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을 발행하며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야구장에서 뜬금없이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몰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곧장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으면 첫 문장을 멋지게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뭐 하나 만들어볼까 아무리 머리를 싸매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다가 이런 생각은 했다. 뭐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최근에 컴퓨터에 저장된 글들을 한데 모아보았다. 2019년부터 최근까지 690개 정도 파일이 있었다. 물론 그중에 90%로는 죽기 전에 다 날려버려야 할 것들이지만. 690개라는 숫자는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오랫동안 타인의 언어에 기대어 살아왔다. 책을 사고, 읽고, 밑줄 긋고, 필사했다. 다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그 문장들 사이에 나를 통과시켰다.
“시를 통해 들어간 시공간의 세계는 무한하다. 무한함 속에서 다양한 것들을 만난다. 시 때문에 과학책도 읽어보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용기를 얻는다.”
-19. 7. 14
“글쓰기를 하다 보면, 숨기고픈 장면만 쏙 빼기가 힘들다. 상황의 맥락이 흐트러져서 빠진 구멍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숨기지 말 것, 직면할 것, 표현할 것.”
- 22. 12. 18.
때론 내 안에 갇혀서 웅얼거림에 가까운 글을 쓰기도 하고, 온통 우울과 불안으로 채운 글도 있었다. 생각했던 글과 실제 쓴 글 사이의 간격을 메우지 못해 괴로운 날도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비록 야구장에 날아가는 공을 보면서 소설가를 꿈꾸는 멋진 계기는 없지만, 매일 읽고 쓰면서 나는 나만의 언어를 찾아가고 있었다. 타인의 언어에 얹혀 갔던 시기를 넘어서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내 언어를 전하고 싶다. 나를 성장시키고 치유했던 타인의 언어처럼 내 언어도 누군가에게 닿아 녹아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