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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 Feb 26. 2023

11. 당신, 지금 좋아요?

괜찮은지 묻지 말고 좋았는지 물어볼 것.

좋아하지 않아도 견딜만하다면 괜찮다고 대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하고 살았다. 괜찮으면 된 거 아닌가.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괜찮다잖아. 할 만한 거잖아. 그럼 된 거 아닌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은지 물었지, 좋은지는 묻지 않았다. 좋은지 묻는 건 열면 안 되는 상자를 여는 일과 같았다. 상자 속에 담긴 것들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꼭 닫아 놓고 알려고 하지 말자. 그냥 견딜 만하고, 살 만하면 반 쯤 눈 감고 사는 거에 만족하자. 그러자. 그래야 아무 일도 안 생겨. 알고 나면 알기 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을 감당하기에 나는 겁이 많았다.     


심리상담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는 가족 심리검사 정도 진행하는 게 목표였다. 성격이나 기질 검사를 하면 각자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좋은 부분은 독려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울 기회를 만드는 것. 그 정도였다.

첫 시간, 가족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야기하면서 문득 나는 늘 가족들은 요즘 생활이 괜찮은지 궁금하다고 가볍게 말했다. 모두 괜찮다고 말하는데, 상담하려고 생각해보니까 정말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그래도 본인이 괜찮다고 하면 그렇게 믿어줘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물었다.      

괜찮은지 말고 좋은지 물어보세요.     


아. 아. 정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좋은지 묻는 것.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바람이 불어 들어와 한기가 들었다. 그건 생각을 못 해 봤는데. 그건 겁이 나는데. 좋지 않다고 말하면 그럼 다음은 어떻게 하지.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루틴이 잘못됐다고 판정이 나면 그다음은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정말 가족들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던 게 맞을까.      


나에게도 늘 괜찮은지만 물었다. 견딜 수 있는지만 물었던 것이다. 견딜 만하고 버틸 수 있는지만 가늠하며 살았다. 지금 사는 게 좋은지는 묻지 않았다. 사실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답에 응답할 용기가 없었다. 좋지 않다고 다른 것을 하기엔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다. 이제야 견딜 만하게 됐는데, 이제 와서 어쩌라고. 항상 조금씩 찜찜한 마음이 있긴 했지만, 그런 마음 모두 품고 사는 거 아닌가? 다 그런 거 아닌가요?  

   

질문 하나에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어쩐지 질문에 답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상담소에 앉아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머릿속으로만 추측하고 있던 것들과 실제로 마주하면 또 다른 것들과 만나게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과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를 찾고 있었는지도. 떨리고 걱정과 두려움도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가 보고 싶은 시간에 다가가고 싶다.  

    

그러니 이제 물어보자.     


당신, 지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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