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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 Dec 23. 2022

어쩌다 얻어걸린 문장들

프롤로그

  

전격 비밀 노트 대개봉.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오래 묵혀둔 노트들을 발견했다. 손글씨로 빼곡히 채워 넣은 필사 노트부터, 일기장, 독서 노트, 계획 노트 종류도 다양했다. 쓰다만 노트들 사이에서 유난히 손때 묻은 노트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와우. 이게 내가 쓴 문장이라고?     


조물주이 개X.     


신성모독 따위 개의치 않았던 그 순간. 휘갈겨진 글자에서 그때의 분노가 느껴졌다. 차마 입으로 뱉지 못하지만, 본심은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답답하던 때였다. 종이가 울퉁불퉁해질 정도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면서 끓어오르는 마음을 노트에 쏟아부었다. 그래. 그때는 이 문장 말고는 쓸 말이 없었지. 신도 아니고 조물주라니. 어디 이런 표현을.     


인터넷 사이트 회원 가입하다가, 책을 읽다가, 친구와의 수다 떨면서 어쩌다 얻어걸린 문장들이 노트 곳곳에 널려 있었다. 지독한 자기검열에도 불구하고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문장들이었다. 누구한테 검사받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열심히 노트를 채웠을까. 무엇이 나를 이토록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프루스트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키는 마들렌을 녹인 홍차였다. 나에게는 어쩌다 얻어 걸린 문장들이 있다. 쓰지 않았으면 영영 잃어버렸을 시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여 비밀 노트에 저장해 놓은 순간들을 다시 찾는 작업을 시작한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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