는 것이,
산은 무슨 산이고 박물관 같은 저것 또한 무슨 박물관인지 알듯 하다마는
참 생경했다.
눈앞에 모든 것이 익숙한데도.
길을 건너고 있었다.
같이 길을 건너고 있는 저쪽은 한참 내려오고 있는 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길은 아닌데, 알고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순간 그랬다.
뭐지.. 왜지.. 하다 나중 생각이 났다.
버몬트에서 국경을 지나 올라가다 잠시 쉬어가는 도시, 셔브룩이었다.
저게 그렇게 건조했나 보다.
셔브룩은 참 건조했는데, 내가 잠시 멈춘 건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던 것 같고
신호불빛이 촉촉했고 북악산이 젖어있었다.
걷는 이와 자전거가 경쾌했고, 전조등들이 그런 무대를 더욱 가볍게 비추고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게 한 건 셔브룩이었고, 순간 셔터를 깊게 누르게 한 건 서울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