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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덕 Jan 15. 2021

자기소개가 곤혹스러울 때

2주째 자기소개만 벌써 4번째...

2주째 자기소개만 벌써 4번째...


비슷비슷한 이야기로 듣는 사람만 조금씩 바뀌니

소재도 고갈돼서 자기 소개하는 사람은 진땀 빼지만

듣는 사람은 늘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로운 자기소개


묻고 싶은 건 많지만 혹여나 부담될까

질문 대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화답하는

조심스러운 관계의 첫 단추가 시작됐다.


4개 국어 장착,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다른 국가에서 보낸 유년 생활,

뉴스에 나올 법한 기관에서의 인턴 경험,

예측불가 커리어 전환 등


'와 어쩜 이렇게 글로벌하지.

다들 어마어마하신 분들이구나.


이번 생은 글렀어. 난 다시 태어나야 하나

아니, 애초에 다시 태어난다고 되는 건가?'


감탄과 씁쓸함으로 눈만 껌뻑거리다

정신이 번쩍 드는 질문 하나가 날아왔다.


"신기한 경험 하나씩 공유해주세요"


뻔한 자기소개에 새로운 주문이 추가되었다


점심 먹으면서 하는 화상회의라

긴장감 없이 편하게 의자에 반쯤 기대 있었는데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툭- 내려놓았다.


이제 막 인턴생활을 시작한

인턴 한 분이 우물쭈물 대답을 이어 나갔다.


"인도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듣던 대표님이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 질문한다. 처음부터.


"인도 어느 지역이요?"

"새로운 문화라면 어떤?"


무방비 상태로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아내는 게 쉽지 않지만,

이야기를 전달할 때 듣는 이를 고려해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본인의 평소 사고흐름에 대해 간접적으로 어필할 뿐이라

상대방과 교집합을 만들 때 좋다.


"엇 저도 거기 살았는데-"

누가 아는 체 해주면 얼마나 반가운가


어쩔 수 없이 나를 평가하는 자리라면
이왕이면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연결고리 하나라도 만드는 게 유리하니까


첫 번째 희생자의 꿀팁을 낚아챈

두 번째 인턴은 첫 타자보다 구체적으로 신기한 경험을 풀어놓았다.


재미와 놀라움에서 그치지 않고

경험 전/후,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교훈이 추가되면

좀 더 인상적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신기하고도 가벼운 이야기였다.


"나는 이런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에서


"나는 이런 신기한 경험을 통해

이런 사람이 되었어요/ 이런 생각을 가졌어요"


위 두문장의 시작은 비슷하지만

이야기가 마칠 때쯤엔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은가?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이렇게 까지 신경 써서 해야 하나?

참 피곤하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날 알아주는 곳 없는 빈털터리 취준생 시절

2박 3일 합숙면접에 들어간 적 있다.


하필 공채 시즌이라 합숙면접을 선택하면

다른 면접을 포기해야 하는 잔인한 상황이 놓여

이러나저러나 마음이 편치 않은 시기였다.


깔끔한 인테리어가 차갑게 느껴지는 커다란 회의실에서

면접관과 지원자들이 둥글게 앉아

한 번 들어가면 해가 져야 나올 정도로 수많은 과제가 연속적으로 주어졌다.


(발표 마치고 10시에 자러 들어가는 데

내일 아침 9시까지 발표할 주제를 새로 주면 자지 말라는 것?)


합숙 시작하자마자

회사명, 지원부서, 이름과 사진이 들어간 손바닥만 한 명찰을 받았다.


누군가는 명찰을 책상에 올려 두기도,

누군가는 명찰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명찰을 목에 걸어도 책상 밑으로 떨어져

이름이 가려지는 게 싫었던 나는

명찰 끈을 올려 묶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지언정

까칠한 느낌에 목이 조금 조인 것 같아도

목 뒤로 우스운 매듭이 있어도

무의식적으로나마 내 이름과 얼굴이 남들보다 조금 더 노출되어 면접관들 기억 속에 각인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다.


최종면접에서  불합격


총 4시간가량 진행된 1차 필기시험엔

내가 지원한 부서에만 8천 명 가까이 지원했다.


2차 역량 면접에서 또 한 번 걸러지고

최종 7명이 최종면접에 올라갔다.


TO는 고작 1명이었다.


물론,

명찰을 올려 묶은 게 합격에 별 도움 안 될 수도 있다.

명찰을 내려 묶든 뒤집어 걸든 합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합격할 수 있는 기회는 터무니없이 작기에

근로계약서를 쓰기 전까진 모든 가능성을 치열하게 동원하는 게 필요할 때다.

 


누군가의 '치밀함'이
누구에겐 '간절함'이다.



세 번째 인턴이 대답할 차례다.

호기롭게 먼저 질문을 던져본다.


"혹시 제게 궁금하신 게 있으실까요?"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본인이 공유하고 싶은 신기한 경험이요."


(머쓱)


나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들려드리고 싶은 제 신기한 경험은 총 세 개 있습니다.

아래 키워드 중 어떤 게 듣고 싶으신가요?"


프리허그

실러버스

다운증후군


키워드가 다 맘에 들어서 다 듣고 싶다면 운이 대빵 좋은 거다.


남들 신기한 경험 한 개 말할 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3배 더 얻은 셈이니까.


면접에서 시간은 곧 기회다.


시간 상 키워드 하나만 말해도 이득이다.


남들 한 개 준비할 때 세 개 준비하는 열정

이야기 듣기 전부터 기승전결이 딱 떨어질 것 같은 깔끔함

답만 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주도성적극성

그리고 자연스러운 참여 유도까지 


"전 열정 넘치고 일 처리가 깔끔하고 주도적으로 태도로 매사 적극적인 일꾼입니다. 뽑아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은가?


누가 아나,

혹시 다른 두 개 키워드가 궁금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물어볼지.


확실한 건,

저렇게 말하면 신기한 경험 얘기보다는 지원자가 기억에 오래 남게 될 게 분명하다.  


만약 여러분이 대표라면

위 키워드 중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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