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차.
브레인댄스는 정말로, 정말로 기묘한 장치(Apparatus)다. 처음 브레인댄스 편집을 경험했을 때를 기억한다. 분명히 처음, “그냥 재생”할 때는 그것을 녹화한 자의 1인칭 시점에서 경험을 한다. 즉, 그가 보고 들은 것들, 그가 느낀 감정에 대해서 몰입(V가 어떤 희망, 고양감 등을 느꼈다고 언급하는 부분에 대해서 기억해보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편집 시점으로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명확하게 구분해보자. 감성(Sinnlichkeit)의 영역에서, 브레인댄스 편집은 명백하게 인간의 인식(Erkenntnis)을 초월한다. 분명 1인칭에서 “보고” “듣고” “감각했으나” 그것이 현상(Erscheinung)되지 못한 것들까지도, 브레인댄스 편집자는 모조리 신의 관점에서 다시금 재편할 수 있다. 무슨 개소린지 알아먹지 못한 잡음도 브레인댄스 편집자는 그것이 아이티 크레올어라는것을 다시 판단할 수 있으며, 눈깔 곁에 스쳐지나가버린 CCTV 화면에서 그것이 자신을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까지도 판단할 수 있다.[그리고, 게임에서는 전혀 표현되거나 언급되지 않았지만, V의 브레인댄스 첫 경험 후 서술에서, 나는 브레인댄스 편집자가 인간 내면의 오성(Verstand) 역시 편집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인간이 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브레인댄스를 “경험(Erfahrung)하는”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아무리 길고 긴 브레인댄스라도, 이것을 경험하는 인간이, 이것은 브레인댄스이며, 나는 “이 나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지켜나갈 수 있는가? 애초에, 브레인댄스 내의 자아와, 브레인댄스를 경험하는 자아를 서로 구분해주는 분절은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난 굳이 렐릭을 가지고 법석을 떠는 것이, 다시 생각해보니 꽤나 어색하다. 렐릭은 말하자면 브레인댄스 중에, 브레인댄스 내의 인간과 브레인댄스를 경험하는 인간이 서로 소통하게 된, 그러니까 그 둘을 구분해주는 분절이 흐려져버린 것에 불과한 것이다.[물론 V의 경우 그것이 서로의 자의식을 오염시키는 것을넘어서, 신체를 오염시킨다는 점에서 법석을 떨 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조니 실버핸드는 말한다. 자신은 원칙을, 진짜를 원한다고. 그의 말이 무슨 뜻일까.
사이버펑크의 세계에서, 인간은 이미 사라졌다. 죽음은 없어졌고, 영혼은 편집되고, 감성 역시 누군가에 의해, 무엇인가에 의해 걸러질 수 있으며, 즉 인간을 이루는 내감과 외감과 오성이 모두 그 이전의 무언가에 의해 오염되는 것이다. 조니 실버핸드는 그 범인이 바로 기업이며, 따라서 자신은 기업을 죽이겠다는 것, 그러니까,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이 모든 것의 원인인 기업이 스스로를 죽이겠다는 어떠한 이성을 내버려 둘 리가 없으므로, 오직 기업을 죽인다는 자신의 삶의 원칙만이 진실하며, 그대로 살아갈 것이라는 말이라 생각한다.
글쎄, 과연 그럴까?
기업은 너무나 커서 개인이 뭘 하든 신경 안쓸지도 모른다. 신은 신의 일이 너무 바빠 인간의 일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으시는 것처럼. 기업, 아라사카를 죽이겠다는 그것만이 진실하다는 말의 전제는 내가 보기엔 순진한 추측이다. 그 이전에, 그 원칙이라는 것에 매여 인생 전체를 내다버리는 것. 반항을 위해 핵폭탄을 터트리고, 기업 심장부에 돌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다 자기 자신도 죽는, 수동적 자살행위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삶의 원칙이 삶을 결정적으로 배신하고 살인[자살]하는 행위.
그 원칙은 옳을지도 모른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책 시지프 신화에서, 필경 살아가는 이유는 죽을 만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버핸드는 삶의 이유, 삶의 원칙을 원했다. 나는, 그딴건 없다고, 아니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버핸드를 보라. 그는 아라사카에, 기업에 반항한다는 일념 하에 자신의 인생을 내던져 버렸다. 반대로 말하면, 아라사카가 없으면, 기업이 없으면 그의 삶의 원칙은 공허한 헛소리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즉, 니체가 말하는 노예 도덕, 원한(Ressentiment)의 형태와 닮아 있다. 그는 V에 대해 끝없이 스스로 목줄을 채운다며, 스스로 기업에 발에 걸어들어간다며 비난하지만, 내가 보기에 실버핸드 역시 똑같이 기업에 목줄이 메이고 족쇄에 엮여있는 자다. 기업을 위반하려는 자는 그 무엇보다도 기업에 얽매여 있는 자다. 기업이라는 금기가 없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닌 자다.
실버핸드는 죽음만이 인간을 진실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의 말은 정당하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죽음을 향하는 존재(Sein-zum-tode)이며, 다만 삶에 있어서 대개 그것을 망각하고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퇴락한다. 그러나 그 반대로, 끝없이 고독해지며 현존재(Dasein)로써 있고자 하는 실버핸드 역시 절도를 잃었다. 아마도 그렇게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게임이라는 한계를 제하고 생각한다면, 그러니까 내가 V라면, 이미 그 흑인 돼지에게 총을 맞고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렸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마지막 남은 몇 일, 몇 주의 시간에 대해서 감사하고, 이내 그것마저 잊어버리고, 다시금 인생을 즐기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